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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5일) 아내와 함께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SBS TV 드라마를 보다가 나는 기가 막혀 정말 쓰러질 뻔 했다. 무슨 경시대회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학교동창 엄마들끼리 서로 제 자식 잘 났다고 설전을 벌이는 대목에서다.
"우리 아들은 전교 1등인데 너네 딸은 몇 등이나 해?"하는 한 엄마의 잘난 척에 다른 엄마는 "등수는 비록 20등에 불과하지만 우리 딸은 강남의 명문학교에 다녀" 하는 식이다. 강북 학교 정도와는 등수를 비교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듯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하는데, 강북 학교 출신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강남 엄마의 깨끗한 한 판 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경시대회 결과 강남 학교의 20등이 강북 학교의 전교 1등을 이기고 만 것이다. 아무리 허구로 가득 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건 현실을 왜곡해도 너무 왜곡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남의 교육열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치열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그곳 출신 학생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을 기준했을 때라고 본다. 강북에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 강남 학교 20등보다 못하다는 설정은 황당 그 자체이고, 현실을 왜곡해도 너무 왜곡한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이건 마치 그 옛날, 시골 학교에서 아무리 1등 해봐야 서울서는 중하위권 밖에 안 된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그대로 끌어다가 드라마의 뼈대로 삼은 듯한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지금 강북과 강남의 교육 수준 차이는 그때 시골과 서울의 차이만큼 크지 않고, 자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과 열기 또한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강북의 학부모들 중에서는 강남 못지않은 교육열(?)과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고 보면, 강북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이 강남의 20등보다 못하다는 설정은 무리도 보통 무리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설정을 해놓고 그걸 따라잡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보여준 일련의 상황들은 강남 사람들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강북이나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정말 불쾌하다 못해 화가 나는 얘기들이다. 강북 등 비 강남권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고 해봐야 강남에 대면 우물 안 개구리 수준밖엔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모욕을 퍼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강남 애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공교육의 입을 빌어 말하는 대목은 교육을 주제로 다루면서 도대체 교육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보기나 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가뜩이나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 허리가 휘는 판에, 강북과 강남 학생의 실력 차가 사교육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상황 설정은 비록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공공재인 공중파 방송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이고 재미를 추구한다고는 하더라도 그 내용 하나하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연중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드라마는 강남엄마는 제대로 따라잡지도 못한 채 수많은 '비강남' 학부모들에게 무분별한 경쟁만 촉발시키거나, '강남엄마'에 미치지 못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상실감과 상처만 입히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 '이게 우리나라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부 부유층 중심의 일상생활을 담은 드라마들이 판을 쳐 우리 같은 서민들은 속이 시끄러운 판에, 교육문제에서마저 강남엄마들을 앞세워 속을 더 시끄럽게 만들어야 하는지 드라마 제작진은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엔 제목처럼 악착같이 강남엄마를 따라 잡음으로써 시청자들 속을 시원하게 해줄 거라고 변명할지는 몰라도, 강북 전교 1등이 강남 20등보다 못 하다는 식의 황당하고 왜곡된 현실 감각을 갖고 있는 드라마 제작진이 과연 제대로 그걸 해낼 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공연히 비강남 학부모들의 속만 시끄럽게 해놓은 채 홍길동식의 허무맹랑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흐지부지 끝을 맺고 마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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