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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저출산 시대와 관련해 정부 정책이나,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네티즌들은 사정없이 덧글을 달아댑니다. 저출산이라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죠.

'아기 엄마가 집에서 애나 보면 되지…'
'나가기 불편하면 안 나가면 되지.'
'저출산 시대라고 완전 여자 중심의 정책이다. 여성부 없어져라.'
'남편에게도 출산휴가 주고 무슨무슨 휴가 주면 일은 언제하나.'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딩크족으로 4년을 일만 하며 보냈습니다. PR 매니저로 경력을 쌓아가고 일에 보람도 많이 느끼고 있었지요. 아기를 가질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아기란 귀찮은 존재이고, 출산은 내 앞 길을 가로막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운다는 게 어떤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겠지만, 한 생명을 잉태하고 키운다는 것은 정말 존귀한 일이고 또 소중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걸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경력과 일 중심의 삶을 살던 저에게 '가정'이라는 것의 행복과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전까지 나름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지만, 저는 늘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기 원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젠 진정으로 내가 삶을 즐기고 있고, 그 과정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젠 사회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는 폭이 늘어났습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 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을 만드는 일이며, 아이를 낳는 순간 내 관심사는 '나의 일', '나의 남편', '나의 돈', '나의 소비생활'에서 교육과 경제, 문화와 예술, 사회와 정책… 등으로 점점 확대되기 시작하지요.

이 좁은 도로에서 왜 차가 점점 늘어난다고 생각하세요? 대중교통이 이용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일단 엄마 아빠들은 아기를 가지면 무조건 차를 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답니다. 아기 데리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너무 험난하거든요.

우리나라가 어서 아기 중심의 문화가 자리잡아야 할텐데 물질 중심과 속도 중심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정말 소중한 것들(이 사회를 이루게 될 미래의 소중한 자원들)에게 투자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고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데, 아기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을 존중하고, 훌륭한 부모가 되도록 사회에서 격려하고 도와주는 가정 중심의 문화를 만드는 일은, 여성 상위 시대라 여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한 사회를 이루는 벽돌인 '가정'을 튼튼히 세워나가는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제도 유모차를 끌고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공원에 가면 아이와 저에게 좋기는 하지만, 가는 길은 얼마나 험난한지 모릅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엉망진창인 보도블럭에, 높은 턱에, 클랙슨을 높게 울리며 '쌩~' 지나가는 자동차에…. 아마 어린 아가가 혼자 나왔다면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꼈겠지요.

호주에 살던 사촌언니가 어느날 서울 시내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절대 안된다고 했습니다. 차도 너무 많이 막히고 아기를 데리고 갈 곳이 없으니까요. 언니는 이해를 못 하더군요.

"왜 차를 가지고 나와? 유모차 끌고 지하철 타고 오면 안돼? 지하철 타면 가깝잖아."

유모차로 지하철을 절대 탈 수 없다고 오랫동안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제대로 없고(그 많은 출구에 단 한 군데 있거나, 혹은 없고), 아기띠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고 가자니 아기는 10kg에 육박하고…. 지하철을 타고 간다 해도 아기를 데리고 갈 장소가 마땅치 않고….

호주에선 모든 게 '베이비 퍼스트'라더군요. 대중교통도, 길도 유모차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사람들이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을 배려해주는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부럽던지요.

시대는 변화하고 있는데,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참 느리게 변합니다. 아기를 배려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어른에게 배려하는 모습을 배웁니다. 아기를 배려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장애인도 노약자도, 그리고 모두가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아기를 배려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엄마도 아빠도 행복해지고, 가족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면 이 사회의 행복지수도 높아지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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