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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확실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아가씨가 시댁인 나주 보성에 다녀오면서 자신의 아들 승현이에게 주려고 산 달팽이와 달팽이집을 그만 우리집에 놓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제가 맡아 키우게 됐습니다.

아가씨는 한 달에 한 번 흙을 갈아주고 매일 상추 한 잎씩만 주면 잘 큰다며 잘 키워보라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집안에서 뭘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달팽이를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번 키워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처녀시절 우연히 새끼거북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거북이는 잘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제 게으름 때문인지 몇 달 안 돼 한 마리가 죽었고, 며칠 있다가 남은 한 마리마저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거북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나머지 죽은 거북이를 휴지에 조심스레 싸서 앞 베란다에 묻고 무덤 앞에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까지 꽂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키우지 않겠다고요. 그래서 달팽이 키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달팽이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씨 말과는 다르게, 달팽이들은 하루 보통 상추 4개는 거뜬히 해치우는 무서운 폭식자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야채값이 비싼지라,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고 20이에 한 번씩은 달팽이용 흙을 사서 갈아줘야했기에, 누군가에게 줘버릴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난 저는 마냥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6살 큰 아들과 3살 둘째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두 아들의 유난스런 달팽이 사랑에 저까지 달팽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하루라도 달팽이 녀석들은 보지 않고선 못 살 정도가 됐습니다. 달팽이들을 안 보면,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달팽이들에게 이름도 지어줬습니다. 덩치가 큰 녀석은 '뿌미', 작은 녀석은 '뽀미'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의 큰 아들 영진이는 달팽이에 관해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 왜 달팽이는 집을 끌고 다녀?", "달팽이는 왜상추만먹어?" "덩치가큰달팽이가 아빠달팽이야?"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말을 못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장식장 위에 놓아둔 달팽이집을 내려달라며 펄쩍펄쩍 뜁니다.

▲ 뿌미
ⓒ 전복순
▲ 벽을타고다니는 뿌미?
ⓒ 전복순
▲ 상추가다떨어져 배추를먹고있는뿌미
ⓒ 전복순
처음엔 징그러워 잘 처다 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상추 먹는 것을 비롯해 벽을 타고 다니며 응가 하는 것도 마냥 귀엽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 소홀함 때문에 하마터면 뿌미가 큰 일 날 뻔했습니다. 날씨가 더웠는데도 제가 며칠 동안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엎드려 있어야 하는 애가 똑바로 누워 있어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물을 뿌려주니, 힘 없는 고개가 쑥 나오더군요. 그제야 안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한참동안 움직임이 둔하여 머리를 상추쪽으로 돌려주니 그제야 상추를 먹으며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식물과 곤충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도심 속 우리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체험학습을 시켜주는 것 같아 지금은 뿌미와 뽀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그림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며 먹이도 주고 관찰도 할 수 있으니 키우는데 비용이 조금 들지만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자연학습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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