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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의 발이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 하나같이 까딱인다. 볼에는 바람이 잔뜩 들어가 불룩해져 있고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금빛 찬란한 색소폰.

 

12월의 첫날 오후 7시, 을숙도 문화회관에서는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의 제 2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초겨울의 을숙도 밤은 색소폰 소리로 물들고 있었다.

 

프로 뺨치는 아마추어들

 

노주원 아나운서의 사회를 시작으로 연주회의 막이 오르자 27명의 연주자들이 부는 힘찬 색소폰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에는 한 가지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그들은 전문 음악인이 아닌 아마추어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색소폰 연주솜씨는 흠잡을 데 없었고 오히려 전문 음악인 뺨칠 정도였다.

 

색소폰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의 네 가지 파트로 구성돼 있다. 섹시한 소프라노 소리, 웅장한 바리톤 소리 등 저마다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단원들은 서로 다른 색소폰 음색을 잘 녹여내 멋진 음악을 선보였다.

 

이날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는 클래식, 가곡, 대중가요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척척 소화했다. 특히 격렬한 ‘헝가리 춤곡’, 관객과 함께 호흡한 ‘짠짜라’, ‘어머나’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지휘를 한 방준모 단장의 트럼펫 독주, ‘순’ 오카리나 동호회의 오카리나 연주, 테너 조영수 씨의 특별출연도 연주회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을숙도 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550여 명의 관객들은 남편, 아내, 연인이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에 매료되었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친구의 연주를 관람하기 위해 문화회관을 찾은 이재일(27)씨는 처음으로 직접 듣는 색소폰 소리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와 다른 친구의 모습을 보니 놀랐다”며 “친구가 색소폰을 열심히 연습한 것 같아 뿌듯하다”라고 했다.

 

“섹스폰 아니죠, 색소폰 맞습니다”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 이봉춘 회장은 기자의 틀린 발음을 고쳐주며 “색소폰”이라고 정확히 집어주었다.

 

한 항공사에 재직 중인 이회장은 2004년 6월부터 취미로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는 기타연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악기 소리에 점점 끌렸다고 한다. 이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만나게 되었고 2005년 5월 1일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를 창단하게 되었다.

 

“색소폰을 불면 정신 건강에 굉장히 좋습니다. 연주에 몰두하다 보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죠.”

 

이 회장이 꼽는 색소폰 연주의 장점이다. 저녁마다 색소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 회장. 하지만 바쁜 직장일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넉넉지 않을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그가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를 운영하면서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도 ‘시간’ 문제였다.

 

“단원들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 함께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연습할 시간만 충분했다면 더 매끄러운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쉽네요.”

 

이 회장은 앞으로 2년에 한 번 정기 연주회를 열고 내년에는 가족들을 위해 소규모로 식당에서 연주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병원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돕기 행사에서도 연주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색소폰과 즐거운 인생

 

송인욱(27)씨는 부산 색소폰 필하모니에서 최연소 단원이다. 젊은 만큼 색소폰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현재 알토2 파트를 맡고 있는 송씨는 색소폰을 시작한 계기가 약간 별나다.

 

“2002년 서면의 한 라이브 바에 갔거든요. 거기에서 색소폰 공연을 보고 반했습니다. 악기를 하나 배우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죠.”(웃음)

 

송씨가 주저 없이 말하는 색소폰의 매력도 바로 ‘쇼맨십’이다. 색소폰에 필이 꽂힌 이유도 남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불어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한 번 불기 시작하면 더 잘 부르고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두 시간씩 꼭 연습을 한다고 한다.

 

또한 색소폰을 불기 전, 퇴근 후 집에서 TV 시청만 하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색소폰 소리에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음악을 함으로써 만족감도 느낀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도 바로 연주가 가능하도록 꾸준히 연습할 겁니다.”

 

송씨는 색소폰을 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곡당 100회 이상은 불러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색소폰 때문에 더없이 즐거운 인생을 누리고 있었다.


태그:#부산 색소폰 필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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