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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국군은 동해안을 따라 원산, 함흥, 신포, 북청을 지나 함경남도 단천까지 점령했다. 이 이야기는 단천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군은 계속 북진에 북진을 거듭하다보니 점령지마다 민가에서 분산 주둔하면서 작전 지시를 따라야 했다. 함경남도 단천에서도 나는 전우 하나와 같이 어느 민가 조용한 문간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집 식구들은 모두 피난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을 지내고 아침이 밝았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찾아 안채로 들어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부엌 쪽에서 무엇을 찾느냐고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더니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빨간 댕기를 맨 17~18세 가량의 예쁜 아가씨가 낯을 붉히고 서 있다.

여자 앞에 그렇게도 숫기가 없던 나는 간신히 입을 열고 세수 할 물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성큼 부엌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놋대야에 가득히 담아 가지고 나왔다. 나는 말없이 수줍게 받아 가지고 저만치 외진 곳에 내려놓고 세수를 했다.

함경도는 몹시 추운 지방이다. 얼굴 좀 씻는데 뜨거웠던 물은 삽시간에 식어버리고 물 묻은 얼굴은 금세 뻣뻣해졌다. 얼른 세수를 끝내고 수건을 집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벌써 그 집 아가씨가 수건을 펴들고 대령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일이라 나는 수건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국군이 무서웠으면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아침이면 으레 세숫물 떠오고 세수 끝날 때까지 수건 대령하고 서 있는 것이 그 집 아가씨의 임무처럼 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마디 말도 부칠 줄도 모르고 그저 세숫물 떠오면 받고, 수건 건네주면 받아 씻는 목석같은 바보 역을 잘도 해냈다. 그저 국군이 무서워서 그런 줄로만 아는 이성에 대한 감정도 모르는 미숙아라고나 할까.

단천에 주둔한 지 보름쯤 되던 날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모든 장비를 꾸려놓고 그 집 안채로 들어가 부대가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난다고 알리면서 그동안의 고마움도 함께 전했다.

그날 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 집 아가씨였다. 방문을 열고 웬일이냐고 했더니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가씨는 성큼 내 방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아가씨와 나는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 호롱 불빛에 두 그림자가 다정하게 영상처럼 벽에 비친다.

아가씨가 입을 열고 말을 꺼낸다. 길주, 명천은 무척이나 춥단다. 백암이라고 하는 곳은 소 대가리가 얼어 떨어진다는 영하 40도나 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하면서 길 떠나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미와도 같이 발에 동상이라도 걸릴까봐 무척 걱정을 해 준다.

그러더니 길게 늘어뜨린 윤기 있고 곱다한 머리 체를 왼쪽 어깨로 쓸어 내리면서 빨간 댕기를 풀고 치마 속에서 꺼낸 가위로 자신의 머리 체를 싹둑 잘라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잘라낸 머리 체를 둘로 나누어 다시 머리 땋듯이 곱게 땋아 내 방한화 앞쪽 깊숙이 넣어 주면서 엷은 미소를 보낸다. 이제 어떤 엄동설한이나 어떤 혹한에서도 절대로 발에 동상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가씨의 그 곱디 고운 머리가 어떤 머리인데 어쩌자고 이 보잘 것 없는 국군병사 앞에 자신의 머리를 잘라 혹한 전선에서 내 발을 지켜 주려는 것일까. 불과 보름밖에 되지 않는 동안 그것도 아침 세수할 때나 잠시 만난 목석 같은 사나이 앞에 자신의 하늘을 무너뜨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어라고 표현할 길 없는 그녀의 놀라운 행위 앞에 나는 어떤 보답으로 그녀에게 나가야 하는 건지조차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깊은 뜻을 추호도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갚을 길 없는 무거운 짐으로밖에는 달리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 아가씨는 머리를 자르면서까지 만고에 없는 사랑법을 보여 주었건만 그토록 머리만을 떨어뜨리고 앉아 묵묵부답했던 내가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 고운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던 어둡고 캄캄했던 지난 내 젊음이 부끄럽기만 하다.

함경도 매서운 겨울바람을 가르면서 길주, 명천을 향해 북으로 달리는 105미리 포를 단 군용차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옆에 기대서서 손을 흔들어 주던 그녀는 분명 통일의 소식이 들려올 것을 굳게 믿고 있었으리라.

북으로 내달리는 용감무쌍한 국군 병사들은 길주, 명천을 지나 청진, 나진 웅기를 점령할 것이고 한편 길주에서는 백암 그리고 헤산을 거쳐 백두산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을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도 확신에 찬 웃음 띤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전쟁이 끝나면 틀림없이 자기를 찾아 돌아올 나를 그리며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 내 발을 동상에서 지켜준 댕기머리 아가씨여!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무한한 온기에 젖어만 든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기약 없이 떠나보낸 야속한 님으로 그녀 가슴에 한을 새겨 준 이 몽매한 놈은 이제나마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하면서 댕기머리 아가씨가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아가씨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백 번도 더 입 속에서 외쳐본다.

아! 나는 6·25 전쟁터에서 있었던 한 여인의 세상에 없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간간이 남몰래 내 가슴에 묻어 두었던 댕기머리 아가씨를 불러 50여 년을 두고 나 홀로 속삭였던 그녀가 아닌가.

포화가 멈추고 전쟁이 끝났을 때 피난에서 돌아온 부모형제 앞에서 그녀는 무어라고 단발의 사유를 해명했을까. 포성이 멈춘 분단의 피안에 서서 끊지 못하는 미련을 안고 꼭 돌아올 국군 병사에게 바친 자기결단의 순정이었다고 말했으리라. 북에 가족을 두고 남하한 이산가족의 애타는 심정만큼 나도 그렇게 그녀를 그리며 살아왔다.

#6·25#국군#댕기머리#동상#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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