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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춘천마임축제'가 스무 살이 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성숙해진 춘천마임축제는 2년 연속으로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되며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로 자라났다.

바로 그 춘천마임축제의 시작을 3일 앞둔 오늘(5월 20일), 축제 준비로 쉴 새 없이 바쁜 우리나라 1세대 마임니스트이자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인 유진규를 만났다.

연극에 빠져 학교 그만둬

춘천마임축제 유진규 예술감독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춘천마임축제 유진규 예술감독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남궁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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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 2년 연속 최우수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된 춘천마임축제가 올해로 20살이 됐는데요. 그에 대한 마임축제 예술 감독으로서의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요.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마임축제는 절벽 위의 소나무 같아요. 영양분 없이 바위틈에서 자랐지만 뿌리가 튼튼한 소나무처럼 멋지게 자라줬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기쁜 것이 사실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축제를 보는 안목 또한 인정할 만하다는 거죠."  

- 원래 전공이 수의학이었는데요. 어떻게 마임니스트가 되셨나요?
"대학교에서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전공인 수의학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고등학교 때 억눌려 지냈으니 자유롭고 싶기도 했고, 나를 표현한다는 데 굉장한 매력을 느꼈죠. 학교는 가는데 수의과로 가는 게 아니라 연극부실로만 가니까 휴학을 하게 됐고, 많은 고민 끝에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연극의 길로 들어섰죠. 처음엔 연극을 했는데 내가 들어간 극단이 상당히 전위적인 실험연극을 하는 곳이라 거기서 신체 표현을 배울 때 마임을 배웠어요. 그러다 마임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결국 마임니스트가 된 거죠."

"내 위로는 선배가 없어요"

- 마임 1세대로서 자부심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마임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있는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였죠. 우리나라에도 채플린 영화나 서커스에서 판토마임은 있었으나 공연예술로서의 마임은 68년도에 처음 소개되었거든요. 나는 72년도에 마임을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어요.

내 위로는 선배가 없어요. 예술은 늘 독창적이고 새로워야만 하는데 마임이라는 게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죠. 그게 외롭기도 했지만 굉장한 자부심이었어요. 새로운 장르를 하는 사람이라 매스컴의 주목도 많이 받았고요. 젊은 사람들에게도 꼭 새로운 걸 택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혼자서 하는 짓거리라고 예술 취급 못 받았던 마임에 대한 인식을 춘천마임축제가 바꾼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죠."

-춘천마임축제가 세계 3대 마임축제로 꼽히는데, 다른 마임축제와 비교해 춘천마임축제만의 특성이나 차별화 전략이 있나요?
"춘천국제마임축제는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열흘 동안 공연하는데 공연자가 칠백 명 정도 됩니다. 공연가짓수만도 백 개가 넘어요. 잘 알려진 런던 마임축제와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를 다녀와 봤는데 두 축제는 프로그램 수준은 분명 세계 정상급이죠. 하지만 프로그램의 다양성이나 규모는 춘천국제마임축제가 훨씬 낫죠. 다만 춘천국제마임축제는 질적인 수준을 더 높여야 하고, 정체성도 찾아야 합니다."

"춘천시가 행정력 발휘해주지 않아 아쉬워"

-스무 해간 춘천마임축제를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대개 축제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정치 도구처럼 되어있는데 춘천마임축제는 마임의 생존을 위해 자체적으로 생겨났어요. 우리가 처음 한국마임페스티벌로 시작했을 때, 돈은 없었지만 우리의 생존을 위해 축제를 열었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안들이면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비법을 터득했죠.

대부분 상당기간동안 무보수로 일했고, 깨비라는 이름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죠. 춘천마임축제에서 정말 어려웠던 문제 중 하나는 춘천시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춘천시가 춘천마임축제의 공동주최자가 아니고, 후원자로 들어와 있어요. 민간인이 주도하는 축제라는 거죠. 이런 의도는 좋아요. 하지만 춘천시의 행정력을 발휘해주지 않는 것은 아쉬워요. 시와 지역축제가 상생해야만 축제의 질도 더 높아질 수 있는데 말이죠. 춘천마임축제가 성장할수록 춘천의 위상도 높아지는 거잖아요."

-이번 춘천마임축제에서 추천할 만한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신다면?
"먼저 두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하나는 독일 공연팀의 <판도라 88>입니다. 페브릭 컴퍼니의 판도라 88은 세계에서 제일 큰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2003년도에 상을 네 개 받았어요. 다른 하나는 한국 공연팀 '사다리 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입니다. 이 공연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상을 네 개 받았어요. 이 두개의 공연은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하나 더 소개하자면 5월 23~24일에 어린이 회관에서 열리는 <달콤한 도살장>입니다. 다양한 공연과 클럽식 파티를 같이 하는 거니까 단순히 공연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에요."

