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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의 사상자를 낸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일으킨 사람이 한국국적의 영주권을 가진 조승희씨임이 밝혀지면서  미국 뿐 아니라 한국 사회도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번 비극을 두고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 사회의 병폐에 대한 성찰 뿐 아니라 범인의 인종ㆍ국적에 대한 논란과 파장도 함께 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한국인'으로서 미국인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는 입장과 인종·국적을 떠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논쟁이 뜨겁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면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블랙스버그 경찰들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텍 노리스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AP 연합뉴스

1999년, 미국 콜럼바인에서 벌어진 10대 총기 난사사건은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저 '10대의 일탈'이라기에는 너무 잔혹하고 무자비했던 이 사건은 '13명 사망, 23명 부상'으로 그 끝을 맺었다.

이 사건은 당시 한국에도 보도되었지만, 이에 대해 한국인의 국민적 애도는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건은 세계 한 귀퉁이에서 벌어진 엽기적 살인 사건일 뿐이었다. 우리와 직접적 연관도 없는 일에 특별히 애도를 표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더욱 정확한 표현일지도.

그런데 2007년, 이와 비슷한 총기 난사 사건이 이번엔 미국 버지니아 공대 내에서 벌어졌다. 이번엔 단독범이었지만 사상자는 더 많았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은 사건 전모를 실시간으로 보도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현지를 방문하는 등 미국인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한국 국민들 또한 이 사건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상당수의 누리꾼들이 미국민에게 애도의 표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석고대죄'에 가까운 메시지까지 등장하고 있다. 비슷한 사건인데도 다른 반응이 나오은 이유는 용의자가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도 한국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미국과 필리핀의 차이점은?

특별히 미국에 대한 편견을 두고 싶진 않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민들의 대응은 지나치리 싶을 만큼 저자세이다.

물론 한국은 지금 '제 3의 개국'이라 일컫는 FTA 비준을 목전에 두고 있고 비자 면제 협정, 대북 문제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떠안고 있다. 또한 최대 규모인 미주 지역의 재외 동포 안전까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니 어쩌면 정부의 입장에선 '저자세'가 당연한 처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까지 하나 하나 사과를 하는 기현상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살인 사건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지난 4월 17일 방송된 MBC 'PD수첩'에는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 어학연수생이 성매매에 빠진 실태가 보도됐다.

그런데, 이에 누리꾼들의 반응은 미국에서의 사건에 비해 사뭇 약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둘 다 비인륜적 행위이고 국가 이미지를 실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안인데도 반응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어찌 보면, 냉정히 판단할 때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미국보다는 오히려 필리핀에서의 인권 유린이 더 심각한 사안이다. 또 국가가 나설 사안이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라면, 민간 외교 측면에서 국민들이 사과할 부분은 필리핀 성매매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눈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에만 쏠려 있다.

실제로 우리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미국은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국내의 충격적 총격 사건'으로만 보고 있을 뿐, '한국인'이란 타국인의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 주요 언론들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전 베트남 처녀 국제결혼 알선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대응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을 너무 티나게 보여주는 건 아닐까.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의 모습으로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 '차별적 국제결혼 광고대응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2006년 7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메리칸 드림 때문은 아닌지

또 하나 생각할 대목이 있다. 이 사건을 다루는 국내 언론사의 보도들 중 유독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의 반응이다.

유학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미국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가겠다는 반응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러한 반응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미국에 유학을 가야만 하기 때문일까?

가령 다른 국가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유학을 준비하던 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자문해 본다. 굳이 비교할 예를 들자면, 수년 전 영국에서 한인 유학생 살인 사건이 벌어진 이후 영국 유학생이 줄었던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내 한국 유학생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9만 3728명(미 국토안보부 통계)으로 집계된다. 이는 전년도보다 약 6000여명이 가량 늘어난 것으로 1년새 6%의 꾸준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다. 여기에 변수가 등장하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누리꾼들이 '애도'를 넘어 '사죄'까지 하는 것은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물론 미국 유학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버지니아텍 총격난사 사건에 우리가 고개를 숙여야 될 정도의 일인가는 의문이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일 뿐 눈치를 봐야할 형님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고개숙여야 할 일인가

반기문 UN 총장도 "한국인이 용의자라는 사실에 유감"이라는 표현을 했을 뿐, 사죄의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UN총장까지 배출한 우리 국민들이 당사자를 대신해서 사죄까지 하는가.

조승희씨가 저지른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고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더욱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이를 재단해가며 내게 닥칠 불이익이 있을까봐 꼬리를 내릴 필요는 없다.

미국이니까라는 이유 때문에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위선이 아니라면 그에 앞서 필리핀이나 베트남 국민들에게 일부 한국인들이 잘못했던 것들부터 사과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말이나 뉴스로만이 아닌, 우리 스스로부터 세계에 당당해지기 위해 냉정한 대응이 필요할 때다.

태그:#조승희, #미국, #총기 난사, #편견,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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