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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술은 역사적 사건을 평가해 보는 것이 제 맛이다. 교과서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그저 사실만 전달하고 넘어간 사건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바로 역사논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신라와 관련해 가장 흥미있는 주제는 진흥왕과 김춘추다. 진흥왕은 100여년 동안 이어지던 나제 동맹을 깨뜨리고 한강 유역을 점령했으며, 김춘추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당나라와 손잡았다. 모두 실리적인 목적을 위해 명분을 저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 토론을 하다 재미있는 일을 하나 겪었다.

 

진흥왕이 나제 동맹을 깨뜨린 사건에 대한 토론과 김춘추의 선택에 관한 토론은 시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일주일 간격이다. 사건은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틈 때문에 일어났다.

 

첫째 시간에 진흥왕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대부분 진흥왕의 선택을 옳다고 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속은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백제가 오히려 무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오직 이익만 존재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학생도 있었다.

 

둘째 시간에 김춘추의 행동에 대해서 토론을 했다. 의견이 엇갈리긴 하지만 많은 수가 김춘추의 행동을 비판했다. 근래 들어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진 탓이다. 그 중 제법 똑똑한 한 학생의 주장이다.

 

"김춘추의 행동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고는 하나 삼국의 싸움에서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 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 순간 나는 그 아이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바로 저번 시간에 그 아이는 진흥왕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겨우 일주일 사이에 생각이 180도 바뀐 것이다. 갑자기 궁금했다. 왜 그렇게 달리 생각했을까?

 

"잠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저번 시간에 너는 진흥왕의 행동이 괜찮다고 했잖아? 국가의 이익이 동맹보다 우선하며, 국익을 위한 행동에서 비겁한 건 없다고 했지. 그런데 오늘은 김춘추의 행동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비겁한 행동이라고? 어떻게 된 거야?"

 

그 아이는 몹시 당황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이 그런 주장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교재를 뒤로 뒤져서 확인을 했다. 교재를 확인한 후에야 그 아이는 자신의 의견이 정반대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참 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아이는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일주일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바뀌었는지도 없고, 왜 바뀌었는지도 없다. 그건 핑계일 뿐임은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통합논술이란 무엇인가?

 

'통합논술'이란 이름 때문에 ‘통합’이란 말이 아주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흔히 통합논술하면 과학과 인문, 수학과 사회과학의 결합 정도로 생각한다. 교과서와 교과서를 연계한 논술 문제 정도로 인식한다. 이런 생각은 얼추 맞는 이야기지만 정확한 정의는 아니다.

 

통합형 논술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가치관을 총 동원하여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보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현실 문제를 끊임없이 사고하는 습관이 든 학생이 유리한 시험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런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현실은 현실이고 지식은 지식이다. 책은 책이고 현실은 현실이며,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과 현실은 전혀 별개다. 둘이 분리된 것이다. 그런데 통합적 사고를 하라고 하니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사회는 사회 과목이고, 수학은 수학 과목이었다. 그런데 그 둘을 결합해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니 갑자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늘 지식과 현실은 별 상관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연계해서 사고하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통합형 사고를 기르기 위해서는 습관적으로 과목과 과목, 현실과 지식, 책과 현실을 연계시켜 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난 번 읽었던 책과 지금 읽은 책, 책과 시사문제를 연계해서 고민해야 한다. 사회과학적 개념과 수학적 개념을 연계해서 사고해야 한다. 이것이 통합형 논술 능력을 기르는 비법이다.

 

통합적 사고와 가치관

 

앞에서 예로 든 아이가 일주일 사이에 의견이 180도 바뀐 건 명확한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탓이다. 확실한 자기 신념이나 가치관 없이 그때그때 드는 생각만으로 문제에 접근한 결과다.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면 사안이 어떻든 간에 일관된 의견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통합적 사고력은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실천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현실에서 고민해 봐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현실에서 실천해 봐야 한다. 그래야 확고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다. ‘지식은 지식이요, 삶은 삶이다’라는 태도로 접근하면 분명한 가치관이 형성될 수 없다. 항상 이론과 현실을 통합해서 사고해야만 분명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으며, 새로운 논술 시험에 대비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태그:#논술, #토론, #칭찬, #첨삭,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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