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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골 아줌마가 오마이뉴스를 만났습니다. 한 기자로부터 시작됐던 시민참여뉴스매체가 일으킨 대단한 반향 때문에도 그 존재를 모르지야 않았지요. 하지만 모뎀으로 하는 느린 접속과 넷맹에 가까운 탓에, 또 읽을 줄만 알았지 쓸 일이 그리 없었던 터라 오마이뉴스는 먼 세계였답니다. 다만 세 해 전인가 제가 사는 산골을 방문했던 이가 역시 오마이뉴스를 통해 글을 올렸고, 그것을 통해 더러 사람들이 찾아온 적은 있었네요.

"오마이뉴스가 요새 당신 놀이터구나."
마치 처음 인터넷을 배운 주부가 밥도 잊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 것에 견주며 남편이 등 뒤에서 던진 말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읽고, 반응을 할 수 있는 걸까?”
한국이란 사회의 무엇이 오마이뉴스의 기적을 가능케 했는지 놀라웠지요.

처음 글을 올린 날, 정말이지 뜻밖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80년대를 거친 사람치고 거리에 나서보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요. 그 거리에서 함께 있었던 선배로부터 온 것이었지요. 십수 년도 넘게 아무도 소식 몰라 했는데, 멕시코 땅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한국을 다녀간 게 십년 가까이 된다던가요. 올 9월에는 저희 산골을 다녀 가겠다 하였습니다.

가끔 낯선 이로부터 글을 잘 읽었다는 메일들도 날아왔습니다. 공감, 크게는 연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글들을 통해 정말 쓸 수 있는 힘이 나데요(그러니 긴 날을 이어쓰기 하는 이들은 정말이지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또, 꼭 영어가 아니어도 말이 어리숙하고 세상살이에 서툴다는 게 글을 통해서도 많이 드러났던 모양인지 응원을 보내는 이도 있었더랍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다른 나라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선배 소식도 들었습니다. 정작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를 통해 알게 되기도 하였지요. 산골살이가 참 그렇거든요. 때로 난리가 나도 모르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어떤 문제에 바로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그것을 보게도 되고 한편 삶의 중심을 잘 가져가게도 되는 긍정성도 있지요. 듣는 게 병이고 보는 게 악이 되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니.

어느 날은 뉴욕에서 전화도 왔습니다. 목회를 하시는 분인데 산골공동체를 도울 길이 없을까 해서 하신 거랍니다. 홈페이지와 기사, 방송을 통해 두루 알아보시고는 굳이 시카고까지 연락을 해서 아주 오랜 시간 통화를 하셨지요.

공동체와 산골공동체배움터에 대한 더한 정보를 물어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발적 가난과 생태적 삶, 새로운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자신의 삶, 자기가 해온 일들에 회한이 들 때가 있지요. 이게 다 무언가, 뭐 하자고 한 짓인가, 가려던 길이 맞는가, 이 잘난 것 한다고 스스로를 그토록 혹독하게 했던가, 순수한 열정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인가, 그리고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실망과 삶에 대한 좌절이 오는.

어려운 시간에 한 먼 나들이었더랍니다. 자칫 늘어지고 처져있을 수도 있는 날들에 오마이뉴스에 날마다 글을 올리고 읽는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게 해주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한 교통도 삶과 꿈을 향한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었지요.

적절한 편집에 감탄을 한 적도 많았지만 편집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큰 부분도 적지 않았네요. 다른 사람들 글까지야 모를 일이지만 제 글들에 대해선 그러하였습니다.

입양을 다루었던 ‘지 새끼도 못키우는데...’라는 글은 설혹 관심 있는 이가 많지 않더라도 면 할애가 더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읽히는 글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읽혀야 하는 글도 만들어야하는 게 언론의 책임이기에. 그래서 사회의 가치관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어가야하는 것이 그 순기능이기에.

우리가 부모에게 안마를 한 게 언제였던가 되물으며(?) 아홉 살 아이의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애씀, 그리고 재미를 담았던 ‘안마조정기 발달사’ 같은 글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사는 일(‘사는 이야기’ 꼭지였으니)의 즐거움이 달리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니니.

반면 정작 ‘서브탑’으로 올라간 글 가운데(남의 글들이 아니라)는 꼭 그럴 것도 아니었다 싶은데 그리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글을 쓴 주제가 바뀌고 제목도 그 주제에 맞춰져 바뀌더니 ‘메인서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메인서브’라고 꼭 반가와 할 것만은 아니었지요.

가장 큰 불만은 문장이나 낱말 ‘갈이’에 있었습니다. 전달에 거의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글자를 바꾸어놓았을 때 말입니다. 우리말을 병들게 한 일본말을 피해서 쓴 것인데 굳이 도로 일본말법을 따르고 있기도 하였습니다(이것은 편집부에 글을 따로 드리기도 했지요). 대표적인 포털사이트의 메인뉴스조차 기본 맞춤법도 안 되는 기사가 흔한 세상에 무슨 낡은 이야기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 역시 모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국어를 잘 살려 쓰는 것의 중요함이야 백 마디로도 모자랄 일 아닌가요. 말은 존재의 집이라지 않더이까. 이미 널리 상용되어 고집을 부리는 것이 과하다 싶을 때야 물러나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싶습니다.

그래서 편집부에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글 갈고 닦기>를 같이 읽자고 권합니다. 저도 공부를 하고 있는 가운데 있고, 공부한 것을 자주 잊기도 하여 글이 형편이 없으나 꾸준히 보면 나아지겠지요.

날마다의 일기였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공유하기에 모자란 것도 많았겠습니다. 그래도 읽는 이가 더 너그럽기를 믿으며 의미 있는 작은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처음 한 의도만큼 잘 해 내지야 못했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네요. 함께 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시 산골로 돌아왔습니다. 공동체와 생태와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이 혹여 지나는 길에 들리신다면 반가이 맞겠습니다. 거친 밥과 불편한 잠자리나마 기꺼이 내드리겠습니다.

짙은 녹음, 기쁨도 그리 넘치소서.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2006년 7월 27일 나무날, 비.

덧붙이는 글 | 옥영경 기자는 생태, 교육,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1989년부터 관련 일을 해오고 있으며, 이어 쓰고 있는 ‘가난한 산골 아줌마, 미국 가다’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해서 들어간 산골에서 잠시 나와 미국에서 두 달을 체류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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