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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위한 변명> 책표지
<정치인을 위한 변명> 책표지 ⓒ 개마고원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 배달되었어요. 다른 책을 검색하던 중 한쪽 창에 뜬 이 제목에 제 눈이 간 것은, 정치인의 변명에 대한 궁금함이 진정으로 컸기 때문입니다. 사회 및 정치와 관련된 인간의 삶과 의식 그리고 행태를 분석하고 비판하느라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은 저에게 이 제목은 그 자체로 커다란 해답이기도 하였습니다.

늦은 시간, 일을 다 마치고 첫 장부터 넘기는데 정신이 더욱 곤두서고 생각이 더욱 명료해지면서, 또 한편으로 사고는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뻗쳐나갑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방의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정치와 사회와 인간을 겪을 만큼 겪은 제 의식과 경험의 세계에 비추어 이처럼 정확하게 분석적으로, 방대하게 국제적으로, 치밀하게 학구적으로, 그리고 진실되게 미래지향적으로 정치인과 정치 현실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저작은 처음 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와 사회의 현상, 정치인의 의식과 행동, 정치 윤리와 정치 철학, 그리고 사회와 세계의 위기와 전망 등을 표현하는 그토록 적확한 단어, 그토록 명확한 문장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정치에 관한 저의 작은 관심이 얻게 된 행운이자 보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주석을 달고 또 남편에게 읽어주곤 했습니다.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은 그 자체로 심각한 토론의 주제가 되는 거였어요.

사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게 여겨지는 특수 분야의 저서라 하더라도 이 사회와 미래의 비전이 담긴 좋은 책들은 정신을 몰입하게 하는 성자의 메시지나 감성을 진동시키는 시나 소설 못지않은 감동과 지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을요.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가 모르겠는 순간 이러다 날을 새겠구나 싶어 일부러 책을 덮고, <해리 포터> 신간 원서를 읽으면서 잠을 불러 올 정도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바람이 솟구쳤습니다. 정치 안목이 높은 당신에게 이 책은 정치와 사회, 정치인에 대한 최선의 상식을 제공할 것이며, 당신의 정치관을 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정치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저자가 하나 하나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밝혀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왜 방향이 잘못된 발전이나 문제에 대해 그들이 구체적으로 그러한 일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들은 왜 많은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듯한 태도와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가? 정치인들이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그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기대 하는가? 그리고 해결 방안이 있는데도 관철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치인과 정치기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은 정치 문화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면, 단지 그것을 반영할 뿐인가? 그들의 어떤 점을 인정하고 어떤 점을 비난해야 하는가?”


정치인에 대한 토론이 정치 토론보다 더 중요하다

저자 헤르만 셰어는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 1980년 하원 의원이 되었고, 1988년부터 세계재생에너지위원회 의장직을 맡은 등 환경과 에너지 문제의 국제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이 사람이 학자의 배경을 가진 정치 사회 활동가만이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당대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정치 현실의 변화를 위한 놀라운 대안력을 가진 철학자이자 평화주의자, 그리고 휴머니스트라고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환경 운동은 타임지로부터 “녹색 세기를 만든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게 했지만, 이 사람의 정치 운동은 ‘더 악화되지 않은 미래 세계를 가능케 한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무엇보다 저를 사로잡은 것은 미래 사회가 불가능하다고 예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가 어려워진 근본적인 이유를 탐색하는 시각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국민 위에, 국가 밖에 존재하는 정치인’이라는 제 비판이 이 사람의 관점을 통해 더욱 보강되었을 뿐 아니라 대안 찾기로 전향되는 동력 역할을 합니다.

한편 저의 비판은 권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인간성의 취약함에 집중되다보니 결국 ‘정치가 부재해지는 정치’라는 결정론적 시각이 되었고, 대안이라는 것은 상당히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국민에게 받은 권력을 국민에게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정치인만이 희망이라고 하였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저의 비판과 대안이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정치 철학을 가진,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리고 혁명과도 같은 정치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사적 야욕과 무지에서 비롯된 정치인들의 반공익적, 매국적 행태로 인해 공멸할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정치적 대안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고려한 대안을 선택하든지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절망적인 몰락을 기다리든지 해야 한다.”

셰어 역시 정치인에게 그 모든 책임과 기대의 화살을 꽂습니다.

“세계사회와 그 안에 있는 국가사회가 생존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회헌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명확히 하고 장기적으로 기획한 전략을 발전시키는 정치의 최고 가치를 생각하는 열정적인 정치인이 특히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니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폄하만이 난무하고, 개별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작업이 등한시 된다면 이런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몽상적으로 들리겠는가요. 다시 말하지만 “열정적”이고 “도덕적”인, 그리고 “비전 있는” 정치인만이 미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대안임에도 말입니다.

제가 언젠가 칼럼에 그런 말을 했지요. 우리는 제도나 정치보다 정치인의 속성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요. 그들의 반국민적 행태와 속성에 국민이 얼마나 민감하며 대응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정치 전문가인 그들에게 끝까지 당할 것이라고요.

