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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식집에서 푸짐하게 점심을 하셨다는 엄마가 예전에는 입에 대지도 않았던 도넛과 치즈 같은 간식거리를 한 아름 사들고 오셨습니다. “배부르다”고 하시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주전부리를 하고, 또 내게 권하십니다.

“엄마, 오늘 왜 그래?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라고 쏘아붙이는 딸에게 “그러게 말이다. 요새 계속 먹고 싶기만 하고, 움직이기는 싫네”라며 답하십니다. 좋아하지도 않은 간식들을 먹는 걸 보니, 분명 뭔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패스트푸드와 느끼한 음식들, 과자,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았던 10대 시절. 아침, 점심, 저녁 외에 일절 간식을 먹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하는 엄마가 참 신기했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언제부턴가 가끔씩 내가 즐겨 먹던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3년 전쯤으로 나와 동생의 입시를 막 마쳤을 무렵이었습니다.

‘자식의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엄마 스스로의 믿음과 임무를 어느 정도 완수했을 때입니다. 그동안 당신보다 자식의 일에, 자식의 교육에 모든 열정을 쏟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혼신을 다해 키운 작은 새들을 놓아줄 때가 된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놓아주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성인이고, 스스로 ‘다 컸다’는 자만에 빠진 개성이 강한 두 자식들은 이미 가족을 뒷전으로 하고, 자유를 누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그때는 왜 엄마가 갑자기 예전에는 먹지도 않았던 간식들을 먹기 시작했는지, 왜 갑자기 평소보다 2배나 많이 먹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별 의미 없이 놀면서 지내는 내 생활에만 바빠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50세가 다 되도록 늘 20대 딸과 같은 몸매를 유지하던 엄마의 허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엄마, 살쪘다. 허리가 없어졌어. ‘통자루 몸매’가 됐네.”
“당연하지. 아줌만데. 이젠 여성호르몬이 잘 분비가 안 돼서 그러는 거야.”


철없는 딸의 질문에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몇 년간 ‘왜 엄마가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오른다’고 했는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는지, 잠을 깊게 못 자는지, 왜 정체 모를 약들이 많이 생겼는지,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으로 들었던 ‘결혼과 가족의 이해’란 과목의 기말고사를 위해 달달 외웠던 ‘여성의 갱년기와 폐경증후군’에 대한 내용이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기억났습니다.

“여성의 갱년기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본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슬프게 느낀다. 특히 자녀가 성장한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과 허탈감, 젊음에 많은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감정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덧붙이셨던 말이 귀에 맴돌았습니다.

“폐경기가 가까워지면 여성은 심리적 불안감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 딸들이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줘서 폐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동안 무심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습니다. 언제까지나 젊게만 살 줄 알았던 엄마가 이제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또 지금 젊음을 누리고 있는 모든 딸들 역시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사실에 매운 슬픈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가족보다는 내 생활이 우선이었던 철없던 딸이 아닌, 이젠 엄마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말에는 엄마의 옷도 골라주고, 함께 공연도 보고, 같이 찜질방에서 수다도 떨었습니다.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것이지만, 사춘기 이후 한동안 민망해했던 일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시 어렸을 때처럼 가까운 모녀 사이가 되어있었습니다. 서로 너무 닮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영락없이 엄마 딸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 엄마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아직도 많은 엄마들이 제2의 인생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왜 엄마가 요즘 달라진 건지, 왜 힘들어하는지’ 미처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아들일 경우에는 여성의 신체적, 심리적 변화에 대해 무지해 예전보다 예민해진 엄마에게 오히려 반발하곤 합니다. 엄마의 갱년기를 제일 잘 이해해줘야 하고, 신경이 날카롭게 되어 과민반응을 보일 때 더욱 따뜻하게 대해주어 마음을 평온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족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녀가 엄마의 변화와 그 증상을 알고, 이해해줄 때 가장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주말에 심야영화 한 편이나 보자는 엄마의 제안에 “나 요새 인턴 하느라 힘든 거 모르냐”며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못난 딸에게 엄마는 또 자신이 선물 받은 예쁜 가방을 “이제는 난 이런 거 안 어울려”라며 건네줍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번 느꼈습니다. 배신하고, 상처주고, 매번 실망을 안겨줘도 부모의 사랑은 늘 한결같습니다. 주고, 또 줘도 혹시나 부족하지나 않을까 더 큰 사랑을 주려고 합니다. 엄마가 내게 갖는 관심의 반만큼이나마, 엄마 삶과 신체적, 감정적 변화에 관심을 두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습니다. 여전히 여성으로서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고 합니다.

당신은 내 마음속에 늘 한결같이 젊은 엄마이자 가장 소중한 친구입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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