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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물품을 전달하기로 한 인제 종합실내체육관에 도착하니 아침 8시였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인지 관계자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아 연락을 취하니 곧바로 나왔다. 5톤 트럭에 싣고 온 구호물품(쌀, 김치, 부탄가스,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내려놓고 자원봉사단은 오늘 하루 봉사를 하기로 한 덕적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번 수마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리로 넘어가는 그 길은 길 옆의 계곡이 깊고 물이 맑고 시원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천혜의 경관을 가진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포탄으로 맞은 것보다 더 처참한 수재의 참상만이 있었다. 집들 중 성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고, 도로는 대부분 유실되었다.
다행스럽게 긴급히 군이 나서 복구한 비포장도로 덕에 근처까지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 덕적리까지는 아직 개통되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덕적리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쌀, 김치, 부탄가스,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일일이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13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 덕적리는 이번 수재 피해가 큰 지역 중 하나였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모여 공동으로 수해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자원봉사단은 아침도 변변히 먹을 새가 없었기에 간단히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후 복구 작업을 했다.
커다란 건물에 쌓인 토사를 긁어내는 작업이었다. 실내에 들어온 토사였기에 장비를 쓸 수 없었고, 오로지 삽과 손수레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이 쌓인 곳은 1m가 넘었고, 최하 20cm 이상 토사가 나뭇가지와 뒤엉켜 쌓여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가 오지 않은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일일이 삽질로 토사를 긁어내어 밖으로 퍼나르는 작업은 해도 해도 별로 진척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안 하다 하던 삽질인지라 처음엔 다들 힘들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령도 터득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치워 나가는 게 보였다.
아직도 일은 산더미 같은데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수재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평공장 식당에서 취사한 식사를 날라 왔다. 양을 넉넉히 했기에 함께 한 주민들과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나눌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 잠시의 휴식마저 쉽지 않았다. 하루일정으로 봉사를 왔기에 우리가 맡은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밥심으로 기운을 얻어 오후에는 오전보다 속도가 붙었다. 다들 몸은 힘들고, 내일 아침에 온몸이 쑤실 것을 알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 오후에 합류한 젊은 군인들이 가세하면서 복구 속도는 더 빨라졌다. 또 새참으로 가져온 막걸리를 군인들과 나눠 마시면서 모두 15~20년 전의 군대생활들을 회상하면서 즐거운 이야기 꽃도 피웠다.
이제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맡은 작업은 모두 말끔하게 끝낼 수 있어 홀가분한 마음들이었다. 온 계곡이 여전히 흙탕물이라 씻기도 쉽지 않았지만 마침 지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그나마 맑아져 얼굴, 손, 다리에 튄 흙탕물을 대강 씻어내고 다시 차에 올랐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다들 곯아 떨어졌다. 오늘의 이 봉사활동은 모두에게 힘들었지만 소중하고 의미있는 추억으로 간직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중간에 사진 이미지를 넣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