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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해 10월 어느날, '오봉다방'이 문을 열었습니다. 오봉다방이 진작부터 있던 사업장이었는지 아니면 그 방면의 어느 전문가가 다방업계의 이름짓기 룰을 혁신적으로 바꿔내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은 제가 다방면에 지식이 좀 짧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오봉다방의 전문직 여성들은 동네를 돌며 돼지를 분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성냥이나 라이터 오봉 같은 끼워주기를 잊지 않은 친절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날의 주빈은 돼지였고 나는 등짝에 너무도 선명하게 '오봉다방 신속배달 000-0000'이라고 화인까지 찍힌 돼지를 한 마리 분양받았습니다.

저는 돼지와 인연이 많은 모양입니다

살면서 여러 번 돼지를 분양받아 더러 잡아먹기도 하고 시집보내기도 했습니다. 노사모 돼지 개혁당 돼지 북한빵공장돼지 기타 등등 그러나 이번 돼지는 그 돼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헤비급이었습니다. 그 돼지들은 때깔부터가 노리끼리 한 것이 허약하기 짝이 없었고 뭘 줘도 많이 먹지는 못해서 이내 잡아 먹거나 멀리 이북으로 시집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 옆에 돼지우리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돼지를 키웠습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고 돼지는 중앙집중식 아파트인 우리집에서 따뜻하게 겨울을 무사히 났습니다. 봄이 와 베란다 창문을 비집고 아카시아 꽃내음이 진동을 할 즈음 돼지는 딱 한 번 봄을 탔는지 발정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저는 애초부터 이놈을 새끼칠 요량으로 키우지는 않았고 그저 육고기로 키웠던 탓에 짝짓기까지 배려하는 자상함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몸집을 불려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 열 시나 되었을까요? 깜박 침대에서 책을 보다 잠이 들었나봅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꿈결인 듯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저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프레쉬(카메라 프레쉬)를 들고 돼지우리로 뛰어 갔습니다. 아!! 이럴수가!!! 글쎄 돼지 도둑도 아니고 굳게 믿었던 우리 가족 셋이 야음을 틈 타 둘러앉아 돼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 돼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 피재현
내가 현장을 덮쳤을 때는 이미 돼지의 배를 가르고 고기를 부위별로 바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저는 배신감에 순간 치를 떨었지만 현실은 냉정한 것이었습니다. 저마다 '나는 돼지에게 여물을 몇 번 줬다' '돼지 물은 내가 다 먹였다' 등등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눈이 시뻘개져 있었습니다. 이제 저도 더 이상 배신감 따위에 넋을 잃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하고 돼지 잡이에 동참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범이자 경쟁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룰을 정했습니다. 이 돼지를 농협중앙회에 가서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서로 그 예상가격을 이야기하고 그 예상가격에 근접한 사람이 돼지 부랄과 그 얼마 나오지 않는다는 항정살과 갈매기살을 갖기로 했던 것입니다.

잠시 사진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진지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가장 진지할 때가 자장면 비빌 때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진지할 때가 로또복권 마킹할 때와 바로 이 순간! 우리집 돼지 잡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십오만원정도는 받을 거다". 아내는 "에이 무슨 소리냐 저게 살만 쪘지 순 십원짜리 여물만 먹여서 아무리 많이 쳐줘도 이십만원 받으면 많이 받을 거다" 큰 애는 호기 있게 "칠만원!" 둘째는 소심하게 "오만원!" 이렇게 우리는 예상낙찰가를 정했습니다.

여러분! 이 돼지는 얼마에 팔렸을까요? 근접하게 맞추는 분께 제가 항정살과 갈매기살 쬐끔 나눠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돼지, #다방, #노사모 돼지, #개혁당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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