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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도 긴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내야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요?
삶은 어차피 어딘가에서 흘려보내야 할 것이니 흐르는 세월을 그럭저럭 견디며 보내야 되는지,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정해서 몰두해야 하는지, 아니면 둘 다 배합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요. 또 설혹 그 어떤 것을 하며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요.
그 어떤 것이 옳고, 또 다른 어떤 것이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심과 실행과 실제 돌아가는 모든 일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달라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오랜 기간의 감옥생활을 통해 이러한 점들을 터득합니다. 사람마다 모두 처한 환경이 다르고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시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는 입장 말입니다. 진정으로 그 당사자가 되어 보아야만 그 당사자의 결정이 옳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고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자신의 사상을 책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고 무모하기조차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 바로 대상과의 관계의 정도와 서로의 인식의 측면과 방향이라고 하지요.
그는 이에 대한 일례로, 감옥에서 본 어떤 고양이가 야생성을 발휘하여 뛰쳐나가 늠름하게 싸우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걸 보았었는데, 어느 날 다시 음식을 구걸하며 지내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씁쓸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으로 그 고양이를 보고 판단하는 자신의 마음이 협소한 데서 나온 것으로, 진정 그 고양이가 그간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된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시 먹이를 구걸하는 비굴한 삶으로 전향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고양이를 함부로 탓하며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우리 사회에 있는 많은 초라한 인생들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타인에게는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우리 인간이니까요. 우리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지만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냉정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실수처럼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처지와 불가피했던 여러 사정들을 잘 알고 나면 자연히 너그러워질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슬픔과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 같은 존재지만, 공감과 이해가 함께 할 때 훨씬 더 가벼워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그는 관조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관조라는 것은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것인데, 세상에는 관조만으로 시작되고 관조만으로 완결되는 인식이란 없기 때문이지요.
그는 어린 왕자의 길들인다는 말을 상기시키며,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관계는 물론 서로가 동등하게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생긴 서로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진정한 의미겠지요. 단지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진 모든 것은, 그 본질이 억압이므로 어린 왕자가 말하는 길들임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의미가 되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모든 생각의 도출은 감옥에서의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타인과 세상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자는 책읽기와 사색, 그리고 서도를 하며 감옥 생활을 해냈습니다. 옥중 서간문으로 되어 있는 이 글들을 읽어보면 바깥세상에서 부대끼며 안달 내며 사는 우리보다 더 침착하고 차분하며 초월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생각의 녹을 상대하면서 자신을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 자체를 키워나갔던 것이지요. 그것은 곧 자기를 평정하고, 자기의 삶이 어디서 영위되든 간에 자신의 삶을 알차게 꾸려가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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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돌베개(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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