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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경기여고 동창의 날 행사 때 토요일 오전 일과 중에 동창들이 학교 운동장에 이렇게 많은 차량을 주차해놓았다. 학교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변하였다.
▲ 동문들이 일과 중에 학교 운동장에 주차해 놓은 모습 10월 20일 경기여고 동창의 날 행사 때 토요일 오전 일과 중에 동창들이 학교 운동장에 이렇게 많은 차량을 주차해놓았다. 학교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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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맥·인맥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창회는 '친목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물론 추억을 즐기고 그리운 친구를 만나는 성격도 있지만, 동창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어려움에 처할 때에는 공적·사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도 단지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로 쉽게 뭉친다.

또한 작은 동창회도 지역에서는 토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선거철만 되면 작게는 시골 조합장에서부터 크게는 대통령까지, 모든 동창회가 동문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과적으로 동창회가 사람들 조직하고 편을 갈라 개인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폐해 때문에 일부 동창회는 20여 년 전부터 민주동문회를 결성하는 등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워낙 강고한 연줄 문화에 막혀 민주동문회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고 이마저 또 하나의 인맥이 되기도 했다.

동창회 여러분, 꼭 모임을 모교에서 해야 합니까?

그런데 동창회의 이런 일반적인 특징과는 다른 방향에서 인맥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경기여고 동창회이다. 100년 전통의 여고인데다가 정재계 주요 인사의 아내인 동문들이 많아 그 활동이 아주 특이하다.

나는 경기여고에 6년째 근무하며(실제 근무는 4년) 경기여고 동창회 활동을 지켜보았기에 이런 유별난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무슨 일이든지 다 빛과 어둠이 있기에 어둠만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득권 집단인 경우에는 그 빛이야 당연한 것인데다가 사회 권력층인만큼 주로 어둠을 제시하고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경기여고 동창들이 그동안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동창회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은 그와는 다른 문제이기에 여기서 그 어둠을 한번 지적한다.

경기여고 동창회는 오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이것이 자기 과시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낮에 모여 문화·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정기적인 모임과 취미 활동이 꼭 모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학교 교육 활동에 방해되는 경우가 생긴다.

6년 전 경기여고에 처음 부임해보니 학교 강당 위에 동창회용의 사무실과 회의실·컴퓨터실 등이 따로 있었다. 여기에 동창들이 매일 찾아오는데 교육을 받기도 하고, 월례회나 기수 모임, 각종 취미 활동 등도 하고 있었다.

이후 2003년에 3층짜리 연 면적 300여 평의 학교 생활관(매화관)을 동창회에서 박물관·강당 등으로 개조하여 이 곳을 동창회관처럼 사용하며, 모임과 취미 활동을 확대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낮시간인 학교 일과(수업) 중에 동창들이 차를 타고 학교를 드나들면서 시끄럽게 하여 교육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잦아졌다.

10월 15일 토요일 오전 일과 중에 동창회 날 행사의 일환으로 경기여고 교정에서 동창들이 바자회를 개최하였다. 지금 앞에 보이는 교실에서는 수능을 한 달 앞둔 3학년이 수업 중이다.
▲ 동창의 날 바자회 풍경 10월 15일 토요일 오전 일과 중에 동창회 날 행사의 일환으로 경기여고 교정에서 동창들이 바자회를 개최하였다. 지금 앞에 보이는 교실에서는 수능을 한 달 앞둔 3학년이 수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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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창회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문제를 인식을 하지 못한다. 모임 장소와 취미 활동 장소가 학교 내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좀 더 화려하고 넓어야 한다는 데에는 관심이 많으나, 그 활동으로 인해 학교 교육에 방해를 주고 있다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학교라는 곳은 일과 중에 외부 차량이 들어오고 외부에서 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여고 동창회에서는 개교기념일이 있는 10월 중순이면 토요일에 연례행사로 '동창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이 준비를 위하여 올해에도 역시 금요일 오전부터 학교 교정을 막고 교사들의 차량을 주차하지 못하게 하며 부스를 설치하는 등의 교육 활동 방해를 하였다.

지난 20일 토요일 오전에는 일과 중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동장에 차를 가득 주차시킨 채강당과 체육관에서 행사를 하고 교정에서 바자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이 행사를 위해 일부가 동원되기도 하고 학교 기사들은 이 준비를 위해 이틀 동안이나 노력 봉사를 하였다.

