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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환씨.
ⓒ 김준석
16일 저녁, 서울의 어느 조용한 찻집에서 국내 버섯업계의 일인자라 칭할 수 있는 양평하나농산연구소의 전용환 대표이사를 만났다. "유명 일간지나 방송프로그램에만 출연하시던 분이 저 같은 평범한 대학생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인사하자, 전씨는 "허허, 난 그냥 농사꾼인걸요"하고 답했다. 전씨는 약간 작고 마른 체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역동적인 힘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전씨는 육상선수에서 버섯박사로 다시 태어났다. 전씨의 인생이야기는 방송국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조명받았다.

@BRI@육상 국가대표에서 버섯 박사가 되기까지

전씨는 충남 홍성군 광천읍 출신으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의 육상대표선수였다고 한다. 노력 끝에 전씨는 충청남도 육상대표를 거쳐, 육상 마라톤 부문 국가대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인 육상 선수에 대한 국가의 대우가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전씨는 무작정 농사를 지어보겠노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경희대 1학년 체육학과에 재학 중이던 전씨는 어느 날 운 좋게 일본 도쿄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교환학생 자격을 얻게 됐다. 전씨는 일본에서 공부하며 한 버섯관련 업체에서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다.

3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다. 전씨는 일본 박사들이 출근하기 전에 미리 회사에 와서 청소도 하면서 어깨너머로 버섯 재배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씨는 일본에서 버섯 관련 기술을 배우던 중 기계를 잘못 작동시키는 바람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받은 경험도 있다며 필자에게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손가락 두 개를 보여주기도 했다.

몇 년 후,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있던 일본의 버섯재배 기술을 습득한 전씨는 귀국해서 버섯산업과 관련된 기술과 연구계획을 국내 버섯관련 업체에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대학교수를 비롯해 버섯 관련 업체의 기술자 등은 "미생물학을 따로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웠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전씨는 버섯 재배 기술로 직접 새로운 버섯을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스스로 버섯공장을 세우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필자가 "성공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하고 묻자 전씨는 주저 없이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라고 답했다. 전씨의 동생은 삼성전자에서 잘나가는 엔지니어였는데, 그곳에서 번 돈을 거의 전부 전씨가 버섯공장을 세우는 데 보탰다고 한다. 전씨는 "동생의 결정을 존중해준 제수씨에 대해서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전씨의 양평하나농산연구소는 참송이버섯, 흰잎새버섯, 셀레늄노랑꽃버섯의 인공재배기술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현재는 버섯의 기능성 물질을 연구하고 버섯의 항암 효능 확인을 위한 동물실험을 하는 등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버섯을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내 성격은 마라톤의 특성과 같다"

전씨는 "나는 뒤끝이 없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만일 내가 누군가와 싸우게 된다면 나는 그 사람과 다시 싸워서라도 관계를 정상화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새로운 모험을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데,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라고 말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마라톤 역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결국 끝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성격은 마라톤의 특성과 같다"고 덧붙였다.

전씨는 "요즘 학생들은 너무 대기업에만 입사하고 싶어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남이 가는 길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항상 1등만이 최고는 아니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고 그것을 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농업에도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가 많이 있는데, 앞으로 젊은이들이 농업분야에도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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