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꽃샘추위가 물러가더니 올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의 여신이 내린 마법으로 마음이 들뜨고 분주하다. 겨우내 숨겨둔 속살과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봄꽃들의 향연이 산으로 들로 어서 나서라고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오라는 곳 없어도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은 계절, 봄이다.
그러나 가벼운 주머니와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차량 행렬을 생각하면 선뜻 봄나들이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도심 속에서 적은 비용으로 겨우내 닫혀 있던 눈과 마음을 봄기운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봄은 인간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획과 각오를 다지게 하기도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은 새로운 출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 출발은 지금까지 하지 못한 지식 습득의 열의와 새로운 경험의 욕구로도 이어진다.
3월이 시작되면 도서관이 다른 계절에 비해 유난히 북적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옆에 한가득 쌓아놓고 도서관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뭔가 색다르고 기발하게 이런 열의와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긴 겨울잠에 들어갔던 우리의 지적 욕구와 호기심을 깨워 보는 방법은 바로 '이색박물관'에 찾아가는 일이다. 박물관하면 으레 은은한 조명 아래 전시된 용무늬가 그려진 도자기나 알아보지 못할 글씨가 쓰인 빛바랜 책들, 우리의 손길을 거부하는 '만지지 마시오'라는 근엄한 문구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색박물관'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버린다. 다양한 소재와 전시물품들이 박물관의 고리타분한 이미지에 싫증이 난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지금부터 소개할 '별난물건박물관(www.funique.com)'은 이런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 대부분이 유리로 곱게 덥여 사람들의 손길을 차단하고, 심지어 일정 선을 넘으면 무참히 '삐~'라는 경고음을 보내지만 이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 체험관에 가깝다.
서울, 부산, 파주 세 곳에 위치한 '별난물건박물관'은 상식을 깨는 물건과 과학 완구를 전시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관람객의 대부분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과 유치원생들이지만 처음 보는 물건들이 성인들까지 신기한 동심의 나라로 이끈다.
이곳에는 전 세계의 물건들이 다섯 개의 테마(소리·빛·과학·움직임·생활)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별난 물건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어떤 것부터 보고 체험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 내 손이 가장 먼저 닿은 물건은 '코풀기 전용 손수건'이었다. 요즘 감기로 흐르는 콧물을 주체할 수 없는 나에게 맞춤한 물건인 것 같았다.
코 생김새와 비슷한 삼각형 모양의 작게 덧댄 부분은 단순히 코를 풀기 위함만이 아니라 청결을 생각한 세심한 배려가 들어 있다. 코를 풀 때마다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누군가는 그저 불평만 하고, 누군가는 이런 기발한 상품을 발명해낸 것이다.
이밖에도 흡연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기침하는 재떨이', 편리함과 안전을 겸비한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지팡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예수님의 얼굴 '쫓아오는 시선' 등 약 300여점의 기발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에게는 과학의 원리와 무한한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바쁜 일상 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는 '별난 물건 박물관'에 이번 주말,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갈 계획을 세워보자.
'별난물건박물관'이 독특한 발상과 창의력으로 만든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종이미술박물관(www.jongiejupgi.or.kr)'은 인간의 섬세한 손놀림과 정교함으로 만든 종이 예술작품들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여기서 종이의 존재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종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건이다.
책, 신문, 잡지 등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종이 속에 담겨 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 위상이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종이는 주연을 해본 적이 없다. 항상 엑스트라였다.
사람들은 종이에 쓰인 글씨나 그림에만 집중하지 종이 자체에는 무관심하다. 또 종이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종이미술박물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런 오만과 편견은 여지없이 깨진다. 알게 모르게 천대받던 종이가 이곳에선 화려한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종이접기.
그것들이 어느 예술작품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뽐내며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한다. 종이접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은 종이접기공모전에서 국무총리 상을 받은 '연'이었다.
전통예식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의 아름다운 뒷모습은 정말 사람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 한복이 자랑하는 미끈한 곡선과 풍성한 치마, 화려한 색감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새삼 한복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한다.
'씨름하는 아이들'이란 작품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연'이 다채로운 색채가 들어간 한 폭의 풍경화 같다면 이 작품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단아한 수묵화 같은 인상을 주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지극히 동양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아이들은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미 성인이 되어 이 작품을 보며 아릿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고 있지 않을까?
작품 전시 외에 '종이미술박물관'은 종이접기를 비롯해 색지공예, 한지그림, 종이장식 등 종이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 체험학습을 제공한다. 종이공예에 관심이 있고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이 봄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최신 디지털 기계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대 생활에 신물이 난 당신의 몸과 마음을 아날로그 소재로 만든 작품들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광화문의 아침 풍경은 항상 분주하다. 잠시 그냥 서 있기라도 하면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하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잠시 서서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 그래서 특별한 휴가기간이 아니고는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다.
경제적 시간적 여건이 봄나들이를 허락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도심 속 '이색박물관'은 생활에 활력소를 얻고 눈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안성맞춤 공간이다. 봄꽃이 만연한 화창한 봄날, 가족들, 친구들, 또는 연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이색박물관'을 찾아 가자. 아마 2% 부족했던 당신의 공허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