“나는 정치인에 대한 토론이 정치에 대한 토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셰어 역시 말하고 있어요.

“사회 구성원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무심해지면 무심해질수록 사회의 운명에 무심해지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방송지상에 오르내리는 비리 무능 정치인들이 3선 4선을 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무책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정치인에 대해 극단적인 무관심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이 책의 원저명은 ‘Die Politiker' 예요. ‘정치인들’이지요. 그런데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고 번역될 만큼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다양한 사실과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구의 정당 민주주의 전개 과정들, 정당의 변천과 함께 정치인이 받아야 했던 비판들, 글로벌 시대 이후 의회와 정부를 자유시장의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자유 경제 협약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민주적 헌법의 붕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정치성을 망각하게 되는 과정들, 거기에 인도주의에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NGO들이 본래의 이상을 잃고 기업이나 국제기관의 돈을 받는 '값싼 매춘부'처럼 행동하며 '가난의 지배자'가 되어가는 현실들을 구체적인 자료와 폭넓은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이자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중요한 정치적, 경제 사회적 사건들을 망라해 저자는 “평등과 정의라는 원칙을 가지고 국민의 안정·자유·보호를 추구해야 하는 국가”가 어떻게 “반란·법의 몰락·시스템의 몰락 등”을 야기시킬 수 있는지도 선명하게 꿰뚫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무능하고 권력욕에 눈 먼 정치인들이 경제를 망치고 국가의 존립을 위태하게 하는 확실한 주범이라는 인식만으로는 개혁과 발전의 대안이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저자의 정치적 원칙은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적 자기 결정권을 개인과 의회와 국가가 자연스럽게 행사할 수 있을 때, “세계 문명화가 일반적인 인권에 대한 의무를 지니며, 자연스러운 삶의 토대가 지구를 구할 수 있으며, 그 바탕 위에서 국가적으로 통제되는 다양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이상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셰어는 민주적으로 내려진 결정에 결함이 없다고는 보지 않아요. 그 한 예가 과반수 투표로 당선된 의원들은 의회 안에서 의안을 연구하는 시간보다 선거구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 더 많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사회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수정되는 것을 보장해줄 것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사회적·정치적 가치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자기 조절 능력이 있는 생명력 있는 시스템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바로 그 점을 위해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민주주의는 정치할 사람들을 뽑기 위한 형식적인 규칙총서 이상의 것이다. 민주주의는 지극히 실용적인 사회적 역할 원칙이며 그러므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법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사회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준다.”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혁명 필요

확고한 정치적 원칙 프로그램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셰어는 우리에게 닥칠 분명한 위협을 피해가거나 되돌아갈 수 있게 하는 대안은 정치 밖에 없다고 단언하니, 국가와 국제 사회를 움직이는 힘에서 정치와 정치인을 배제할 도리가 있지 않고서는 우리가 어찌 셰어의 이 말을 거부할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믿어야 하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들을 우리가 쌓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여러 가지 역사적 인식, 더 넓은 시야, 더 많은 사회적 환상을 가지고 정치과정을 관찰해보아야 한다”는 말은 정치 안목을 높이려는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조언인지 모릅니다.

“자신을 정치적 동물로 파악하는 것은 고결한 사회적 자산이다”

이 말이 당신에게는 얼마나 진실한가요? 이 말에 당신의 호흡이 한 순간이라도 멎는다면 셰어의 다음 말도 당신에게는 유용할 것 같으네요.

“우리 사회를 위한 정치를 - 그것이 우리가 보기에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은 것 같이 보이는데도 -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당신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습니까?”


정치인 가운데 “투사” “정열가” 들을 찾는 사람은 이상주의자입니까? 이런 환경 속에서 투사나 정열적인 활동가가 되는 것, 정치 안목을 그런 수준으로 높여 갖는 사람은 몽상가입니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 우리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무목적하고 정체된 자부심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처음 쟁취한 때처럼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지속적인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우리(저와 당신과 사회의 발전을 바라는 모든 사람)는 비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요. 우리의 날카롭고도 이상적인 사고가 부드럽고도 개방적인 모습으로 깃을 틀 터전을 그저 전투적으로 찾고 있을 따름입니다. 부정적인 것만을 연상하게 하는 정당정치를 반대하건, 믿을 수 없는 정치인들만이 우글거리는 의회가 없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감동을 주는 정치’, ‘상식적인 정치’이며 노자가 말한 ‘다스림이 없는 정치’ ‘군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통치’ 그것이 아닐까요?

정치 안목이 높은 당신,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 당신께 어떻게 읽힐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서 온 따옴표(" ") 안에 들어 있는 말은 전부 저자 헤르만 셰어의 말입니다. 이 글은 전북 지역 인터넷 대안 신문 참소리에도 같이 보냅니다.


정치인을 위한 변명 - 정치는 어떻게 정치인을 망가뜨리는가

헤르만 셰어 지음, 윤진희 옮김, 개마고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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