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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주부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네 살 된 아들과 함께 시장도 가고  외출도 합니다. 아들은 뒷좌석에 태우고 다닙니다. 짐받이에 유아용 의자를 매달아서 아들이 안전하게 앉아있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건강미 넘친다. 보기 좋다" 등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며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를 '참 잘했다' 고 생각합니다. 

 

요즘 기름 값이 계속 치솟아서 걱정들이 많습니다. 기름 값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역시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전거와 친해지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어마어마한 기름 값을 지불하며 외출해야 할 테니까요.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우선 건강에 좋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됩니다. 건강과 살림살이 외에 좋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추억'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전거와 관련된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자전거를 배우면서 만들어진 추억 한 꼭지를 소개합니다.

 

자전거는 추억 보따리

 

 자전거
자전거 ⓒ 최인자

 

우리 마을(전남 해남 잠두리)은 69가구였습니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가가호호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서로 알 정도로 가족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27년 전, 81년도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자전거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 10살이었습니다. 그때는 비포장도로였습니다.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길을 날마다 국민 슈즈(검정고무신)를 신고 학교까지(버스로 30분거리) 걸어 다녔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삼천리 자전거를 샀다고 자랑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자전거 하면 으레 삼천리였거든요.

 

그날 이후 밥상 앞에서 '나도 자전거가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중얼 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오빠가 중학교에 가면 그때 살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린마음에 "나도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가고 싶어"라며 떼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잔소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엄마를 설득하기로. 설득하는 방법은 엄마 일을 거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 했습니다. 소꼴도 베어다 주고 직접 밥을 해서 새참도 밭에 날랐습니다. 자전거를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5일에 한번씩 서는 장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장에 가셔서 해가 지는데도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소는 배가 고픈지 음메~음메~ 하며 계속 울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소여물을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집에는 친구가 놀러와 있었습니다. 여물을 만들려면 작두질을 해야 하는데 작두질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최소 두 명이 필요합니다.

 

부모님께서 항상 하시는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똑같이 흉내 냈습니다. 쉽게만 보였던 작두질이었는데 직접해보니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그 꼴이었습니다.

 

그만 작두날에 손이 베이고 말았습니다. 피는 뚝뚝 떨어지는데 어떻게 응급처치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수건으로 상처 난 손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급처치였습니다.

 

작두날에 베인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작두에 베인 상처
작두에 베인 상처 ⓒ 최인자

 

일곱 시가 넘어서야 장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피로 물들어 있는 수건을 보신 엄마는 깜짝 놀라며 "이것이 뭐시다냐" 하시며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그 사건 이후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삼천리 자전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 10살 소녀는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전거를 사자마자  탈 줄도 모르면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자랑했습니다. 친구들은 자전거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함께 즐거워해 주었습니다. 

 

큰 고목나무 아래서 쉬고 계시던 어르신들도  껄껄 웃으시며 "새 자전거 사서 좋것다 얼른 한번 타봐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그저 웃고만 서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잡아 줄탱께 얼른 타봐라" 하시는 겁니다.

 

이때 처음으로 자전거 안장에 올랐습니다. 내가 최고가 된 것 같았습니다. 타이타닉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뱃머리에 올라 두 팔을 벌리며 느끼던 기분이 아마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아저씨 도움으로 간신히 안장까지는 올라갔는데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중심잡기도 힘들었습니다.

 

"이 눔아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움직여야지"라고 하는 소리에 놀라 페달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구르고, 까지고. 무릎이랑 팔꿈치가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5일째가 돼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 법을 터득하고 난 이후에야 자전거 타기가 멋지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사실 막연한 동경이었습니다. 자전거와 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운 자전거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 끓어오를 때, 자전거와의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세 살 된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TV에서는 <토마토>라는 미니시리즈가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드라마 인기와 더불어 여주인공(김희선)이 타고 다니던 흰색 바구니가 달린 노란색 자전거도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똑같은 자전거를 발견했습니다. 보는 순간 너무 예뻐서 남편에게 갖은 애교를 부려 자전거를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자전거의 두 번째 인연입니다. 저는 지금도 이 자전거와 똑같은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추억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 손등에는 10살 때 자전거 때문에 생긴 흉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작두날에 베인 상처입니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아팠던 기억과 함께 자전거에 처음 올라탔던 감격적인 기억이 함께 떠오릅니다. '추억'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자전거를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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