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를 꿈꾸는 아이들은 이제 어디론가 사라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학은 21세기 철저한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직업군으로 인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문학은 배고픈 직업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리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이것저것 아무나 모든 책을 내는 시대에서 아직까지 문학이라는 것이 그만큼의 권위가 살아있음을 반증해주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젠 신예작가들의 작품을 소설이든, 에세이든 만나 보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 손안으로 아주 멋진 신예작가 작품이 들어왔다. 그 책을 읽다보니 우리의 문학의 미래가 어둡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장본인은 김이은이란 작가이다. 그녀는 지난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로 첫 창작집을 내놓았다. 그 창작집은 신예작가답게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제목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설임을 느껴지게 한다.
창작집은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이다. 이 소설은 여러 단편집을 묶어 출간한 것으로 총 9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는 사회에서 밀려난 채 자살을 꿈꾸며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신선한 충격을 주며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이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평속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으며 세련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작가의식 선명한 신 감각풍’ 소설들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현대인들의 고통과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섬세한 문체는 어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심리적 외적 현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에 의한 선명한 이미지 획득, 그와 대비를 이루는 환상적 장치와 날개 돋친 상상력으로 똘똘 무장하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소외된 존재들의 고통스러움을 살짝 들여다보자.
표제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는 환상적 장치를 고안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세간의 한탄에서 따온 이름이다. 남자는 햇빛을 쏘일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서 생쌀과 야채만 먹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마다가스카르 휘파람 바퀴벌레를 키우고 있다. 그는 사무실과 주택가에 광고 전단지를 뿌리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남자의 몸은 자꾸만 구석을 향해 벌레처럼 작아져갔다” 혹은 “남자는 마다가스카르 바퀴에게나 자신에게나 모두 빛이 죽음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와 바퀴벌레가 동일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예방센터에서 일한다는 김도명이라는 여인이 그를 찾아온다. 사실 그녀는 자살예방센터에 위장 취업한 채 자살 가능자를 물색중인 엽기녀. 그녀는 ‘비상구’라는 클럽 명함을 건네며, 클럽 파티의 주인공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자살을 돕게 된다고 유혹한다. 평생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그는 그녀가 건넨 클럽의 명함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이렇듯 사회 속에서 도태되어 가는 주인공 이태백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고독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을 빌려와 이태백이란 인물의 성격을 단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바퀴벌레와 그와 동일함을 비유하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도태되어가는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신체 장애자, 자살을 꿈꾸는 실업자, 자신을 버린 남자를 한없이 기다리는 여자, 배꼽부터 시작해 몸 전체가 소멸되는 여자 등 육체와 정신이 결핍으로 가득 찬 이들이다. 데뷔작 '일리자로프의 가위'가 그랬고 이번 창작집에 실린 '쥬라기 나이트'와 '진미식당 블루스'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것을 맛깔스럽게, 돋보이는 상상력과 날카로운 비유 능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이다.
또 다른 작품 ‘쥬라기 나이트’는 직업이 모델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배꼽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귀가 사라졌다. 다시 얼마 후 오른쪽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사라진다. 여자는 불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까봐. 주인공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되돌려준다는 쥬라기 라이트에 대한 스팸메일을 받고 그곳을 찾아간다. 찾아가는 과정과 쥬라기 나이트라는 공간은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처럼 환상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오른쪽 손은 배꼽께로, 나머지 한쪽 손은 머리칼이 덮인 관자놀이께로 가져간 채 걷고 있던 그녀는 문득 떼 놓는 걸음이 서로 엇갈려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쥬라기 나이트 앞에 서서 길을 잃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빈이 비니’는 사랑이 결핍된 상황에서 외롭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빈이라는 소녀의 내면적 고통을 비니라는 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여주인공인 빈이와 선천적인 이유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삽살개인 비니.
빈이는 자기를 사생아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로서의 욕망 실현을 위해서 자기를 외딴 섬에 방치하고 있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이는 배추벌레를 짓이기는 행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비니를 죽이고도 어머니가 죽였다고 우기며 빈이는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한다.
‘진미식당 블루스’의 작중화자는 전직 간호사였다. 그녀는 그녀가 다니는 병원의사의 애인이었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면서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진미식당에서 그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고, 진미식당을 찾아온 서민들의 잔치판과 다운증후군에 걸린 칠 개월이나 된 태아를 죽여 버리고도 태연자약한 병원 풍경과 가짜 약사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남자가 동생을 만나는 장면 등이 서로 교차되면서 주인공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의 단면을 확실하게 아주 강하게 보여주고 있어 가끔은 찔끔찔끔 놀랠 정도이다. 또한 작품이 전반적으로 스토리 구성이 단순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아주 쉽게 동화될 수 있게 만든 점도 매력적이다.
대부분 이러한 내용을 그리다보면 너무 많은 상상력에 스스로 충동하여 스토리 구성이 복잡해지거나 하는데, 상상력을 말끔하게 포장하여 스토리 구성과 잘 어울러져 누구나 보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김이은 작가의 작품이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그가 빚어낸 수작들을 당분간은 읽고 또 읽어보며 곱씹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여러분도 멋진 상상력 세계로 동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