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애인 택시기사 모집'

지난 연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한 택시 뒷유리에 부착된 위와 같은 공고를 발견했다. 장애인 기사가 운행하는 택시는 한 번도 이용한 경험이 없는데다 '요즘 택시업계 어렵다는데 굳이 장애인 택시기사를 뽑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고를 내붙인 택시회사의 이름을 확인하려 했으나 택시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 덕수콜택시
ⓒ 김연실
차선책으로 길에서 만난 법인택시기사들에게 주변에 장애인 택시기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저희 회사에는 한 분도 안계십니다. 그래서 잘은 모르지만 그런 공고가 붙었다는 걸 보니 솔직히 의심부터 되네요. 저 같은 비장애인들도 일하기 힘든데 장애인들 고용하고 보조금 받으면 장애인들만 죽어나고 그거 다 회사 좋은 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두 분 계시기는 하는데 차량을 개조해야 할 만큼 몸이 불편한 분들은 없어요. 비용이 많이 드니까 회사에서 고용을 안하더군요."

대부분 자신의 회사에는 장애인 택시기사가 없거나 두세 명 있어도 차량을 개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 비장애인 기사들과 특별한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게다가 택시업계가 어려운 상황이라 그런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막연한 대답 대신 직접 장애인 택시기사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했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에 그들을 만날 방도를 물었다. "덕수콜택시"란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시 중랑구 면목 2동에 위치한 덕수콜택시는 '장애인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탄생한 곳이다. 십여 년 전인 94년, 장애인단체를 후원해오던 덕수콜택시의 이석팔 사장은 단순한 도움보다 그들 스스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에게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들은 택시를 운행하기 위해 필요한 1종 보통면허를 받을 수 없었지만 1년 가까이 공무원들 찾아다니며 탄원을 넣은 결과 장애인도 1종 면허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 덕수콜택시의 이석팔 사장
ⓒ 김연실
사장과 장애인협회의 노력으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1종 보통면허와 택시 자격증만 있으면 택시를 운행할 수 있게 됐다. 3년 무사고 운전경력을 쌓으면 개인택시 면허도 딸 수 있다. 2003년에는 이석팔 사장이 채용한 직원의 1/4이 장애인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사장은 "그 이후 장애인고용촉진공단, KBS와의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졌다"고 전했다.

덕수콜택시의 경우 현재 기사 180명 중 50명이 장애인이다. 한 쪽 팔이 없는 사람, 두 다리가 모두 불편한 사람 등 그들이 겪고 있는 장애는 다양하다. 이들이 운행하는 택시는 그 때문에 조금 특별하다. 2년 째 덕수콜택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만규씨는 소아마비로 인해 3살 때부터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1급 지체장애인으로 그의 차량에는 핸들 아랫부분에 '핸드 컨트롤'이 설치돼 있다. 이 장치를 통해 브레이크, 엑셀레이터 등을 손으로 조정할 수 있다.

"드라이브 한 번 하시겠어요?"

▲ 베테랑 운전자인 박만규 기사. 가운데 아래 보이는 것이 핸드컨트롤
ⓒ 김연실
푸근한 인상의 박만규씨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답게 능숙하게 핸들과 핸드 컨트롤을 조정하며 '오늘의 무임승차승객'에게 깔끔한 운전실력을 뽐냈다. 나긋하게 들려오는 사는 이야기와 연신 내보이는 미소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로 일품이었다.

박씨의 차량과 같이 장애인 택시기사들이 운행하는 차량은 장애의 정도에 따라 개조가 필요하다. 오른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이재성 노조 사무장의 차량에는 브레이크 왼편에 보조페달을 달아 운전에 무리가 없게 했다. 개조비용은 그 과정이 간단한 경우 10만원 정도, 핸드컨트롤과 같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 약 100만원까지 든다. 현재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장애인 한 명당 30만원에서 많게는 60만원의 고용장려금이 지원되지만 초기에는 그런 지원마저 없어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 브레이크 왼쪽이 보조페달이다.
ⓒ 김연실
"당시에는 사장님께서 사비를 들여 차량을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까지도 보조금으로 부족한 금액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개조하는 공정이 상당히 어려운데 사장님께서 그 과정에 모두 관여하실 만큼 애정이 대단하세요."

손님이 줄어 택시업계가 겪는 어려움은 덕수콜택시의 기사들도 함께 겪고 있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법인택시 기사들은 매일 8만원에서 9만원 선의 사납금을 회사에 내야한다. 그러나 덕수콜택시의 장애인 택시기사들은 비장애인들이 내는 사납금에서 2천원을 감면받는다. 신체적으로 같은 조건이 아닌 그들을 위한 이 사장의 배려다. 그 뿐 아니라 세차구역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을 방수처리 하는가 하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기사들을 위해 화장실의 턱을 없앴다.

6년째 덕수콜택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재성씨는 이와 같은 환경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장애인 기사들이 비장애인 기사들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석팔 사장의 의지와 직원 모두 함께 이룬 10여년의 노하우가 있었기에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장애인 택시기사들이 현재와 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와 사장의 관계로 볼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노조사무장은 "다른 회사에서는 나와 같은 장애인 택시기사가 노조에 있는 경우가 없다"며 그만큼 아직까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장애인이 운행하는 차량을 탄 시민들이 혹시 불안해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이 사장의 비롯한 기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개조된 차량을 운행하거나 목발을 곁에 두어야 하는 택시기사들의 경우 그런 것들이 뒷좌석에서도 보여요. 처음에는 생소해 하시다가도 이내 열심히 산다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장애인 택시기사들 중에는 선천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많지만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이들도 많다. 면목 지하철역에서 만난 송파구에 사는 한 주부는 장애인 택시기사에 대해 "낯설기는 하지만 아픔을 겪은 만큼 더 조심스럽게 운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장에 따르면 그와 같은 조심성과 장애인 기사 특유의 성실성 덕분에 장애인 기사들은 비장애인 기사들과 비슷한 사고율을 보이거나 오히려 낮은 사고율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팔이 불편해서, 다리를 쓸 수 없어서 벌어지는 '잔사고'들은 있습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 직접 내려서 갈아 끼우지 못한다거나 접촉사고가 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기사들끼리 서로 돕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애인 택시기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러한 잔사고보다 간혹 가다 있는 '나쁜 손님들'이다. 이재성씨는 "몸이 불편해 쫓아갈 수 없다고 해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달아나는 승객도 있고 술이 취해 시비를 거는 승객도 있다"면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그럴 때는 참 힘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 박만규 기사(좌)와 이재성 기사(우)
ⓒ 김연실

이러한 어려움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덕수콜택시에는 장애인 친목계가 있다. 무사고 경력을 쌓고 회사를 나가 개인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계속 교류하면서 어디에 손님이 많은지 알려주기도 하고, 사고가 있을 때 함께 대처해 스스로의 안전과 손님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사장은 장애인 택시기사들의 최고의 장점으로 '성실함'을 꼽으면서 그 때문에 택시회사들이 일부러 장애인 택시기사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다시 한 번 기자에게 무임승차를 허락한 기사는 이재성씨였다.

"택시업계가 전반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죠. 그건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열심히 일하면서 노하우를 쌓으면 봉급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니까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장애인 택시기사들을 채용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이 자립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이 사장의 말이 스쳐갔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에서 웹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의견을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장 관심있는 분야는 공연문화 쪽이고 제가 활동하는 웹진이 방송문화 웹진인만큼 방송 쪽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