춘천마임축제 사이트 초기 화면
 춘천마임축제 사이트 초기 화면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몸 안 아파"

-공연도 많고 축제도 얼마 안 남아서 굉장히 바쁜데 몸 관리는 따로 하시나요?
"몸 관리는 뭐 술 잘 마시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그럼 되지 뭐(웃음). 얘기하자면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몸은 안 아픈 것 같아요. 몸이 아프다, 피곤하다, 이상이 온다 하는 것은 몸에서 문제가 오는 게 아니라 정신에서, 마음에서 오는 거죠.

마음이 비는 틈에 허점이 드러나는 것이죠. 감기가 병이 아니잖아요? 기운의 움직임에서 부조화가 생기는 순간 감기가 찾아오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전쟁 중에는 아픈 사람이 없어요.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배도 안 아파요. 전쟁 끝나고 나면 환자들이 생기죠."

-성격이 굉장히 유쾌하신 것 같은데 마임을 하셔서 성격이 밝아지신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밝으셔서 마임을 잘 하시게 된 건지요.
"나는 A형이에요(웃음). 원래는 매우 소심했어요.  축제를 만들면서 성격이 바뀐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갖게 해야 하고 분위기도 좋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사람들은 굉장히 빨리 느껴요. 저 사람이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순식간에 알아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좋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상대도 좋은 마음을 갖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축제를 할 때 우리 식구들이 많잖아요? 자원봉사자까지 한 백오십 명 정도인데, 만약 내가 인상 쓰고 있으면 분위기가 썰렁해지잖아요. 그러니까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된 거죠. 내가 기분이 좋든 안 좋든 모든 일은 흘러가게 돼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모든 일이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진 않아요. 기분 나빠해야 할 이유는 없죠. 기분 나빠한다고 잘 될 리도 없고 기분 좋아한다고 그 일이 안 될 리도 없는데…."

"모든 사람 위한 축제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사람 위한 축제"
유진규 감독
 유진규 감독
ⓒ 남궁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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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마임축제가 20주년 됐는데, 아직도 마임을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마임의 매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춘천마임축제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 알려주세요.
"마임의 매력은 역시 독특하다는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모른다는 것은 단점일 수도 있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장점이에요. 아주 낯선 곳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임축제는 그런 경우죠.

다른 관광축제들은 이백만 이렇게 몰려와요. 혹자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백만은 넘게 오게 해야 하지 않느냐 하죠. 하지만 마임축제는 모든 사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예술과 축제, 난장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제에요. 마임축제를 오픈시켜놓는 순간 개성이 없어지겠죠.

명품점은 명품점이고 막걸리 집은 막걸리 집. 고유성을 갖고 해야지 어디처럼 많이 오게 만들어라 이건 안돼요. 마임축제는 그런 축제니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오시라는 거죠. 말없는 몸의 표현의 세계 그것과 연결되는 모든 세계들을 즐기는 마음을 갖고 오면 될 것 같아요."

- 20회 춘천마임축제의 성공기원을 위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제 날씨 봤죠? 천둥치고 바람 불고 흐렸다 맑았다 하잖아요. 앞을 예측할 순 없어요. 하지만 자연은 흘러가고 그 안에 사람들은 살아남고 있잖아요? 축제라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만든 것들이 계획대로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지 알 수 없지만 서로 어떤 기대감을 갖고 만나는 거죠.

우린 기대감을 갖고 축제를 만들고, 오는 사람도 기대감을 갖고 와서 그 기대감들이 서로 부딪혀서 스파크를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얘기죠. 우리가 쓰는 카피 중에 '미치지 않으면 축제가 아니다' 라는 카피가 있는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무박삼일간의 미친 금요일과 도깨비 난장에 와서 젊음을 한번 부딪혀 보자! 이러면 답이 되나요? (웃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 분이 정말 한국 마임계의 거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 감독은 친근하고 편안했다. 그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제안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터뷰를 한 춘천 명동의 브라운 5번가는 벌써부터 마임축제를 시작하기라도 한 듯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유진규 예술감독의 얼굴에도 상기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내어 우리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유진규 감독과 협조를 해 준 홍보팀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남궁범윤, 김용성, 허민지, 김소희, 홍정아 등 5명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태그:#춘천마임축제, #춘천마임, #유진규, #마임축제, #마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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