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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부섭
 
풍물시장은 춘천시내에서 5일마다 열리는 장이다. 약사동과 효자동 일대에 상설 재래시장이 있는데 그 앞에서 5일장(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이 열린다. 나는 풍물장날(22일) 5일장 구경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아직은 설 대목처럼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좌판에 펼쳐진 물건들은 설 명절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도심 한가운데서 열리는 5일장이 옛 명성은 잃었지만, 그래도 5일장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다고 상인들은 이야기했다. 대형마트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도 있고, 싱싱한 생선이나 야채들이 대형마트 못지않게 풍성해 얼마든지 장바구니를 넉넉히 채울 수 있어 5일장을 찾는 이들이 장날이면 어김없이 찾는 것이다.
 
아침마다 일간지에 끼어오는 광고지 중에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할인가격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할인금액은 사람들을 마트로 불러들이는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는 것 같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5일장과의 시장규모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고, 사람 살아가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 이기때문에 사람들은 꾸준히 장바구니 들고 재래시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5일장날엔 시골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집에서 가지고 나오신 물건이 눈길을 끈다. 물건에 바코드 번호나 정가가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도덕의 질서가 무언의 흐름처럼 흐르고 있어 바가지 상혼에 멍드는 일없이 할머니들 물건 앞에선 저절로 지갑이 열린다.
 
농사지은 고구마, 서리태콩, 고춧가루 등을 내놓고 판매하시는 할머니와 물건값을 흥정하는 주부의 모습이 정겹게만 보인다. 재래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흥정의 재미가 할머니 쌈지의 무게와 상관없이 주거니 받거니 오고 가다가 덤까지 얹어서 넉넉히 채워 주시는 할머니의 승리로 끝이 난다. 곁에서 지켜보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5일 장날의 진풍경이다.
 
"뭐 할라구 늙은이 사진은 찍구 그랴."
"할머니가 예뻐서 찍어 드리려구요."
 
시장 한켠에 좌판을 펼쳐 놓으신 할머니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아이구,난 사진이 잘 안나오니까 찍지 말아"라고 하셔서" 예, 안 찍을게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여쭈었더니 홍천에서 오셨다고 한다.
 
"홍천이면 1시간 거리인데 이 물건들은 어떻게 가지고 오셨어요?" "아들이 트럭에 실어다 주고 갔어, 저녁때 또 태우러 올 거야" 하신다. 속단하기 쉬운 잣대로 볼 때 나이 드신 어머니를 추운 날씨에 시장에 내보내 드리는 게 불효일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 시장에는 누가 나가자고 하셨어요?" 했더니 "장날마다 내가 나가겠다고 나서니까 아들이 안타까워서 기름값도 안 나오는데 날 태워다 주고 가는 거여" 하신다.
 
농사짓는 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당신의 용돈도 만들어 쓰실 수 있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장날마다 나오시겠다고 하셨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하루종일 계시려면 힘이 드시지만 그래도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백배 낫다고 하시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할머니의 굵은 손마디가 삶의 질곡을 나타내 보였지만 할머니나 할머니의 물건들은 결코 초라함 없이 당당하게 좌판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할머니들이 계셔서 5일장이 정겹게 느껴지는가 보다.
 
이제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집집마다 명절 구매계획에 따라 시장을 볼 것이다. 백화점이나 마트, 재래시장 등 어디서 시장을 보든 가정경제에 맞는 장을 보게 되겠지만 나는 관심을 재래시장으로 돌려 명절장을 보려고 한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5일장날에 푸짐한 덤까지 듬뿍 얻어서 장바구니를 채우려고 한다.

#5일장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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