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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4의 다큐멘터리 <다이애나 : 터널 속의 목격자들> 시작 화면.
채널 4의 다큐멘터리 <다이애나 : 터널 속의 목격자들> 시작 화면. ⓒ 채널 4

"아이러니하게도 신화 속 사냥의 여신과 이름이 같았던 다이애나는 금세기 최고의 사냥감이었습니다."

1997년 8월 31일. 36세의 나이로 파리의 한 터널에서 차량 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그녀의 장례식 때 낭독된 위 추모 멘트가 또 다시 TV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에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6일 밤, 채널 4가 그간 논란이 되어왔던 <다이애나 : 터널 속의 목격자들>이란 다큐멘터리를 전격 방송한 것. BBC 뉴스는 약 380만명의 영국인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에 대한 심각한 모욕 VS 너무 심각한 기우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사건이지만, 영국인들에게 다이애나는 여전히 현재의 큰 관심사다.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와 재혼한 후 애도의 불길이 한풀 꺾이긴 했어도, 다이애나는 많은 영국인들의 가슴 한쪽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영국의 방송사들도 한몫했다. BBC부터 케이블 방송 SKY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동안 방송된 다이애나 관련 프로그램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다. 매년 9월이 되면, 방송사들은 돌아가면서 음모론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연례행사처럼 편성해서 방송했다.

하지만 이번에 방송된 채널 4의 다큐멘터리는 행사성 프로그램들과는 달랐으며, 방송 전부터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다이애나가 탑승했던 차량이 터널 기둥을 받고 튕겨져 나온 직후 상황이 집중 조명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고 직후 다이애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다이애나 건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덤비는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 채널 4에 제기한 왕자들의 탄원이 무시됐다는 기사를 6일자 1면 톱으로 실었다.
다이애나 건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덤비는 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 채널 4에 제기한 왕자들의 탄원이 무시됐다는 기사를 6일자 1면 톱으로 실었다. ⓒ <데일리 익스프레스>
왕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다이애나의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사고 직후의 사진이 공개된다면 고인에 대한 심각한 모욕입니다", "당신들의 어머니가 터널 속에서 이렇게 돌아가신다면, 이걸 전국 방송에 내보내시겠습니까?", "시청자들은 이걸 보고 싶어 할 것 같습니까?"라는 내용의 편지를 채널 4 방송사에 보냈다.

다이애나의 친구였던 포슬리 경은 "이런 방송은 인기 영합성 황색 타블로이드 저널리즘보다 더 나쁘다, 최소한 사람들은 신문을 선택할 때 대충 무슨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라도 한다, 이런 내용의 방송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다이애나에 무한한 애정을 품은 일반 대중도 이번 다큐멘터리를 방송 전부터 비난하고 나섰으며, 각 언론사들은 이런 상황들을 앞 다투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채널 4는 '이는 너무 심각한 기우'라고 일축했다.

마침내 방송된 다큐멘터리, 그러나

우려와 비난 속에서 전파를 탄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소문대로 거의 전부 사고 직전과 직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을 피해 몰래 호텔의 다른 문으로 나와 차량에 탑승한 다이애나와 그의 애인 도디 알-파예드, 그리고 터널 속에서 사고가 난 이후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의 행동이 부각됐다. 그들이 다이애나의 죽음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나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10년 전에는 다이애나를 죽인 건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스토킹에 가까운 이들의 밀착 동행이 다이애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비난부터 사진기 플래시가 직접적으로 운전기사의 시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줘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추측까지 널리 회자됐다.

사고 발생 직후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은 큰돈을 건질 수 있는 사진 촬영에만 열중해서 다이애나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거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구급차 도착은 사고 후 17분이 지나서였으며, 경찰이 제지하기 전까지 카메라 플래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다이애나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였던 언론의 문제였다는 종합적 비난도 나왔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사진 중 하나. 당시 터널 속에 있었던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이다. 맨 왼쪽은 프랑스 경찰이다.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사진 중 하나. 당시 터널 속에 있었던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이다. 맨 왼쪽은 프랑스 경찰이다. ⓒ 채널 4 화면 갈무리

하지만 이번 채널 4의 프로그램은 이런 비난들의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목격자들은 여타 사고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사고자들을 도운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엔 사진 촬영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추모 멘트와는 달리 다이애나가 파파라치와 사진기자에게 사냥당해 죽은 것만은 아니란 이야기다.

사고가 수습되면서 터널 안에 있던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은 모두 체포돼 엄격한 조사를 받았으며, 그들이 촬영한 사진들은 모두 수거돼 대부분 폐기됐다는 후일담도 방송됐다.

한편 방송 전부터 잔뜩 긴장을 조성했던 사고 직후 사진들도 여러 장 공개됐다. 그러나 사진들에서 다이애나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애초부터 이렇게 계획됐던 것인지, 비난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바꾼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이애나 얼굴이 나오는 사진 장면에서는 "고인의 얼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멘트와 함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사진 속 다이애나 얼굴을 회색박스로 가렸다. 다이애나는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 끼었으며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방송 전부터 문제가 된 사진. 다이애나의 얼굴이 회색박스로 처리돼 방송됐다.
방송 전부터 문제가 된 사진. 다이애나의 얼굴이 회색박스로 처리돼 방송됐다. ⓒ 채널 4 화면 갈무리

영국인들의 생각은?

