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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임박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시면 이 가격으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실 겁니다. 주문번호 아시죠? 3분 남았습니다."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물건을 안 사면 심각하게 손해를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동안 저질렀던 만행을 곱씹어보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3분 남았다는 쇼핑 호스트의 멘트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냅다 움켜쥔다.

대체 어떤 마법을 걸었을까? TV홈쇼핑 관계자들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렇게 지갑을 활짝 열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지름신 강림'을 부르는 특급비법이 궁금해진 기자는 용산에 위치한 현대홈쇼핑 본사를 찾아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15일, '난다모 비누'와 '노주현의 명품가구' 홈쇼핑 방송 현장을 찾아 그들이 사는 법을 들여다봤다.

뭐(M)든지 다(D) 하는 게 'MD'?

▲ '노주현의 명품가구' 방송을 위해 스태프들이 세트를 설치하고 있다.
ⓒ 이은정

홈쇼핑 방송을 만드는 '주요' 인물들은 MD와 PD, 그리고 쇼핑호스트다. 홈쇼핑하면 현란한 말솜씨로 혼을 쏙 빼 놓는 쇼핑호스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홈쇼핑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MD다.

미국 마케팅협회는 MD(머천다이저)를 가장 좋은 장소와 가격, 시간, 수량으로 상품의 판매 계획을 수립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트렌드에 발맞춰 잘 팔릴만한 상품을 기획하고 제품연구에 참여하는 등 현실적으로 중요하고 많은 업무를 담당한다. 때문에 MD들 사이에서 '뭐(M)든지 다(D) 하는 게 MD'라는 우스개가 나돈다.

MD와 마케팅 부서의 편성담당자가 협의해 방송할 상품을 정하면 그 상품 성격에 맞는 쇼핑호스트나 PD, 그래픽 전문가 등의 제작진이 배정된다.

이날 '난다모 비누' 방송 담당 신수정 PD는 "방송 1주일 전부터 최소 3번의 전략 회의를 거쳐 방송 전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방송 하루 이틀 전에 방송 순서나 멘트 등 세부 사항을 확인한다"고 대략적인 제작과정을 설명했다. 따로 작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PD가 손수 'XXX 3종 세트, 최적의 구성'과 같이 방송에 나갈 멘트를 준비해야 한다.

한편 쇼핑호스트는 시장에 유사제품이 있는지, 경쟁 상품 가격대는 얼마나 되는지 등 전반적인 상품 시장의 흐름을 연구한다.

이날 오후 7시 30분 방송을 준비하고 있던 쇼핑호스트 김지아씨는 "MD가 기획한 상품을 1주일 동안 연구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잡아나간다"며 "오늘은 명품 가구를 방송하는 만큼 우아한 메이크업과 의상, 멘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이날 콘셉트를 설명했다. 그는 "대본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스스로 진행해야 한다"며 "홈쇼핑은 NG 없는 드라마"고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 1년 넘도록 '노주현의 명품가구'의 방송을 맡고 있는 노주현씨.
ⓒ 현대홈쇼핑

현대홈쇼핑에서 1주일에 한번 고정적으로 '노주현의 명품가구'를 진행하는 탤런트 노주현씨는 "매출에 많이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제품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서도 "어쨌든 판매를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른 방송에 비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붉은색 'ON AIR' 등이 켜져 있는 동안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구매 주문을 받는 콜센터 상담원들이다. 현대홈쇼핑 콜센터에는 4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신입일 때는 주로 전화주문을 받는데, 연륜이 쌓이면 불만처리(CS)도 담당하게 된다.

VIP 고객을 관리하는 박영정씨는 "불만을 가진 고객이 상담원을 거부하고 관리자만 찾을 때 힘이 들기도 하지만 주문이 밀려들고 매진될 때는 몸은 고달파도 보람 있다"며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를 건넸다.

콜센터에서 주문을 받으면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발송하고 배달을 시작한다. 방송이 무사히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MD와 업체는 사후미팅을 통해 판매실적 등을 점검하고 방송 전반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실수와 잘못을 다음 방송에 충분히 반영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콜(call)을 부르는 그들만의 비법

▲ 현대홈쇼핑 콜센터 모습, 방송 중에 가장 분주한 곳이기도 하다.
ⓒ 이은정

홈쇼핑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콜(call, 주문량을 뜻하는 홈쇼핑 업계 용어)은 바로 채점되어 나오는 성적표다. 성적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이날 '난다모 비누'는 추석 귀향길에 오른 사람이 많아서인지 목표량의 80% 정도만 팔려 목표달성에 차질을 겪기도 했다.

신수정 PD는 성적표가 좋지 않을 때에는 "방송시간이 안 남았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고지해 준다거나 ARS 가격 혜택이나 제품 구성 메리트를 상기시키는 등의 '하드 푸시(hard push) 전략'을 구사하도록 쇼핑호스트에게 주문한다"고 밝혔다.

쇼핑호스트 김지아씨는 "좋은 상품이라도 소비자가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소비자가 반응을 보였던 포인트를 강하게 짚어준다"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주문 현황을 나타내는 '콜 모니터'를 보면서 어떤 멘트를 했을 때 주문량이 많이 늘었는지를 파악해 그 부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음식과 주방용품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희 조리실장도 상품이 '화면발'을 잘 받게 하기 위해 "피망이나 파프리카 등 선명한 색의 야채를 사용해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고, 밀가루에 약간의 색소를 넣기도 한다"고 비법을 살짝 고백했다.

인테리어팀 임지희 MD는 "만약 생각했던 것만큼의 매출이 안 나오면 한 아이템을 단축시키고 반응이 좋은 다른 쪽에 집중하는 정공법을 주로 구사한다"고 밝혔다.

마케팅팀 홍보담당 오형주 대리는 "방송시간에 최소한 벌어야 하는 금액이 있어 매출이 잘 안 나올 때는 방송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는 비밀 아닌 비밀을 전했다. 그는 1분에 올려야 하는 매출은 일반 대기업 사원의 연봉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조심스럽게 귀띔했다.

"지름신은 우리도 반갑지 않아요"

TV홈쇼핑이 홈쇼핑 중독증이나 충동구매를 부른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홈쇼핑 지름신 강림이 두렵다는 내용의 누리꾼의 게시물에는 백번 공감한다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린다. 하지만 홈쇼핑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신수정 PD는 "충동구매자는 소수인데다가 반품기간이 1달로 되어 있어 충분히 그것을 보완해줄 수 있다"며 "TV 홈쇼핑은 대중적인 호객행위로 정당한 방식인데, 언론에서 지나치게 부풀리는 면이 없지 않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오형주 대리는 "충동구매 한 뒤 물건을 쌓아놓고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시 홈쇼핑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지 않겠냐"면서 "반품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중하게 주문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이 충동구매를 안 하는 게 오히려 고맙고 지름신은 전혀 반갑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홈쇼핑회사에게도 지름신은 두려운 존재였다.

TV홈쇼핑이 지름신을 부르는 원흉이라고 깎아내리기 전에 소비자가 감당해야할 몫도 크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 임승미 간사는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방송에 나오는 물건이 좋다고 감탄하게 되면 한정판매, 매진임박이라는 말에 현혹돼 물건을 주문하게 된다"며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구매 후기 등 물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방송을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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