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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서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고, 마치 먹잇감을 포착하기라도 한듯 언론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까지 엄습해 와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든 의제들이 미사일과 폭우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 매몰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편승해 일방적으로 "햇볕정책은 사망했다"고 선언하며 대북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북정책에 신중한 접근 필요

어떤 의미에서 작금의 혼미한 한반도 정세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상황이다. 그와 같은 예측을 가능케 하는 변수들 중 몇 가지를 거론하면, 우선 2007년 대선을 꼽을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선이 임박할수록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개연성은 상존하게 마련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 지형도가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구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내부 정황도 한반도 정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최근 한겨레신문을 읽다가 의미있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 내용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을 짚어 보면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득세가 읽힌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대목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다. 남한 정부가 대북정책을 구상할 때 반드시 전제해야 할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 내부의 역학구도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북한의 권력이 김정일이란 단일 창구로 수렴되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권력 체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선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분명히 북한에도 군부 강경파와 개혁 개방을 모색하는 온건파의 경쟁과 대결 구도가 존재한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햇볕정책도 바로 북한 내부의 정황을 대북정책에 연동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 체계가 강경파 중심이냐 온건파 중심이냐에 따라 햇볕정책도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시가 집권한 이후 대북 강경책이 지속되었고, 햇볕정책에 힘입어 북한 권력 체계의 주축을 형성하던 온건파들이 점차 유명무실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자연히 북한 권력 체계가 강경파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겨레신문은 바로 그러한 북한 내 역학구도의 일단(一端)을 들추어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동아, 중앙일보는 이 결정적 대목을 슬그머니 누락한 채 북한 미사일 사태를 선악 이분법 양상으로 호도하고 있다.

최근 "햇볕정책은 사망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대북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이들에게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변수 고려해야


지금부터 햇볕정책이 진짜로 사망했는지 신중하게 검토하더라도 늦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대북정책,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을 다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을 선악 이분법으로만 재단하거나 색깔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북한 내부의 역학구도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시점이다. 조선, 동아, 중앙일보는 북한 내부의 강경파, 온건파 대립 경쟁 구도를 무시한 채 "김정일 정권만 제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선악 이분법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시각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북한 김정일 정권"으로 단일화해서 사갈시(蛇蝎視)하기엔 지금의 북한 권력 체계가 간단하지 않다.

둘째, 한반도 역학구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어떤 식으로 좌우되는지 좀더 투명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다.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 휘둘려 진정성을 의심받고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실 규명의 책임은 누가 뭐래도 지식인들의 몫이다.

셋째, 남한 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도 대북정책의 중요한 변수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체로 남한 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중첩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로 인해 남한의 보수언론은 미국과 남한 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교묘하게 은폐하거나 누락할 때가 많다.

최근 미사일 사태 뿐만 아니라 지난날 남북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남한의 보수언론은 위에 소개한 다양한 변수들을 배제한 채 오직"김정일 정권만 제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북한 때리기에만 열을 올렸고, 일방적으로 북한 단독 범행설로 방향 설정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난마처럼 얽힌 남북관계, 한반도 문제를 북한 김정일 정권에 모두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으로 하여금 구조적으로 일탈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하고, 북한이 일탈을 감행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채찍을 꺼내드는 방법으로는 결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적어도 남한 사회만이라도 남북관계, 대북정책에 관한 한 모든 변수들을 고려해서 논의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숙한 북한과 무심한 미국 사이에서 그나마 우리라도 균형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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