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지난 10일 어린이집에 보낸 아들을 조금 일찍 데리고 나와 오랜만에 통영 한산도에 다녀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통영 가는 길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전-진주-통영 간 고속도로 덕에 진주에서 40여분이면 통영 시내에 들 수 있다.
통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있는데 그 중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 관한 것이 가장 먼저다. 통영에 있는 학교들은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교가를 쓰는 곳이 많다. 내가 졸업한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의 교가 역시 윤이상 선생의 곡이다.
몇 년 전 러시아에 머물고 있을 때 클래식음악 작곡가 100인을 다룬 책이 있었는데 그 100인 중 윤이상 선생의 이름이 든 것을 보았다. 그 당시 책에는 출생지가 충무로 되어 있었는데 충무가 바로 통영이다. 통영에서는 해마다 윤이상 선생을 재조명하자는 의미에서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다.
통영에는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한산도에는 다녀 온 적이 없어 내친 김에 한산도에 가려고 했다. 마침 한산도에는 매 시간마다 다니는 배가 있어 시간 맞추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덤으로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니 뭔가 공부도 시켜주고 싶었는데 마침 불을 밝혀 뱃길을 알려주는 등대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골에서 자랐지만 강원도 동해안 바닷가 초소에서 군복무를 한 터라 등대에 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내가 근무한 해안초소 맞은 편 언덕에는 커다란 등대가 있었는데 매일 밤에 불만 밝히는 줄 알았던 등대가 어느 날 안개가 짙었던 한낮에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처음엔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개가 짙은 날은 빛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소리로 항해하는 배들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 때 새삼 등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등대 색깔 의미... 붉은 색은 왼쪽, 흰색은 오른쪽, 노란 색은 주의 항해등대는 세 가지의 색깔이 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붉은 색과 흰색이다. 붉은 색은 좌측 방향으로 가라는 의미이고, 흰색은 반대로 우측방향으로 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하나 흔하지는 않지만 노란 등대는 교통신호와 마찬가지로 주의해서 가라는 의미란다. 노란 등대는 통영에서 처음 보았는데 신기하게 느껴졌다.
통영에는 수많은 등대들이 있는데 그 중 홍도의 등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지금 몇 남지 않은 유인등대인 소매물도의 등대도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산도 앞바다의 거북등대다. 이 등대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되새길 수 있는 상징이기도 해 의미가 남다르다.
또 하나 더 추가를 한다면 도남 관광지에 있는 연필 모양의 등대다. 이 등대는 통영에서 배출한 문인들을 기리고자하는 뜻에서 특별히 '연필' 모양으로 제작된 등대인데, 정식 명칭은 '통영문학기념등대'이다.
통영에선 등대의 여러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눈은 즐거워진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고 본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첫 목적지는 한산도. 어렵지 않게 여객선 터미널에서 표를 사고 3시 배에 차를 실었다. 경차임에도 사람과 차 모두 해서 운임이 2만 원 정도 들었다. 4시 반 배를 타고 나와야 하니 조금 비싸게 느껴지긴 했지만 여행의 기분을 망칠 정도는 아니어서 괜찮았다.
30여분을 뱃길로 가니 한산도다. 거북등대가 한산도임을 멀리서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배에서 내려 제승당 가는 길은 온통 가을빛이었다. 제승당에 도착하고 오른쪽 바다가 보이는 곳에 수루가 있다. 여건만 된다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서 반세기 전 이순신 장군처럼 한산섬 앞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제승당 , 수루 외에도 장군이 부하들과 활쏘기를 했던 곳이 있는데 이곳에 오면 잠시나마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배 시간이 임박해서 짧은 시간밖에 머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한산도를 빠져나갈 때 왕복으로 표를 끊어왔다면 처음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 가서 몇 시 배로 나가겠다고 꼭 얘기를 해 놓고 가는 것이 좋다. 자칫하면 차들이 많아 그 배에 차를 싣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낭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가는 길, 늦가을의 짧은 해가 바다 너머 산 뒤로 지고 있었다.
통영 출신 문인들을 기리는 연필 모양의 등대와 한산대첩 되새기는 거북선 등대
통영 팔경은 어디? |
[통영 가는 길]
대전-진주-통영 간 고속도로 덕에 진주에서 한 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40여분으로 단축되었다. 서울에서도 이제 승용차로 네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통영에 들르면 강구안 충무김밥 거리에서 꼭 충무김밥을 맛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해물도 한 번 드셔보시길….
통영 팔경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보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1. 미륵산에서 본 한려수도 2. 통영운하 야경 3. 소매물도에서 바라 본 등대섬 4. 달아공원에서 바라 본 석양 5. 제승당 앞바다 6. 남망산 공원 7. 사량도 옥녀봉 8. 연화도 용머리
이 외에도 한국관광공사 여행정보싸이트(http://www.visitkorea.or.kr/index.html)에 방문해서 통영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검색한다면 더 많은 싱싱한 정보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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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터미널에서 빠져나와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차를 돌렸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통영항의 야경을 사진에 담을 요량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형형색색의 하나씩 밝혀지고 있었다.
통영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충무김밥이다.
맛도 맛이지만 통영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충무김밥은 70여 년 전 고기잡이 나가는 남편에게 김밥을 싸 준 것에서 유래했는데 처음엔 보통 김밥을 싸보니 내용물이 쉽게 상해 나중에 밥은 따로 김에 말고 반찬은 따로 포장한 것이 지금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필 모양의 등대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차를 다시 돌렸다. 아주 밝은 조명으로 그 주위가 훤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훨씬 웅장한 것이 그것은 등대 역할뿐 아니라 통영 출신의 문인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했다.
통영을 빠져나오는 길에 보니 옆 좌석의 아들은 곯아떨어졌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이면 “아빠, 내 카메라는 어디 있는데?”하며 따라 나서는 아이, 사진을 찍고 있으면 꽤 거창한 자세로 사진을 찍어서 “아빠, 잘 찍었제?”하며 보여주기도 한다.
통영과 가까운 진주에 살지만 여행 한 번 제대로 가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 가을이 가기 전 통영에 다시 한 번 가리라 다짐해본다. 아들에게 여행도 또 하나의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쓰면서 좋은 등대공부가 될 수 있게 도와 준 마산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의 이상태 주임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