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DMZ 및 NLL 평화지대 제안을 놓고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매우 몰상식한 주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북방한계선(NLL) 양보는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여론을 선동하여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퇴색시킴은 물론, 어렵게 정착되고 있는 남북 평화화해 모드를 반북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는 나쁜 의도까지 엿보인다.
과연 NLL 문제가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퍼주기이며 나라를 팔아먹는 것인가라는 주장에 대해 냉철하게 검토해보자.
NLL 문제는 남북이 크게 인식을 달리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이것을 의제로 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전향적인 것으로 그동안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들던 문제를 풀 실마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2002년 6월 29일의 서해 교전은 쌍방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낼 정도의 불상사로, NLL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에도 큰 장애물이 될 것이므로 선동적인 정략적 주장과 여론몰이에 홀리지 말고 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냉정한 인식이 요구된다.
NLL은 정전협정에서 합의 하에 확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NLL이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처럼 정전협정에서 합의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NLL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침범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이다.
정전협정에서는 서해 5개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권만 획정하고 서해 5도 수역의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았다(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나아가 오히려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해상 봉쇄도 하지 못하게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했다(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말하자면 서해 5도 수역에 대하여 정전협정은 육상의 군사분계선과 같은 경계선을 정하지 않았고,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완충 구역도 설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섬들 및 그 섬들의 연안에 대한 관할권만 정하였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해 5도 수역에서 정전협정의 강조점은 해상의 경계를 나누는 일이 아니라 해상봉쇄를 금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해상의 구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해수의 이용을 쌍방 모두에게 보장하는 일이 정전협정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NLL이 국제법과 정전협정에 따른 정당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북한이 정전협정과 국제법, 남북기본합의서(제2장 남북불가침 부속합의서 제10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조항)를 근거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는 점이 법리적으로는 더 타당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NLL에 대한 유엔사(미국)의 입장 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인 8월 30일 유엔사(UNC) 사령관은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가능성을 줄이고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동해 및 서해에 한국의 해군 및 공군의 초계활동을 한정하기 위한 선으로 이른바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하였다.
북한의 해군은 완전 궤멸 상태에 있었고 당시 리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 한계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제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유엔사는 NLL에 대하여 해군작전규칙의 일환으로 우리 해군에게만 전달하고 북한측에는 공식적으로 통보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쌍방의 합의 하에서 정해진 '북방경계선(Nothern Boundry Line)'이 아니라 그 이상 넘어갈 수 없다는 '북방한계선(Nothern Limited Line)'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NLL을 경계선으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 유엔사(미국)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즉, 유엔사는 서해 NLL에 대해 군사작전상 설정된 해상경계선으로서 군사분계선이 아니며, 따라서 북한의 단순 월선에 대하여는 무조건적 대응을 해서는 안 되며, 월선 후 적대적 도발행위 또는 서해 5개 도의 3해리 접근 시에만 무력대응이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사는 그동안 서해 5개 도서 3해리 밖의 수역에 대하여 공해(International Waters)라 했고, 그 안의 수역을 인근수역(waters contiguous to the island groups)이라 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NLL 침범은 이 인근수역을 침범했을 때로 보는 것이다. 미 국무성도 NLL 통과를 영해침범으로 보지 않고 있다.
남북 쌍방은 보다 유연한 자세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야 한다 남북은 이제 과거 냉전 시대와 다른 환경에 있다. 서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여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의 일방적 주장만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보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남한도 과거처럼 NLL 이남을 영해라고 주장하며 타협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경직한 접근을 지양하고, 북한도 국제해양법 원칙과 정전협정에 따라 해결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
이미 남북 쌍방이 지난 제3차 장성급회담(2006년 3월 2일)에서 과거보다 진전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과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DMZ 및 NLL 평화지대화 구상은 앞으로의 해결 전망을 밝게 해준다.
이제 우리도 NLL이 북한에 통보하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북한이 1957년 이래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NLL은 쌍방 합의 하에 설정된 경계선이 아니며, 그 이남이 전부 우리의 영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의 NLL 월선을 영해침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방적인 태도를 넘어 좀 더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국민정서를 악용한 여론몰이식 주장은 매우 정략적이며 몰상식한 주장이다.
남북은 서해 5도 주변 3해리를 해당 도서의 전관수역으로 인정하고, 그 이외의 인근수역과 꽃게가 많이 나는 주변수역을 통합해 '남북한 공동어로구역'으로 설정해 남북이 공동관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NLL로 인한 피해는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주장처럼 그 구획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 어선이 NLL 문제로 서로 간에 통행의 제약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의 맹점을 악용한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불법 어로 행위와 폐그물의 방치로 인한 해저의 쓰레기장화로 인한 어자원의 황폐화가 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크다. 이것은 군사적 긴장 완화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남북이 원-윈 하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NLL 문제는 정전협정을 저해할 일이 없는 문제로 유엔사의 선행적 조치도 필요 없이 남북 간의 합의만으로 해결할 수 있고 남북 쌍방이 주체가 되어 가장 많은 자율권을 누리는 부분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남북이 협력하지 못한다면 남북 평화화해라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또한 경제적 불이익 측면에서도 모두 놓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더 이상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고, NLL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여론몰이를 중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2007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로 구상하고 있는 NLL 평화지대에 대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잘못된 주장에 대한 반박글입니다.
* 강운태 기자는 농림수산부장관과 내무부장관 등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