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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심은식

자꾸 눈물이 나왔다. '대추리 매향제'에 온 대추리 주민들은 문정현 신부를 붙들고 울음을 터트렸고, 자꾸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지킴이들도 마을주민들과 끌어안고 한참씩 울었다. 그걸 지켜보면서 취재하는 사람들도 몇몇은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사진기자들도 자꾸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던 여자도 울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자꾸 눈물이 나서 눈을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목울대는 왜 그리 아프던지.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는 마지막 행사 '대추리 매향제'가 7일 오후, 대추리에서 열렸다. '대추리 매향제'는 비록 지금은 미군기지 확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지만 언젠가 주한미군이 이 땅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을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행사다.

오후 2시가 조금 못돼 도착한 대추리에는 마을 주민들 말고도 지킴이들과 지역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비롯해 취재진들로 붐볐다. 여기저기 부서진 집들과 담들이 쉽게 눈에 띄어 이제는 정말로 빈 마을이 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본격적인 매향제는 대추리 들지킴이 '문무인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면서 시작됐다. 세워져 있던 문무인상을 눕히고, '도두리, 하늘과 땅과 사람이 다시 만나리'라고 쓴 현수막과 주민들의 소망을 적은 소지를 매달았다. 문무인상에는 새 둥지가 자리를 잡고 있어 둥지에서 새알을 네 개나 꺼내기도 했다. 어미 새는 보이지 않았다.

"아, 우울하다. 여기에 왜 군사시설이 들어오나." 크레인이 문무인상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젊은 남자가 탄식이 섞인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 심은식

할머니 한 분이 문 신부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문 신부의 어깨도 들썩였다. 그래도 할머니를 진정시킨 사람은 문 신부였다.

문무인상을 마주보게 세우고, 그 앞에 고사상을 차렸다. 돼지머리와 고사떡, 명주실로 묶은 명태, 사과, 배가 전부인 단출한 고사상이다. 돼지머리가 상에 놓이자 문 신부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입에 물린다. 고사상을 앞에 놓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았고, 그 뒤에 지킴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둘러싸듯이 섰다.

▲ 마을 대표가 문무인상을 불태우기 앞서 마을 회복의 염원을 담은 기원문을 읽고 있다.
ⓒ 심은식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땅 지켜주소서"

마을주민 한 사람이 고사상 앞으로 나와서 "유세차 정해년 이월 스무날~ 때는 봄이라…" 하면서 고사문을 읽기 시작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다시 돌아올 테니 그 때까지만 이 땅을 지켜주소서."

사람들은 고사문을 다 읽은 후 태웠다. 고사문을 태우자 풍물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호흡이 빨라진다. 다음은 고사상에 막걸리를 올리고 절하는 순서. 가정 먼저 나선 사람은 문 신부와 동네 어르신이었다. 돼지 입에 지폐를 찔러 넣고 정성스럽게 막걸리를 올린 뒤 절을 한다. 문 신부는 엎드린 채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어깨도 들썩였던 것 같다.

마을 주민들이 차례로 나와 절했다. 고사를 지내는 것을 지켜보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 심은식
고사가 끝난 뒤 문무인상에 불을 붙인다. 불은 붙었지만 생각만큼 활활 타오르지 않아 누군가가 "문무인상이 타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 말한다. 불타오르는 문무인상에서 나온 검은 재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렸지만, 문무인상은 끝내 죄다 타지 않고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 버렸다.

풍물패를 앞세우고 꽃으로 장식한 배와 만장을 들고 대추분교까지 행진했다. 따라가다 보니 한쪽이 부서진 집의 담벼락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가 보다. 반쯤 헐린 집을 지나가는데 한쪽 밭에 마늘을 심은 게 보인다. 집이 헐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 생명은 올봄에도 땅을 박차고 올라왔다.

▲ 마을 주민들의 도장과 기원문을 적은 향나무를 묻고 있다.
ⓒ 심은식
대추분교에는 직사각형으로 구덩이가 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커다란 독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 안에 옷가지와 같은 기념물을 넣고, 독 옆에는 주민들의 염원과 소망을 적은 향나무 판을 넣을 예정이다. 주민들은 향나무 판을 하나씩 들고 먹으로 거기에 소원을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쪼그리고 앉아 향나무판에 소원을 정성스럽게 써내려가는 할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향나무에 글을 쓰는 어린 소녀도 있었다. 문 신부도 향나무에 소원을 썼다. "황새울아 우리 다시 돌아온다, 꼭 온다."

ⓒ 심은식

"늙으면 땅에 묻히러 고향에 돌아오는 법인데..."

한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내 고향 대추리 잘 있어라 다시 찾아올 때까지"라고 쓴 향나무를 슬픈 표정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대추리 떠나기 싫다"고 쓴 향나무판을 들고 울고 있었다.

신종원 이장이 직사각형으로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독 안에 마을 주민들의 도장과 옷가지를 비롯한 기념품들을 넣고, 그 옆에는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적은 향나무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 두 사람이 더 들어가 신 이장을 도와준다. 향나무가 한 자리에 모이니 향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매향제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문 신부가 맺는말을 하려고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문 신부는 "말을 하다가 울 것 같아서 아예 적어왔다"며 종이를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문 신부는 "늙으면 땅에 묻히러 고향에 돌아오는 법인데 거꾸로 노인들은 고향에서 쫓겨났다"며 "이삿짐을 꾸리며 통곡했고, 이삿짐 차에 짐을 실으며 통곡했고, 이삿짐 차를 상여처럼 따라가며 피눈물을 흘렸다"고 심정을 밝혔다. 주민들은 피눈물을 삼키면서 대추리와 도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문 신부는 "우리는 지금 죽지만 기어코 살아 돌아올 것"이라며 "미군기지 없는 평화의 땅을 향해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문 신부는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말고 민들레 홀씨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 폐허더미 위에서 망연해 하는 마을 주민,
ⓒ 심은식

구덩이 속에서 향나무를 늘어놓던 신 이장은 구덩이에서 올라온 뒤 한쪽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결국 신 이장은 우느라 인사말을 하지 못했다. 신 이장만 울고 있는 게 아니라 주민들도 울고 취재 온 사람들도 울고, 둘러서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울었다.

한 할머니는 "논에서 말도 못하게 울었다"고 했다. "내가 여기를 얼마나 다녔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왔어."

다음 순서는 구덩이를 흙으로 덮는 것. 주민들이 구덩이 주위에 삽을 들고 서 있다가 흙을 한 삽 한 삽 떠서 안으로 던져 넣는다. 구덩이가 메워지고 땅 높이까지 차오르자 여러 사람이 올라가서 땅을 다지기 시작한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의 흔적과 소망이 땅 속에 묻혔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히 된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그치지 않고 땅을 다졌다.

마지막 순서는 꽃단장한 배와 만장을 태우는 것이었다.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타악 탁, 하면서 나무가 터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불길이 잦아들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잦아드는 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때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이것으로 매향제를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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