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서 봐도 알겠지만 건축 양식이 명동성당과 흡사하다. 아니 명동성당보다 더 아늑하고 예쁘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성당 앞에 있는 마리아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안에 들러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도 하고 나왔다.
이렇게 전동 성당을 훑어보고 진안 방면으로 달려갔다. 우선 생각나는 곳은 무주쯤이나 덕유산 정도…. 아니면 가다가 좀 더 내려가서 영추 계곡 정도에서 저녁을 먹고 잔 다음, 다음날 아침엔 산에 가벼울 만큼만 등산도 해볼까나?
그렇게 내려오다가 몇 번의 진로 수정 끝에 영추계곡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아마 겨울이 되어 영업 끝인지는 몰라도 들어가는 내내 적막강산이었다. 먹을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돌려 차라리 지리산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지리산 IC를 향해 달렸다.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지리산 매표소만큼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와 가까운 식당에서 우선 저녁을 먹었다. 맛이 괜찮았다. 잠자리도 그 집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모처럼 등 따뜻한 방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차를 몰고 지리산 매표소를 통과하였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바라본 지리산 전경이란…. 굳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리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광경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한 폭의 수채화. 바로 자연 그것이었다.
성삼재에 차를 주차하고 노고단을 향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그냥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도로였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차를 타고 올라가는 도로인 듯했다.
눈이 내렸다가 녹아 다시 얼은 듯, 길바닥은 얼어있었다. 그런 길을 올라가니 노고단 휴게소가 나온다. TV에서 등산객들이 모여 밥도 해먹고 하던 곳인 노고단 휴게소에서 조금 올라가면 노고단 고개가 나오는데, 나는 여기가 노고단의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오른쪽 저만큼 위에 노고단 정상이 있단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풍경도 역시나 조물주 어르신의 창작품인 대자연 앞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고 왜소해지는 초라한 미물인 인간임을 돌아보게 한다.
이곳이 비로소 노고단 정상이다. 물론 증명사진도 필요하지 ㅎㅎ
다시 성삼재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차를 몰고 구례 쪽으로 가다가 거의 마지막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어디에서 봐도 감탄만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에서부터 구례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경사가 심했다. 멋모르고 브레이크를 밟고 내려가다 보면 브레이크가 파열하기 십상일 그런 길이었다. 그래서 브레이크 파열 경고문도 많았고, 1단이나 2단으로 내려가라는 경고문도 많았다.
구례 화엄사 입구에 있는 대나무 통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런저런 TV에 15번이나 나왔다고 붙어있었다. 통밥을 시켰는데 반찬이 19개였다. 이것이 그집에서 대나무 통밥을 시켰을때 나온 반찬들이다.
화엄사를 들어가려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 겨울에 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순천을 지나는데 집사람이 순천 갈대밭을 신문에서 봤는데 아주 좋더라고 그랬다. 그래? 그럼 가 보지 머….
솔직히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고, 또한 이정표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짜증 내며 찾아갔지만, 상당히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봄이나 가을에 갈대가 흐드러지게 푸른 옷을 입고 흔들릴 때는 아주 장관일 듯싶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보성 녹차 밭을 가보고 오늘을 마무리하자 그랬다. 보성 녹차 밭을 찾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집, 대한 다원이라는 곳은 기업형으로 주차장도 크게 완비하고 입장료까지 받았다. 그것도 1인당 1600원씩 받았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친구들이 입장료를 받는 것은 너무 황당해 보였다.
그 먼 곳에서 온 외지인이 그 많은 녹차 밭 중에 자기네 집에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괘씸해서 이 친구들 집에서는 아무것도 팔아주지 않았다. 이 집을 나오니 주위에 온통 녹차 밭이었는데 괜히 이 집으로 갔다 싶었다. 물론 이런저런 매체에 하도 많이 소개가 되어 낯익고 좋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율포해수욕장 쪽에서 민박을 할까 하다가 어제도 민박을 했는데 또 민박하기도 그렇고, 집사람이 어딘가 온천이 있으면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가까운 곳에는 온천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어떻든, 해안선 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해수 녹차탕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는 찜질방 같은 커다란 건물이 손짓을 한다. 핸들을 꺾어 여장을 풀었다. 옥섬워터파크. 이 집에 해수탕이 좋은 것 같았다. 며칠간 몸이 매끄럽고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윤선도가 어쩌고 했다는 보길도를 가자고 그랬다. 보길도를 가려면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고 해서 완도를 향해 차를 달렸다. 그러다가 문득 눈앞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어쩌고 하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산 초당’. 그래 여기도 한번 들러보자.
