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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빼 패션이 잘 어울리는 아들 여자친구
몸빼 패션이 잘 어울리는 아들 여자친구 ⓒ 장미숙
산 밭에서 내려다 본 고향 마을
산 밭에서 내려다 본 고향 마을 ⓒ 장미숙
"힘들지? 좀 쉬었다가 해."
"아니에요. 다리가 조금 아프지만 괜찮아요. 재밌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호미질일 텐데도 그럴 듯하게 밭을 매는 아들 여자친구 때문에 저와 친정엄마는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밭에, 그것도 처녀가 밭을 매는 모습이 생경스럽긴 했지만 참 보기 좋은 풍경이었지요.

지난 금요일(8일), 아무 계획도 없었는데 아들이 시골에 가자는 바람에 친정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여름휴가도 못가고 곧 돌아올 추석에도 시골에 갈수 없는 제 처지를 생각해서였나 봅니다. 저는 그저 고맙기만 했습니다. 한여름도 지나 날씨도 그만인데다 아들과 여자친구, 막내아들과 함께 홀가분하게 떠난 시골길이라 그런지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큼 마음이 설렜습니다.

고향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그때까지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부모님의 따뜻한 웃음과 산뜻하고 맑은 공기, 풀벌레소리가 우릴 반겨주었습니다. 넉넉하기만한 고향의 품에 안겨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벌써 엄마와 아들의 여자친구는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소박하게 차려진 아침을 먹고 우리는 모두 산에 있는 밭으로 향했습니다. 마늘을 심어야 하는데 밭에 풀이 지천이라며 엄마가 걱정을 하시는 통에 모두 밭을 매기로 했거든요. 오랜만에 호미를 잡아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콩을 말리기 위해
콩을 말리기 위해 ⓒ 장미숙
어렸을 때 엄마랑 함께 수도 없이 밭을 맸는데 그때는 밭매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변변한 모자도 없던 시절이라 수건 한 장으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뙤약볕에서 밭을 매곤 했었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했던 산밭에 그때는 고구마와 모시가 참 많았습니다.

"느그랑 같이 한께 금방 밭을 매겄다. 나 혼자 할라면 며칠을 왔다 가야 할 것인디…."

엄마는 여럿이 함께 밭을 맨다는 것 자체만으로 매우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두어 시간 가량 밭을 매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팠지만 마음만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고향에 와서 부모님 일손을 조금이라도 거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지만 매번 여의치 않아 늘 가슴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고구마 밭
고구마 밭 ⓒ 장미숙
밭을 다 매고 난 뒤 참깨를 베어서 내려오는데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 고구마줄기를 뜯기로 했습니다. 여자친구가 고구마줄기 반찬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거든요. 고구마 밭에 갔더니 밭가로 울타리를 쳐놨더군요. 엄마는 매년 멧돼지가 내려와 고구마를 다 파먹어 버리는 통에 울타리를 쳐 놨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 고구마가 무사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습니다.

고추 꼭지를 따고 있는 엄마와 아들
고추 꼭지를 따고 있는 엄마와 아들 ⓒ 장미숙
오후에도 할 일은 태산같이 많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시는 부모님들을 돕기 위해 고추꼭지를 따기로 했습니다. 올해 고추농사는 지난해에 비해 형편없다고 했지만 곳간에 가니 말려둔 고추가 자루마다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감나무 밑에 멍석을 깔고 부모님께서 애써 수확하신 고추를 쏟았습니다. 고추 하나하나에 부모님의 정성과 땀이 녹아 있는 것 같아 소중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고추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색깔도 정말 고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여름 내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고추를 따고 씻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더군요.

고추가 지난해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고추가 지난해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 장미숙
고추 꼭지를 다 따고 난 뒤에는 고추밭에 가서 고추를 땄습니다. 모두 양동이 하나씩을 들고 고추를 따는데 서툴러서 익지 않은 고추도 따버리고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하니 금방 쌀 포대에 고추가 가득 찼습니다. 고추를 다 따고 난 뒤 아들과 여자친구는 통닭 바비큐를 한다고 면내에 가서 닭과 맥주를 사왔더군요.

감자를 구우려고 씻고 있나 봅니다
감자를 구우려고 씻고 있나 봅니다 ⓒ 장미숙
구수하고 맛있는 된장
구수하고 맛있는 된장 ⓒ 장미숙
닭을 호일에 싸고 마당에 있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서 감자랑 함께 구워낸다고 불을 피우고 한참 난리를 치더니 제법 그럴싸한 통닭 바비큐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저녁에는 부모님과 맥주를 마시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왜 그리 시간이 물 흐르듯 빨리 흐르는지….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날 올라와야 했습니다. 엄마는 우리가 가져갈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토방에 즐비하게 올려놨더군요.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고향을 떠나오는데 골목길에서 손을 흔들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제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얼마나 허전하실까요.

도시처녀답지 않게 시골이 좋다는 아들 여자친구는 내년에도 오고 싶다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아들과 몸빼와 고무신 패션으로 생소한 시골일 한다고 땀을 흘렸을 여자친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합니다. 아마 좋은 추억으로 가슴속 깊이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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