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표지, 지구별 여행자>
ⓒ 김영사
주말이면 언제나 대형마트 주위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장바구니에는 냉장고 안에 가득히 넣어둘 것들을 사기위해, 계절 별로 집안을 가꾸기 위한 장식물과 몸의 호사스러운 치장을 위해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열심히 물건을 고르고 사기에 분주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주말이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마트에서 한나절을 보내곤 한다. 예전보다 더 커진 카트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옮기며 신중히 물건을 고른다. 물건을 살필 때야 말로 '심사숙고'를 한다.

@BRI@ 언제나 어디나 넘칠 대로 '소비하라'는 구호에 실려 이리저리 쓰고 여기저기 버리는 일로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다른 대체물이 없이 그지없이 풍요로움으로 넉넉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과는 다른 것, 좀 더 가치있고 본래적인 것, 고유한 그 무엇, 그것들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영혼'이란 단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종교를 가진 이들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신'도 아니고 그보다 더 추상적이기만 한 이 낱말이 도대체 나와 관련이 있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심야의 지상파에서 본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도를 접하게 된 것이 단초가 되었다. '영혼'이 있는 나라. '영혼'이 생활이고 산업이 되는 나라. 점점 더 황폐한 삶을 바로 보기위한 진실들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새겨질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영혼의 나라, 인도.'

서점가에서 인도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름. '류시화'. 그의 특별한 인도사랑은 익히 들어온지라 '흔하다'는 식상함에 발길을 돌려 다른 이들의 '인도'를 얻고자 했으나 역시 손에 잡혀 지는 건 그의 책. 그 중에서 '지구별 여행자'라는 한 켠에 밀려나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하얀 바탕에 도장처럼 인도의 여인들이 선처럼 이어진 표지가 정겹다.

'몸이 머무는 집 따로 영혼이 머무는 집 끝없이 밀려드는 허무는 본질에의 갈망은 나를 인도로 떠나게 했다.' 그의 몸이 인도를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렷하다.

철학과 과학이 본래는 한 뿌리를 두듯 물질문명은 과학으로 철학은 사유의 세계만을 고집하는 나뉨이 조화로운 곳은 어디일까? 인도는 분명 한곳에 치우쳐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요 근래 그들의 놀라운 과학적 성과들을 뉴스로 접할 때 마다 그들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싶었다. 본질의 추구가 정신의 추구뿐만이 아니라 과학의 시초가 된 자연에서 시작됨을 볼 때 인도는 영혼의 나라, 과학의 나라였다.

이 책은 삶의 보편과 영원을 열망하는 인도인들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곧 단순하게 두 가지만을 묻고 답한다.

'아 유 해피?'와 ' 노, 프라블럼'.

그들의 가난과 더러움을 넘어선 역겨움의 생활, 엉뚱한 대답과 기약 없는 기다림. 한 번의 구경꾼인 여행자에겐 그들의 남루한 삶은 비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저자는 "무질서 속에서 이 거대한 삶을 움직이는 불가사의 한 질서를 차츰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깨달음 끝에서 진리를 발견 하고, 어처구니 없이 진실한 곳, 매순간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신 앞에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릴 일이다. 진정한 자신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세워 놓은 질서에 순응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나는 자유라 부른다.


얼마나 인도를 여행해야 인도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일까. 쥐가 나오는 더러운 여인숙을 참을 수가 없어서 주인에게 항의해 봤자 '지금으로 만족하라'는 메시지에 순응하게 되는 저자의 경험.

오직 내세를 위해 다시 태어남을 위해 지금의 고통스런 삶을 행복이라 믿는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이렇게 책으로 접하는 방식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10년이 넘게 인도를 경험한 저자조차 아직도 그들의 삶을 체화하는 단계에 놓여 있지 않는가.

인도에서 나는 때로 성자처럼 생동했고, 야박하게 가격을 깎는 관광객처럼 굴기도 했으며, 때로는 거칠게 외로웠고, 때로는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걸인에게 1루피 주는 것을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기도 했으며, 화장터에서 인생의 덧없음에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30분 위 여인숙으로 돌아오면서 릭샤 운전수의 차삯 백 원을 놓고 끈질긴 협상을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상의 반복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자양분이 아닌가. 어차피 무엇도 벗어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 우리에게 이러한 경험들의 반복이야말로 가슴속에 진흙 속에 진주를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책 뒷부분에 덧대어진 저자와 사두들(신에게만 전념하는 수행자)과의 짧은 대화가 부록처럼 재미있다.

요즘 연말연시라 벌써부터 항공권이 매진된 곳이 많다고 한다. 모두들 한해의 끝을 멋진 추억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인도도 지금이 여행하기 좋은 때라고 한다.

12월의 끝자락은 화려하다. 조용한 한해를 돌아보고 싶다면 아니 지금까지의 나의 지난 삶을 반추해 보고 싶은 이들은 인도를 마음에 새겨 보기를.

'마술의 나라'답게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고 반짝거림으로 눈부실 지도 모를 일이다. "인도를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라는 저자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면.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김영사(2002)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