채널 4는 이번 다큐멘터리에 대한 특별 토론 프로그램까지 추가로 편성해서 방송했다. 사고 직후 상황을 이처럼 자세히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필요했느냐, 또 그때 촬영된 사진들 일부를 공개하는 게 타당했느냐가 주 내용이었다.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은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며 방송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다이애나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고 사진 공개와 자세한 상황 분석 자체가 이미 왕실 유가족들에게는 큰 부담이었다는 주장, 파파라치들과 사진기자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비난받을 만큼은 됐다는 주장, 일반 대중도 이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 등이 모두 나왔다.

이에 채널 4 방송사 측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관심을 보일만한 내용이었고, 폐기되지 않고 자료로 남겨져 있다가 이번에 일부 공개된 사진들은 보도 내용에 따라 필요한 만큼 사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채널 4, BBC 등 각 방송사의 인터넷 뉴스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 반응 역시 다양했다.

최근 왕성해진 영국의 게시판 문화를 반영하듯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려는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채널 4를 다시는 안 볼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같은 시간 방송된 BBC의 <후계자>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었다", "프로그램 제작 및 방송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일부러 안 봤다" 등 수많은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송에 대한 논란도 다이애나 사인 논란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정답을 찾기는 어렵게 됐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후 채널 4는 시청자들에게 항의를 훨씬 더 많이 받았다.

BBC 인터넷뉴스 7일자. 영국에서 약 380만명이 채널 4의 다큐멘터리를 봤으며, 채널 4는 항의 공세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BBC 인터넷뉴스 7일자. 영국에서 약 380만명이 채널 4의 다큐멘터리를 봤으며, 채널 4는 항의 공세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 BBC

방송 여파도 상당

방송 여파로 현재 다이애나 관련 기사들이 신문 지상에 줄줄이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이애나가 시아버지였던 필립공에게 많이 미움 받았다는 내용, 알려진 것보다 다이애나가 더 많이 바람을 피운 것 같다는 내용, 급기야는 다큐멘터리에 사용된 사진 일부가 무단 사용돼 사진사들이 채널 4 방송사를 고소했다는 기사도 등장했다.

이번 다큐 논란으로 확실해진 것은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찰스의 재혼과 무관하게 다이애나의 그림자는 사회 저변에 짙게 깔려 있다. 불행했던 다이애나의 결혼 생활이 영국인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채널 4가 이번 다큐멘터리 기획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영악하게도 채널 4는 <퀸 카밀라>라는 카밀라 옹호성 다큐멘터리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송했다. 이번 논란은 사전에 미리 계획된 것이었을까?

지난 4월 담당관이 교체된 다이애나 사건은 이제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현재진행형 상태로 남겨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찰스 왕세자와 부인 카밀라에게 다이애나의 그림자는 앞으로도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이애나 사인을 둘러싼 4대 의혹

사고 전까지 다이애나는 여러 자선 사업에 깊이 관여해서 영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지만, 영국 왕실을 저주하는 말을 종종 했다. 당시 다이애나에 대한 왕실의 감정은 영화 <더 퀸>에서 잘 볼 수 있다.

공식 조사 결과는 운전기사인 앙리 폴이 음주 운전에 시속 100Km가 넘는 과속을 해서 차량이 터널 속 기둥을 들이받아 교통사고가 발생, 다이애나가 사망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다이애나가 모종의 계략에 휘말려 사고로 위장돼 살해됐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도 많다. 특히 알-파예드 가문 사람들은 음모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음모론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다.

1. 사고는 새벽 0시 23분에 발생했으나, 다이애나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 6분이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차량이 적은 시간인데도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왜 사고 장소와 더 가까운 병원을 2개나 지나쳤을까? 구급차 속의 다이애나가 위중해서 그랬다곤 하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2.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터널 안에서는 하얀색 메르세데스 차가 함께 주행하고 있었다. 그 밖에 피아트 차량도 있어서 다이애나가 탑승한 차는 이 차량과 충돌한 후 기둥을 들이받았다고 한다. 바퀴자국으로도 이런 상황을 대략 알 수 있다. 프랑스 경찰은 이 차량들을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3. 사고 당일 운전기사 앙리 폴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프랑스 기준치의 3배가 넘었다. 더욱이 앙리 폴에겐 약물 남용 증세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앙리의 친구들은 이를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앙리가 당일 심한 음주를 하지도 않았고 검사된 혈액이 외부인에 의해 바꿔치기 됐다고 생각한다.

4. 운전기사 앙리 폴은 아무래도 영국이나 프랑스의 비밀 요원인 것 같다는 주장이다. 앙리 폴은 운전기사치곤 이례적으로 여러 은행 계좌에 상당히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특정인의 사주를 받은 모종의 기관이 그런 앙리 폴과 밀접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며, 결국 일부러 자연스레 교통사고를 발생시켜 다이애나를 죽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이다.

#다이애나#찰스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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