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 할 일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몇 해 전 실시한 국내 타(他)국적 소유자 조사 결과, 소위 대한민국 1%라고 불리는 고학력·고소득자가 전체 타(他)국적 취득자 가운데 90%가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인재(人材)들이 모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현상은 충격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책임을 그들에게만 돌릴 수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이를테면 이들이 “박사학위 받는 동안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본전에 대해 캐물어온다면 이들의 국적포기는 이해 못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돈 들여 배운”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면 내 돈을 들여 배울 수밖에 없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결국 위 사태는 ‘수혜자 부담의 원칙’에 입각한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이 빚어낸 당연한 최종 결과물인 것이다.
저들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우기 위해 “내 돈”이라도 들일 수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미 그 역할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학부모들 역시 학교보다는 학원을 신뢰한다.
결국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고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고착화되어 버렸다. 교육 수준이 되물림 되는 것은 당연해졌고 교육 수준 격차는 새로운 카스트를 양산했다. 결국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직접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만들겠다”고 했을까.
속은 곪아터져 진물이 흐르고 있는 상처에 연고만 발라왔다면 환부를 찢고 수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 새로 부임한 의사는 연고를 발라온 의사를 비난하면서도 수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연고를 걷어낸 후 민간요법 전문가에게 환자를 이송하겠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처방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이 딱 저 상황이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면서 그동안 참여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던 이른바 3불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전면 폐지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덧붙여 앞으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대학입시에 관한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한다. 기이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기이한 처방은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이 인수위를 통해 발표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메가스터디’ 등 사교육 시장의 주가들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가 거론되면서 대학 본고사 부활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앞으로 교육은 철저히 상품으로 변모할 것이고 강남의 고등학교 교실에선 “너 이번에 Y대 샀어? 난 K대 살까봐”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지도 모르겠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의 잘못된 처방으로는 결코 곪아터진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논술 시험 문제를 본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사인 나 조차 풀 수 없을 문제”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결국 공교육만으로는 대학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입시가 계속 된다면 경쟁력이라는 허울아래 공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결국 기회의 평등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기회의 평등만큼은 보장해줘야 한다. 모든 입시 수험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마치 백화점의 명품구두를 사듯 비싼 학원비를 지불해야만 하는 현재의 상황만큼은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현재 이명박 당선인의 해괴한 처방으로는 결코 개천에서 용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자원인 나라다. 그래서 더욱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서두에 언급한 인재들의 국적이탈 현상을 막는 방법은 교육이 국가의 인재를 길러내는 사업이라는 철학을 바로 세우는 수밖에는 없다.
무상교육 실시와 대학평준화가 그에 적절한 처방이다. 신자유주의를 인정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프랑스 정부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시장의 논리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세금이 아깝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교육은 국가의 인재를 길러내는 공적인 사업이라는 철학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시기상조라고 한다면 적어도 매년 전국 수석이 말하는 “교과서 중심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는 말이 풍자 개그가 되는 현재 상황만큼은 바꿔내야 한다.
‘교원 평가제 실시’ 등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실력을 신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할 것은 대학 입시 자율화라는 미명하에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대학들의 행태를 먼저 통제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에 걸맞은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