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늘 접할 수 있는 광고, 그중에서도 수십 초의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CF. 그 30초에 완벽한 메시지와 영상을 담고자 애쓰는 CF감독 한 분을 만나 보았다.
방안 가득한 비디오와 카메라들, 수많은 시디와 책자, 그야말로 프로라는 느낌이 물씬 느껴진 사무실에서의 3시간의 데이트.
얼마 전, '옥시○○∼!' 광고를 기억하는가? 바로 인터뷰의 주인공인 유성호 감독의 작품이다. 그럼 감독과 지난 5월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담백한 만남 속으로 지금부터 들어가 보자!
- 먼저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학창시절 그림을 잘 그렸는데 처음부터 미대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미대에 갈 결심을 하고 화실을 다니기 시작했고,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또래보다 진로를 빨리 선택했었고, 잘 결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디자인도 너무 많은 분야가 있었습니다. 그 중 초기에는 사진에 끌려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하다 보니 사진병으로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제대하자마자 웨딩 촬영 비디오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꽤 큰돈을 벌었지만, 이 길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큰 CF 회사를 찾아가 그냥 있게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쪽도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12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적은 돈을 받았지만, 꿈을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겨울방학을 보냈습니다. 3학년 때는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 다녔습니다. 일과 학업에 열심히 공부했고, 4학년 때에는 광고기획사 인턴 추천을 받았지만, 일하던 회사에 갈 결심을 했기에 광고기획사로 가지 않았습니다. 4학년 2학기부터는 거의 학업보다는 일에 매진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입사. 팀의 일원으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CF 감독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입니까?
"입사해서 두 달 정도 일을 시켜보면 앞으로 이 사람이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함께 오는데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하는데, 견디지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몇 달 일을 시켜보고, 앞으로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당사자와 이야기를 해 봅니다. 대부분은 스스로 일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잠을 안 자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보아도 시간이 모자라기 마련입니다. 우선은, 아이디어도 내야하고, 인간관계도 잘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성실한 이미지가 쌓이게 되고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게 되면, 작품을 맡게 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오늘의 감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CF감독이 되기 위해 남다르게 노력했던 부분이 있었습니까?
"낮에는 주로 돌아다니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밤에는 서류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삐삐를 샀는데, 연락을 하기 쉬워 주변 사람들과도 더 쉽게 일을 할 수 있었고, 차도 구입해서 기동성을 높였습니다. 모두 일을 잘하기 위한 저만의 투자였습니다, 다른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일에 투자한 거죠.
그때는 저작권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 생길 때마다 CD를 사서 음악을 연구했습니다. 여담으로 P이온음료 광고에 쓰인 음악의 경우는 광고 이후 오히려 음반판매가 올라,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CD를 사도, 그중에 광고에 사용할 만한 음악은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감독이 필요로 하는 음악을 골라줄 수 있는 것이 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또, 디자인 책 등 다양한 책을 사서 공부도 했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좋아야 하고, 실수를 하면 빨리 보고하고 처리해야 하는 것 등은 사회생활 기본인 것도 읽혔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예로 촬영 때 필요한 소품이 있으면 바로 사와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런 때에는 꼭 편의점이 없습니다. 결국은 새벽에 가게 주인을 깨워서 사오기도 하고, 밤새 소품을 만들기도 하면서 순탄치 않은 과정을 많이 겪었습니다."
-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전에 촬영하면서 있었던 재미는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로 촬영 갔을 때가 겨울이었는데, 감을 따서 도망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가짜 감을 나무에 밤새도록 달았습니다. 감나무도 아닌데 감이 열린 것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다음날 보고 놀랐죠. 진짜 감이랑 별로 차이가 안 날 정도였거든요.
한번은 강아지를 데리고 촬영한 적도 있었는데, 하얀 빨래를 보고 눈이 부셔서 귀로 눈을 가리는 모습을 연출해야 했는데, 강아지 귀에 구멍 뚫어서 실로 잡아당겼죠. 새우가 튀어 오르는 장면 같은 경우는, 물에 전기를 흐르게 해서 순간 튀어 오르게 하기도 하고…. 새우를 던지는 것과, 스스로 튀는 것은 다르니까 늘 어떻게 해야 더 실감날지 생각합니다.
요즘은 특수촬영 전문 팀이 있지만, 예전에는 전문 팀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침대 광고를 위해 미국에 코끼리를 찍으러 가야 하는데, 코끼리는 자기가 밟던 것이 아니면 밟지 않는다고 해서 미리 스프링을 보냈습니다. 스프링 밟고 지나가는 것을 촬영하는데, 촬영보다는 주로 코끼리 변을 치우는 일을 했습니다. 어찌나 많이 치워야 하던지….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산도 적고 전문 인력도 없었던 시절에는 촬영 준비를 하면서 혼자 눈물 흘릴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 CF감독으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광고감독이란 누군가 나에게 일을 맡겨줘야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의 제작비를 좌지우지하는 최전방 현장에 내가 책임자로 있다는 것과, 광고가 성공하게 되면 좋고,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에 감독이 되고 나서도 항상 작품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시간을 이용하거나, 가정생활의 문제에 대해서는 포기해야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작업을 하다 보면, 일하는 시간에 개인을 맞추어야지, 개인 일정에 일을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들면서도 즐겨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지금 K항공사 광고를 찍은 중국인 감독처럼, 촬영에 대한 모든 여건을 만들어 주는 상황에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촬영 당일 날씨가 안 좋으면 철수하고, 날씨가 촬영에 알맞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광고주가 있었기에 K항공 CF가 탄생한 것입니다. 저 역시 여건이 된다면 좋은 환경에서 감동적인 광고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하나하나 그림을 보는 듯한 영상미를 연출해낸 감독님들의 작품을 존경하기도 하고, 저 또한 그런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 CF 감독의 직업적 전망은?
"기본적으로 영상을 작업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촬영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합한 직업입니다. 하지만 감독이 되더라도 50명 정도의 감독만이 활발히 활동하므로, 직업적 전망 자체는 밝은 편은 아닙니다. 들어오기 위한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CF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원하면, 우선은 아르바이트를 시켜 보고, 후에 천천히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5년 정도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감독이 되어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얻게 되겠지만 꼭 감독을 하지 않더라도, 방송이나 영상 등 매체를 이용하는 분야에서 할 일 역시 다양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UCC전문가, 인터넷 방송계, 뮤직 비디오 감독, 영화감독, 피디 등 할 수 있는 일의 분야는 많이 있습니다. 영상이 좋다면 이쪽 분야에 도전해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야구계의 스타 이승엽 선수처럼 프로구단에 들어가고, 고액의 연봉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듯이, 어떤 직업이나 프로로써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광고는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만 해서 된다면 정말 좋을 텐데…. 작은 것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모든 것을 광고적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열심히 일을 하시면 됩니다. 일을 잘하는 전문가를 뽑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자신의 분야에 대해 기본 소양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을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지, 예의가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이쪽 분야의 선배들이 있다면, 방학을 이용해 선배들이 있는 회사에 찾아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하지 말고, 돈을 내고 배워야 하는 상황에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배운다고 생각하고 일에 투자하세요. 여유가 있다면 대학생활 동안 방학 때, 돈을 벌기보다는 뭔가 배울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처음부터 중요한 일이 자신에게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심부름이나 촬영장에서의 잡일을 하면서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기에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물론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