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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두 달. 대학교 3학년의 자취 경력이다. 두 달여 전, 마냥 설렜다. 드디어 자취생이 되는구나. 빡빡한 통금도, 누군가와 함께 써야 하는 방도 없구나. 다달이 드는 월세의 부담은 부모님께 던져버린 채 철 없는 어린 아이마냥 신나했다.

 

당시 우리 엄마는 스물한 살 딸이 여간 못 미더우셨는지 생전 안 쓰시던 회사 월차까지 내시며 딸내미의 이사를 도왔다. 아니 엄마가 이사를 하고 내가 거든 게 맞는 표현이겠다. 대전으로 올라오기 전날도 그저 부푼 꿈에 젖은 나와는 달리 노심초사 쌀이며 김치며 갖가지 조미료를 챙기시던 그런 엄마셨다.

 

"간장이랑 국간장은 다른 거니까 꼭 표시해 놔." "고추가루 필요해?" "김치는 썰어 줄까?"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는 엄마의 말은 귀찮았고, 내 대답은 성의없었다. 결국엔 "엄마가 알아서 해"라는 말까지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집에서 무엇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대전의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두달이 흘렀고 가져온 쌀, 김치, 그리고 밑반찬들은 여전히 냉장고 속에서 먹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혼자 먹는 밥이라 많이 먹지 않을 뿐더러 밥하기 귀찮은 마음에 친구들과 어울려 사먹기 일쑤다. 가끔하는 전화에 반찬 다 먹을 때 됐는데 가지러 오라는 말에 머쓱할 뿐이었다.

 

간만에 집에서 점심을 해먹었다. 김치를 덜어놓는 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그날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었다. 냉장고에서 1/3쯤 먹은 김치통을 꺼냈고, 엄마가 고이 썰어준 김치를 덜어 담았다. 볶음밥에 썰어 넣을 김치를 생각없이 뒤적이다가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스물한 살이나 먹은 딸내미의 편식까지 신경써 가며 배추 이파리들만 가득 담긴 김치통을 보며. 그저 혼자 나가 살 생각에 설레하며 분주하게 옷가지나 챙길 때 부엌 한켠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담은 엄마 생각에. 그리고 5월 8일 하루, 어떻게 효녀인 척할까 머리 굴리던 5월 7일의 나를 보며. 3일 전에 보고 온 엄마가 보고 싶었다.

 

지나다니는 길가 꽃집의 카네이션들이 참 예뻤다. 냉큼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그 사진과 함께 하루 일찍 문자를 보냈다. 애교없는 딸내미 덕에 여러가지 서운하실 부모님이지지만 이번에도 사랑한다는 말도 없이 그렇게 문자를 보냈다.

 

나도 부모님께 감사한 날이지만 나를 부모로써 있게 해준 너희들에게도 참 고맙다. 마음만큼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혼자하는 생활이지만 밥 잘 챙겨먹어라.

 

아, 정말이지 오늘 같은 날은 엄마, 아빠랑 집에서 부친 부추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엄마#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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