이런 일은 상식에 맞지도 않거니와 모교 후배 학생들이 수업을 하는 시간에 모교 은사들의 고충과 불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시행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학교 교육시설인 테니스 코트, 무용지물이 아닙니다

이 곳에 경기여고 동창회에서 백주년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한다. 이 테니스코트는 두 면으로 흙으로 되어 있으며 조명시설도 있는 최상급 시설이다.
▲ 경기여고 테니스코트 이 곳에 경기여고 동창회에서 백주년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한다. 이 테니스코트는 두 면으로 흙으로 되어 있으며 조명시설도 있는 최상급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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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경기여고가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이어서 동창회와 학교에서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올해 내내 학교와 동창회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가 하나 있다.

동창회에서는 학교 테니스코트에 동창회 안대로 백주년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하고, 학교에서는 이 기념관이 학교 교육시설을 허물고 지어지기에 학교 교육 시설로 지어져야 한다고 하며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 테니스코트는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경기여고의 한 공간을 이루며 땅으로 되어있어 생태학적 의미가 다분한 곳이다)

올 3월에 동창회에서 학교에 일방적으로 제시한 설계안에는 현재 동창회관처럼 쓰는 매화관도 함께 사용하면서 박물관·100년 역사관·전시관·카페·소강당·교육관 등 8층으로 꾸며져 있었다. 학교 내에 두 개의 건물을 동창회에서 차지하여 동창회관처럼 사용하며 운영비를 얻기 위해 외부에 임대로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문제를 느낀 학교에서는 한 학기 내내 동창회와 협의를 하며 학교 터에, 그것도 교육 시설을 허물고 건립할 때에는 학교가 정한 원칙(동창회가 필요한 시설 이외에는 순수한 학교 교육 시설이어야 한다)에 의거하여 건립되어야 하며 기존에 동창회가 쓰고 있는 매화관은 반환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창회에서는 경기여고 동문 출신인 교장을 통하여 이 안을 초지일관 고수해왔으며 설령 학교가 원하는 교육 시설을 일부 제공한다 하더라도 동창회에서 허용하는 시설만 가능하다는 식으로 학교를 압박해왔다.

더욱이 동창회에서는 외부에 임대 사업하고 동창들이 매일 들락거리며 정기모임 때에는 많은 수가 출입하게 될 8층짜리 건물을 지으면서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지하주차장 건설도 거부하였다.

지금 이 동창회 안은 92명 전체 교사 가운데 53명이,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용상의 문제도 많아 유보하자는 반대 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부임한 교장에 의해 약간 변형된 채 학운위를 통과하여 많은 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학운위 구성의 문제나 활동의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경기여고 학운위에는 특이하게 지역위원으로 동창회원 2명이 들어와 있고 이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확정되지도 않은 교장 개인의 안을 학운위에서 주도해서 심의 통과하게 한 것은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

이런 과정은 그만큼 동창회의 유무형의 압력이 학교에 뻗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100년 역사를 기념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일은 좋으나 그것이 학교 시설을 파괴하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동창회 활동이란 무릇 그 본질이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모교 발전에 도움에 되고 모교 후배와 교사들의 교육 활동에 기여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에 늘 후배들의 현재 교육 여건과 환경을 의식해야 하고 교사들의 생각이나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

동창회가 존재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길...

그러나 경기여고 동창회는 6년 동안 겪어본 바에 의하면 이런 자세와는 좀 거리가 먼 듯하다. 오히려 현 어린 학생들과 5년 근무하는 교사들은 철새이기에 동창회가 학교의 영원한 주인인 듯한 자세를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동창회가 존재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모교가 발전하고 모교가 교육 활동을 제대로 해야 동창회 활동도 의미를 부여받지 않겠는가? 만약 이런 대의와 어긋나게 사적으로 취미 모임을 갖는다면 그것은 학교 밖에서 따로 모여 하면 될 일이다.

구태여 학교 안에다 터를 잡고 모임을 자주 가지며 동창회관처럼 들락거릴 이유는 없다. 경기여고 동창회가 빨리 공과 사를 구분하여 동창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 그 회복이야말로 동창회에서 학교에 주는 개교 100년의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에 대해 경기여고 동창회에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동창회에서 언제든지 원하면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동창회에서 학교 구성원들인 교사,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백주년기념관 건립이나 동창의 날 행사를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태그:#경기여고, #경기여고백주년기념관, #동창회, #경기여고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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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사람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하고자 몸부림치는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또한 이 세상이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곳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에서 경험한 일을 토대로 우리가 짚고 넘어거야 할 문제를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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