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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일부 학교 시범으로 시작한 방과 후 학교는 현재 98.9%의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방과 후 학교는 정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는 문화, 예술 체험활동 위주로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한다. 초등학교에선 맞벌이 가정의 자녀를 보육하며 학생들의 특기를 기르는 프로그램을, 중고등학교에선 학년에 상관없이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거나 적성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인적자원부(아래 교육부)는 이를 통해 학생들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사교육비를 감소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다르게 방과 후 학교가 파행 운영하는 사례가 드러나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보충수업으로 전락한 방과 후 학교
@BRI@인천교육청에 따르면 인천 내 학교에서 3570개에 달하는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전체의 33%인 1177개가 방과 후 학교의 당초 운영취지인 특기적성교육이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 위주의 보충수업으로 활용되고 있다. 방과 후 학교가 기존 보충수업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것. 더욱이 중학교까지 보충수업 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산의 한 고등학교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방과 후 학교를 실시하고 있다. 특기 적성보다는 수준별 교과 선택 위주로 해서 성적으로 반을 편성한다. 한 달 방과 후 학교비로 대략 2만원~3만 원 정도 걷는데, 이 비용의 대부분은 강의 담당 교사들에게 지급된다.
김모 교사는 "취업보다 입시를 준비하는 인문고등학교이기에 특기 적성보다 국영수 위주의 보충 수업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학교뿐 아닌 다른 고등학교도 이렇게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학년 정모군은 "예체능 계열이 아니면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방과 후 학교를 듣고 있다"며 "자율학습이 끝나고 다시 학원에 간다"고 했다.
줄지 않는 사교육에 교육 격차 심해져
서울 강남에서는 학부모들이 인기 학원 강사를 방과 후 학교 강사로 모셔와 이른바 '황제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 다른 지원금 없이 부모들이 대신 강사비를 지불하고 있는 것. 서울의 한 논술학원 관계자는 "방과 후 학교에 강좌를 열겠다는 학교 측의 연락이 오면 논술 강사를 배정하고 교재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저소득층 자녀들은 방과 후 학교 참여율이 저조하다. 한 교육단체 관계자는 "저소득층 자녀의 학습기회를 확대하려면 수강료를 낮춰야 하는데 이럴 경우 월급이 비싼 유능한 강사를 데려오지 못해 교육수준도 떨어진다"며 사교육 시장의 불평등이 방과 후 학교까지 확대되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경우 대도시 지역보다 지원이 부족해 방과 후 학교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 10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예산 30억을 들여 바우처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 농어촌 자녀들에게 방과 후 학교 쿠폰을 나눠주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방과 후 학교에 대해 제기된 각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인식 변화 필요
경상도 영덕교육청은 초등학교와 합의 없이 사설학원 강사와 계약을 맺고 정규 수업시간에 방과 후 학교를 실시했다. 이를 시정하라는 교사들의 요구에도 영덕교육청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교사들은 영덕교육청의 파행을 언론에 공개했다.
영덕군 야성초등학교의 최모 교사는 "공개된 자료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계약이기 때문에 강사의 자격이나 수강료가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의문"이라며 "무엇보다 교육비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가 좋은 일은 다 챙기고 학교, 학생, 학부모에게 무거운 짐만 떠맡기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전교조 영덕지부의 한 관계자는 "수업 진행을 위해 강사한테 교재 구입을 강요받아 교재를 구입했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시행한 정책이 도리어 사교육비만 늘리는 일만 만들었다"며 정부 정책을 꼬집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인천과 울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방과 후 학교 참여 학생은 한 달 평균 3만 원 정도 부담한다. 사설학원보다 저렴하게 컴퓨터, 음악, 미술, 체육, 영어 등을 배울 수 있지만 방과 후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줄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최모 교사는 "학생들은 방과 후 학교를 끝내고 곧바로 사설학원에 간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방과 후 학교를 학원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방과 후 학교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 방향의 개선 시기, 전문가들 지적
방과 후 학교의 과도한 목표 설정이 오히려 정책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늘고 있다.
중앙대 교육학과의 한 교수는 "정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는 스포츠와 문화예술 활동을 중심으로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며 "기초 학습 부진아를 위해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해야한다"고 얘기한다.
전교조 울산지부 관계자는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흡수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라며 "교과중심 보충수업을 전면 폐기하고 나름대로 호응을 보이고 있는 보육중심, 소질계발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기본법도 없이 진행되어온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법적 근거 없이 교육부는 방과 후 학교를 이끌어 비정규직 양상을 심화시키며 강사 인권까지 박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익자 부담 형식은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에 개정법이 조속히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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