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은 각기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모름지기 사람도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지켜야 할 분수가 있다.2001년 2월 28일에 ㅇㅇ동사무소로 발령이 났으니 딱 6년 전 이맘 때 쯤 일어난 일이다.
새 부서로 간다니 낯선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이 근무하던 정든 직원들과의 이별,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으로 마음이 심란했다. 게다가 날씨마저 꽃샘추위로 스산하니 더더욱 심란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동사무소마다 주민자치센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 청사는 사무실이 아니라 온통 건축공사장 형국이니 처음가는 나로서는 참담하기 그지 없다.
2층 사무실 올라가는 계단에는 떨어지는 흙, 먼지를 받아내려고 비닐을 잔뜩 깔아 놓았고, 벽체는 여기저리 헐려 있으며 사방 먼지투성이니 이거야말로 엎친데 덮친격이다.
그때 나를 동사무소까지 데려다 준 우리 계장님(지금은 0과의 이과장님)과 최주임께서
안 그래도 떠나보내는게 안쓰러운데 동사무소 모양을 보니 더욱 심란하고 애처로워
눈물이 날 뻔 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날 무척 아끼셨나(?) 보다.
당시 풍납2동사무소 청사는 지은 지가 오래되어 화장실이라고는 3층에 덜렁 수세식 대변기 하나에 소변기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을 주민자치센터로 개조하면서 주민들을 위하여 2층에도 새로운 좌변기 2개와 소변기 2개를 놓아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럭저럭 동에 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청소하는 할머니가 아침 청소를 마치고 가신지 얼마 안 되어 화장실에 들어간 직원이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른다.
"우엑! 이게 뭐야?"
깜짝 놀라 화장실로 달려가 보니 세상에!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떡하니 양도 결코 적지 않은 똥 한 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이었다. 똥의 상태 등 모든 정황으로 보아 내지른 지 10분도 채 안되는 것 같았다.
청소 할머니가 좀 전에 가셨으니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아직 직원들이 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사무실에는 택이씨하고 양양하고 나, 아마 이렇게 셋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다들 더러운 것도 더러운 것이지만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하고 경악하여 놀라는 통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참!
저게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인가? 대변기 2개소가 모두 비어있었는데 왜 하필 그곳을 놔두고 엉덩이 들이대기도 옹색하기 짝이 없는 그런 곳에 쌌단 말인가? 더구나 화장실은 사무실을 통하여 들어가게 돼 있어서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언제 화장실에 들어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저리 태연하게 쌀 수 있었을까?
그러자 누군가 그런다.
"저건 사람똥이 아니고 개똥이 아닐까?"
하지만 만약 개라면 똥쌀 데가 얼마나 많은가? 전봇대, 화단, 주차장, 공터 등 개 체면에 뭘 못쌀 것이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어차피 개인데. 그런 개가 왜 하필 2층까지 올라와서, 화장실을 찾아서, 그것도 소변기에 똥을 싼단 말인가?
소변기든 대변기든 변기에 대고 똥 쌀 정도이면 그게 사람이지, 어디 개냐? 내가 판단하기에도 똥의 굵기나 색깔, 내용물, 냄새 등으로 판단하건대 사람 똥임이 틀림없다.
과연 사람똥이라면 왜 그랬을까? 왜 대변기가 비어 있는데 소변기에 쌌을까? 소변기는 오줌싸기 좋은 구조지, 똥싸기에는 절대 불리한 구조다.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 더구나 언제 누가 들어설지 모르는데 어떤 간 큰 사람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까고, 그 좁디좁은 소변기에 똥구멍을 들이대고 싼단 말인가?
혹시 다른 데 있는 똥을 퍼다 놓은 거 아닐까? 그것도 그렇지. 어떤 미친 놈이 아침부터 남의 사무실 소변기에 똥을 퍼다 놓는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똥 표면의 자연스러움과 피라미드 형태의 기하학 구조가 안정된 상태로 보아 절대 다른 데 있는 것을 옮겨 놓은 것은아니다.
오히려 소변기에 바로 싸는 것보다 다른 데서 퍼옮겨 놓기가 더 어려울것 같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똥구멍을 소변기에 바로 들이대고 싼 게 틀림없다.
다들 황당하고 어이없고 더럽고 그러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중에 시간은 가고 9시가 넘어서니 민원인들 들이닥칠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치워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다들 치우긴 치워야 하는데 선뜻 달려들어 치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서로 눈치만 실실 본다.
안되겠다 싶어 나 혼자 속으로 '5분만 더 기다려 보다가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나서서 치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고 있는데 역시 우리의 택이씨다. 아무 말없이 양동이에 물을 떠와서 빗자루로 쓱쓱 문질러 치워 버린다. 택이씨는 항상 남들이 꺼려하고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일을 언제나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여 처리해 버린다.
그렇다고 하여 전혀 생색도 내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그때 함께 근무했던 언주, 명하, 태운, 옹종, 귀봉, 익섭, 허연, 승정, 명배님을 대신하여 택이씨에게 감사드린다.
지금까지도 전혀 사람 짓인지, 개 짓인지도 모른 채 사건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는데
혹시 뛰어난 추리력으로 이에 대한 그럴듯한 의견이 있으신 분께서는 시원한 답변을 부탁드린다.
월초부터 장황하게 똥이야기로 시작하여 다소 미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먹은 만큼 싸대는 똥이야말로 가장 정직하다.
'오줌은 소변기에, 똥은 대변기에'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전자메일을 통하여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보냈던 내용이며, 다른 곳에 게재한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