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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일부터 시작된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거침없는 언행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2일 만수대 의사당을 방문한 후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는 서명을 남겼으며, 4일 서해갑문 방문 이후에도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서명했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보수 신문들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노대통령이 서해갑문을 둘러본 후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들이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노대통령이 서해갑문을 둘러본 후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10월 3일자 <중앙일보>에서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은 아예 "인민(人民)"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인민이란 단어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전유물처럼 돼 버린 지 오래" "그 가치가 전혀 다른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서 이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은 부적절하다",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간혹 잊는 듯한 대통령의 행보가 염려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4일자 <조선일보>에는 서울대학교 박효종 교수가 "'해도 될 말'과 '해 선 안 될 말'"이라는 칼럼을 기고하며 노 대통령의 언행을 비판했다.

이 칼럼에서 박 교수는 노 대통령의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 서명에 대해 "문명사적 흐름에 둔감한 표현이며 문명과 야만, 민주와 반민주, 인권과 반인권의 차이에 대한 감수성이 약한 표현"이라면서, "공존의 차원에서 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과대 칭송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노 대통령이 북한 체제를 '과대 칭송'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한 노 대통령이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 이번 회담에 대해 "금기를 두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데 대해서도 "안 될 말이다. 원칙과 금기는 있어야 한다. 무엇이 건강한 체제고 무엇이 행복이며 무엇이 주권인지에 대한 명확한 문명사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인민(人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 대한 보수 신문들의 비판이 자칫 소모적인 '색깔론' 공방을 자초하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에 합의한 마당에 '인민'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이를 '정체성 망각', '과대 칭송'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지배계층·피지배계층 통틀어 가리키는 말 '인민'

 10월4일자 <조선일보>
10월4일자 <조선일보> ⓒ 조선PDF

더군다나 '인민(人民)'이라는 낱말의 어원적 유래를 살펴보면 전통 시대부터 두루 사용된 가치 중립적인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동양사학자 신채식(申採湜)의 저서 <동양사개론>(삼영사, 2000)을 보면 인민(人民)이라는 말은 본디 기원전 11세기 중국 서주(西周) 시대에 사대부 이상의 지배계층인 '인'(人)과 농민 등 피지배계층인 '민'(民)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인터넷에 전문이 게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에서 '인민(人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아도 무려 384번이나 '인민(人民)'이라는 말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 사례인 세종 9(1427)년 9월 11일 병신일자 기사 "평안도와 황해도에 가뭄을 이유로 빈궁한 이에게는 환상(각 고을의 사창에서 백성에게 꾸어 주었던 곡식을 가을에 받아들이는 일)을 수납하지 말라고 전하다"를 살펴보면 세종 임금이 "년은 가물로 인하여 농사시기를 잃었으니, 각 고을의 인민(人民)이 받은 환상(還上)을 수납(收納)할 때에 빈궁(貧窮)한 사람에게는 수납하지 말라"는 교지를 평안도, 황해도 감사에게 내린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통 시대부터 '인민(人民)'이라는 말이 흔히 쓰여왔기에 19세기 들어 동아시아 세계가 서구 문물과 본격적으로 접촉하게 되면서 영어의 'people'이라는 말을 '인민'(人民)으로 번역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반면, 지금 우리가 '인민(人民)'에 해당되는 말로 늘상 사용하는 '국민'(國民)은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을 검색해 보아도 고작 9번밖에 나타나지 않을 만큼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는 일본 천황의 신하·백성들을 두루 일컫는 말인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줄임말로서 사용되기도 할 만큼 문제가 있는 표현이기도 했다.

보수신문, 언제까지 딴죽 걸 기회만 노릴 건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보수 신문들은 "만약 53년 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대통령의 소위 '수용소 발언'에 대해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보수신문들이 대통령의 '인민(人民)'이라는 낱말의 사용에 대해 시비를 걸며 자칫 쓸데없는 이념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 및 남북한 교류 협력 확대, 평화 증진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보수신문들은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에 딴죽 걸 기회만 노리려 들 것인가? 새로운 남북한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맞게 보수신문들도 낡은 이념대립과 '색깔론'의 주문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한다.


#노무현#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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