오랜만에 정말로 가까이에서 숨결을 느낄만한 훌륭한 어른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순신이나 이율곡 이런 사람이 모자라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 아니고 김구 선생 같은 분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한 세상을 살다 가더라도 유배지에서조차 나름대로 여유와 멋을 즐길 줄 알며, 후학들에게 올곧은 정신을 물려주고 또 입에 발린 말만이 아닌 실사구시를 실행한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양반이 수원화성 축조를 위해 거중기를 발명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감명깊게 새기면서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다산초당을 나와 보길도로 가기 위해 완도를 향해 달렸다. 보길도 배타는 곳에 대한 안내가 허술해서 완도를 한 바퀴 돌았다. 보길도로 가는 뱃삯이 장난이 아니었다. 차량은 운전자 포함 2만원, 승객은 1인당 7700 원. 왕복이 55400원이었다.
보길도에 들어가서 윤선도 어쩌고 하는 곳은 오직 한군데이고, 가는 길도 단조로웠다. 그런데 딱 이것 하나였다. 더구나 무슨 내부 수리한다고 볼 것도 별로 없었는데도 입장료를 받았다. 돈이 아까웠다. 그럼에도 좋게 생각하려 무척 애를 썼다. 허름하게 보였던 정자도 사진으로 보니까 대단해 보인다. 아니 그만큼 나의 눈이 세파에 찌들어 아름다움을 못 보는 것인가….
정자 뒤 연못 그림이 좋아 보여 사진 한 방 찍었다. 그리고 이곳을 나서면 정말로 갈 데가 마땅하지 않았다.
길을 달려 망끝 전망대라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길바닥에 고기를 말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고,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다시 돌아 나와 공룡알 해변이라던가? 바닷가에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밭이고 그것이 매끈매끈한 부드러운 돌멩이들이 널려 있었다. 들고나가다 걸리며 벌금이 상당량 된다고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또 검은 돌멩이들이 깔린 해변이 특징인 예송리 해수욕장에도 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육지로 가는 배편을 알아봤는데 아뿔싸! 육지로 가는 배편이 오늘은 끝났단다. 하는 수 없이 보길도에서 하룻밤을 더 자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하는 첫 배로 땅끝으로 왔다.
덕분에 만약에 어젯밤에 그냥 올라왔더라면 틀림없이 못보고 지나쳤을 공룡 화석지에서 발자국도 둘러보고 왔다. 공룡 발자국을 보면서 중생대를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지난밤에 카메라를 충전하지 않아서 딱 한 장만 찍을 수 있었다. 오다가 해남 천일식당에서 점심으로 떡갈비를 먹고 올라왔다.
덧붙이는 글 | 이렇게 둘러본 유람 경유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날 : 대전 -> 전주 (전통문화체험관, 전동 성당) -> 지리산 입구
둘째 날 : 지리산 (노고단) -> 순천 (갈대밭) -> 보성 (녹차 밭) -> 해수탕 사우나
셋째 날 : 강진 (다산초당) -> 완도 -> 보길도 (윤선도)
넷째 날 : 보길도 -> 땅끝 -> 해남 (공룡) -> 대전
비용은 대충 이렇다.
전주 전통문화 체험관 : 무료
지리산 입구 민박집 : 숙박비 (25000원) + 저녁식사 (13000원) = 38000원
지리산 : 출입구 매표소 (2인 3200원) + 성삼재 주차비 (2시간 3400원) = 6600원
대나무 통 밥집 식사비 (20000원) = 20000원
순천 갈대밭 : 무료
보성 녹차 밭 : 대한다원 입장료 (2인 3200원)= 3200원
해수탕 : 숙박비 (40000원), 사우나 (투숙객 할인으로 1인당 3000원) = 46000원
다산초당 : 무료
보길도 뱃삯 : 차량과 운전자 2만원, 일반 승객 7700원 = 55400원 (왕복)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입장료 (2인 2000원) = 2000원
보길도 숙박비 (20000원) 갈치조림 식사비 (23000원) = 43000원
해남 황산면 우항리 공룡화성지 입장료 (2인 2000원) = 2000원
해남 천일 식당 떡갈비 식사비 (36000원) = 36000원
여기에 차 휘발유 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정도가 더 들었다.
내 블러그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