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안아무개씨는 3년 전 고민 끝에 전세 3억, 대출 7000만원을 끼고 분당에 6억원짜리 주상복합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런데 그 아파트 시가가 올라 현재 11억원 정도가 되었다. 구입한 지 3년이 조금 안된 현재, 그는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해서 대출금을 모두 상환한 상태다.
이제 안씨는 40평형대 새 아파트로 이주할 계획을 꿈꾼다. 그동안 11억짜리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안씨 자신은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허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해 빚을 다 갚고, 그는 부동산 투자 성공으로 갖게 된 자산규모에 맞춰 넓은 집으로 맘 편히 이주하려고 한다.
시세차익 5억,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위험
3년 만에 자산 가치를 5억원이나 늘린 안씨는 누가 보아도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이다.
무리한 빚을 다 갚았기 때문에 순자산이 11억이나 된다. 40대 평범한 월급쟁이에게는 대단한 일이다. 입사 17년 동안 평균연봉을 대략 3000만원 수준으로 잡는다면, 그가 연봉으로 받은 액수의 두 배에 가까운 자산을 만든 셈이다. 고가 주상복합아파트 주인이 됐으니 그가 부자가 된 달콤한 기분에 빠진다 해도 누구도 욕할 수 없을 것이다.
빚을 내지 않는 수준에서 집을 늘려 이사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알뜰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갚았던 빚만큼의 저축도 할 수 있으니 안씨의 미래는 문제없다고 단정해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단순한 계산이다. 고가 주상복합아파트를 소유한 부자는 그렇게 단순한 자산운용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3년 전 구입했던 6억짜리 부동산의 재테크 성공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집값핵폭탄'이 만든 '세금폭탄'은 어쩌고...
아파트 공시가격이 시가의 80~90%까지 근접했다. 기존 공시가격이 50%에도 못 미쳤던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당연히 재산세가 크게 올랐다. 거기에 6억원 초과 주택은 종합부동산세까지 내야 한다. 집값이 크게 올랐으나 반갑지 않은 현실이 눈앞에 닥쳤다.
일부에서는 '세금폭탄'이라는 표현까지 들먹이며 지금의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말은 자본주의 정신에 대단히 부합하는 말이다. 능력에 따른 부담이 조세정의의 기본이기도 하다.
엄밀히 따지면 세금이 아니라 집값이 지나치게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세금폭탄'이 아니라 '집값 핵폭탄'이 더 문제인 것이다.
1주택 소유자들 처지에서는 과도하게 세금을 부담하는 것 같아 억울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소유자라면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거나 자산 재구성을 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안씨를 비롯하여 대부분 사람들은 1주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세금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손에 쥐지도 못한 시세차익으로 투자에 성공한 기분에 들뜨는 것이 일반적이다. 막연하게 부자를 꿈꾸었는데 단기간에 몇억을 벌었으니 들뜰 만 하다. 그러나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점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안씨는 올해 세금만 800만원 가량 부담해야 한다. 2009년에는 거의 1천만원에 육박한다. 그의 연봉이 6000만원이니 연봉의 15% 가량을 집에 대한 세금으로만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축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자라면서 늘어날 사교육비 지출과 조기퇴직을 감안하면 자녀들의 대학등록금 마련과 부부의 은퇴자금 준비에 차질이 생길 위험이 있다.
세금 2억 감수해도 집 안 팔려... 눈높이 과감하게 낮춰야
안씨의 처음 계획은 아파트를 팔아서 거주 목적이 분명한 집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보유세를 생각하자니 11억원짜리 집으로 옮길 수 없어서 종부세를 피하는 수준의 주택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차익 5억원을 좀 더 안전한 금융자산으로 옮기려 하니 또 다른 세금이 기다리고 있다.
안씨는 아파트를 처음 분양받을 때 부채가 껴있는 것을 고려해서 부채를 갚을 때까지 거주를 지연시켰다. 나름대로 안전하게 부동산 투자를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양도소득세를 1억6000만원 가량 부담해야 한다. 취·등록세를 비롯하여 각종 비용도 대략 5000만원 가량 예상해야 한다. 결국 주택 매매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2억원이 되었다. 시세대로 제대로 팔아도 차익은 3억원이다.
이 정도에 만족하면 성공이라고 충분히 축하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안씨는 세금 때문에 순식간에 2억원 가까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결국 제도 변화, 규제완화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에 자산 재분배를 결정하지 못한다.
종부세 대상 주택 거래가 실종되고 있다. 노력하지 않고도 터져주는 대박, 일확천금을 벌어도 세금을 적게 내는 대박의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씨가 큰 맘 먹고 세금과 비용으로 2억원을 포기한다고 해도 그 시세대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사라져 팔리지가 않는다.
안씨는 막연한 생각으로 아파트를 팔지 않고 버텨보려고 한다. 돈이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몇 년은 종부세를 부담해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주택 가격 변화를 감안하여 조금만 버텨보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행운을 바라는 마음으로 과거의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안씨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앞으로 집값이 더 올라서도 안 되고, 더 오르지도 않을 상황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억울할 건 없다, '욕심'보다 덜 벌었을 뿐
3억을 벌었다는 달콤한 기분에서 냉정하게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건 세금을 부담하면서 자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래되지 않는 시세에 들떠있다 보면 현금흐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안씨의 경우 55세 은퇴까지 안전하게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대학졸업도 하기 전에 은퇴한다는 미래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둘째의 경우 대학진학 전에 가장이 은퇴하게 될 위험이 있다. 현재의 자산을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익의 눈높이를 과감히 낮춰야 거래가 가능하다. 현재 안씨가 소유한 주상복합 아파트는 평당 시세보다 천만원씩 낮은 수준에서 간신히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다.
억울하다고 여길 것이 아니다. 그 정도도 이미 안씨가 매입했던 상황보다는 2억원이나 오른 시세로 파는 것이기 때문에 욕심보다 덜 벌었을 뿐 분명히 수익실현은 하는 것이다. 매수를 기다리는 수요자들이 시세 11억원짜리 아파트를 9억원에도 매수하지 않는 이유가 더 떨어질 것이란 확신 속에서 관망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와 대박의 달콤한 기분을 버리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매각을 추진하고 미래를 위한 자산 재분배를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안전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