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교육지원에 관한 법, 장애인 복지법,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장애인 소득보장법, 장애인 기본법, 장애인 노인 임산부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
2006년 12월 22일, 임시국회 마지막 날까지 계류 중이었던 장애인 관련 주요법안이다. 올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활발했던 해였다. 그만큼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한 요구와 사회적 차별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장애인들은 관련 법안 통과를 기다리며 장애인 복지시설 및 제도의 향상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담은 법안은 결국 올해 안에 처리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 처리 내년으로 미뤄지나
@BRI@지난 5월 8일,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229명은 '장애인 교육지원법'을 공동발의 했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또 지난 12월 18일,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여야 국회의원 37명 공동)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과 12월 7일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이렇게 관련 법안들이 정체되어 있지만, 정치권은 올해 정기국회 및 임시국회가 끝날 때까지 장애인복지법 개정은 본격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여야는 사학법 재개정, 새해 예산안 처리 문제를 두고 공방만 벌였을 뿐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지난 4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치권과 정부는 이러한 장애인들의 요구에 당리당략으로 접근하거나 어느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말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장애인 단체들도 국회의 책임 방기를 비난하며 서둘러 국회의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22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장애아 부모들은 이제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며 "안일한 정부의 태도에 부모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오늘을 끝으로 부모들은 정부입법안 제출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법안들은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공산이 크다. 26일부터 다시임시국회가 열리지만 새해 예산안 재처리를 목적으로 열리는 것이므로 장애인 관련 법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예산은 깎이고, 본인부담은 늘고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자체의 장애인 정책은 본인과 그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지난 11월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회원 20여명은 '활동보조인서비스 본인부담금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별관 장애인복지과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서울시가 발표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지원 시범사업 추진계획'은 활동보조인 비용의 10%를 본인에게 부담시키고 있어서 장애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 시킨다"고 말했다. 또 '활동보조인의 모집과 교육을 중개기관에 맡기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사무국장은 "중증장애인들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냐"며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장애인에게 자부담 시키는 것은 또다시 장애인을 가족의 책임으로 미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장애인 복지 예산에 대한 인식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지난 12월 8일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예산 276억의 삭감', '장애수당 및 장애아동부양수당 증액분 2276억의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또 빈곤에 처한 많은 장애인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상 증액분 1조2500억 원의 예산 역시 전액 삭감을 요구하는 등 보건복지관련 신규 및 예산 증액 35개 사업 대부분의 예산인 총 1조 7천 5백억 원의 삭감을 주장했다.
이에 11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관련단체 장애인들은 항의 성명을 내고, 박 의원의 의원실을 방문, 복지예산 삭감 주장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박의원이 철회입장을 밝히며 일단락됐지만 이번일은 '각종 예산배정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장애인복지에 대한 현실이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많다.
윤두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각 지역장애인들이 힘겹게 투쟁한 결과, 서울, 대구, 충북, 울산, 경기도 등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제도화를 약속했다"며 "정부가 발표한 내년예산이 295억에 지나지 않아서 기대에 못 미쳤는데, 한나라당이 이것마저 없애겠다고 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뒤로 가는 장애인 복지 정책
장애인들은 현재 직업취득의 기회마저도 차별을 받고 있다. 현장에 장애인을 위한 업무보조 장치가 없거나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취업 또는 시험응시의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1일, 서울시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점역시험지를 제공받지 못해 시험을 못 치른 시각장애인 강윤택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행정 기관에서 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당시 그가 지원한 분야는 9급 사회복지직으로 그는 '사회복지 1급 자격증', '특수교육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고, 점자나 컴퓨터로 변형된 글자는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또 지난 5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가한 법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시각 장애인들이 마포대교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며 한강으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각 장애인들이 안마사로서 소득을 얻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려진 헌재의 판결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후 안마사 자격증 취득을 시각장애인으로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사건은 마무리 됐지만 이미 장애인들의 상처는 커진 뒤였다.
2006년 한 해 동안 장애인들의 인권을 쟁취하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일부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하지만 상당부분 그들의 요구는 정치권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해를 넘기게 됐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누리는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현수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