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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아침은 여느 때보다 더 싱그럽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 촉촉히 젖은 땅과 물맺힌 잎들을 보면 싱그러움이 더할 나위 없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워낙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또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오천유적지의 전경이다.
▲ 오천유적지 오천유적지의 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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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유적지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한 마을로 지금으로부터 약 500~600년 전 광산김씨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일명 '군자마을' 또는 '군자리'라고도 불리는 이 유적지는 산 중턱에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있다.

옆에서 본 오천유적지의 모습이다.
▲ 오천유적지 옆에서 본 오천유적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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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자마을 또는 군자리라고 불릴까?

그 이유는 이곳에서 후조당 김부필, 읍청정 김부의, 산남 김부인, 양정당 김부신, 설월당 김부륜, 일휴당 금응협, 면진제 금응훈 등 당대의 도학 군자가 나란히 나왔는데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이 "오천 한 마을에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하여 선성지에 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퇴계 선생의 문도이고, 군자리란 말은 여기서 연유되었는데 정말 군자마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왼쪽이 숭원각이고 오른쪽이 의병대장 근시재 선생의 순국기념비이다.
▲ 숭원각과 순국기념비 왼쪽이 숭원각이고 오른쪽이 의병대장 근시재 선생의 순국기념비이다.
ⓒ 이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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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에 있는 숭원각을 볼 수 있다. 숭원각 옆에는 의병대장 근시재 선생의 순국기념비도 자리하고 있다. 숭원각은 군자마을의 모든 자료와 보물들을 전시,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침 일찍 간 탓일까. 개관을 하지 않아 내부 모습은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숭원각에는 1350년대 고려말기의 호적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5백년 동안의 호적, 교지, 노비문서, 분재기 등 고문서 1000여점과 각종 문집 2000여권 등 광산 김씨 문중의 중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고 이 가운데 고문서 7종 429점은 보물 제1018호로, 구서 13종 61점은 보물 제 1019호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중요 민속자료 제 227호로 예안파 대종택에 딸린 별청이다.
▲ 후조당 중요 민속자료 제 227호로 예안파 대종택에 딸린 별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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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원각 뒤에는 후조당이 위치하고 있다. 후조당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이다. 조선 선조 때에 후조당 김부필이 처음 건립하였다고 하며, 1972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겼다.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왼쪽으로부터 6칸의 대청을 두었다. 6칸 대청 동쪽에는 2칸의 온돌방이 있고 튀어나온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 지방에서 흔하지 않은 형식이다. 가구의 구성수법이 고려말 조선초 양식으로 매우 고식이며 화려하다.

1541년 탁청정 김유가 지었으며 몸채에 해당한다.
▲ 탁청정 종가 1541년 탁청정 김유가 지었으며 몸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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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청정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 탁청정 탁청정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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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유적지에는 후조당 외에 탁청정 종가도 있다. 이 종가는 탁청정 김유가 조선 중종 36년(1541)에 세운 것으로 조선 후기에 화재를 당하여 중건하였다.

이 집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口'자형 집으로 총 22칸이다. 주택과 정자인 탁청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방의 큰 규모 주택들은 보통 5칸을 기준으로 '口'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탁청정 종가는 칸수 구성이 특별하다.

특히 탁청정 종가에 딸린 정자는 개인 정자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자는 매우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당당하면서도 입면구성의 비례가 잘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오천유적지에 있는 집들 가운데 두채는 중요민속자료로, 세 채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후조당, 대종택 사랑채, 읍청정, 설월당, 탁청정, 낙운정, 침락정 등 일곱채의 사랑채와 정자가 있다. 또한 여러 사랑채 이외에 재사와 사당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 요리책인 "수운잡방"과 임진왜란 때의 "행군수지"와 "향병일기" 등 많은 양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오천유적지는 수많은 고택들이 한곳에 모여 있어 그 모양새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제각각의 멋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 같은 경우만 해도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매력을 갖고 있으니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좋은 곳이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정도의 대규모 고택이 모여있는 곳이 흔치 않으니 먼길이라도 한 번 발걸음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살아있는 전통과 군자의 가풍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무작정 떠난 6월의 어느 아침여행. 왕복버스비 단돈 5천원으로 떠나 몇 배의 싱그러움과 행복을 갖고 돌아올 수 있었다. 오천원의 행복을 가져다준 오천유적지. 혼자 조용히 아침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싱그러움 가득한 오천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덧붙이는 글 | * 프로그램
운영시간 - 연중계속
장소 - 군자마을 내 후조당, 탁청정, 숭원각 등
내용 - 음식체험, 서당체험, 의생활체험, 민속놀이체험, 어린이선비단, 전통혼례체험
일정 - 당일코스, 2박 3일 코스, 방학 코스 등 다양한 학습과 체험 탐방코스 개발
*숙박안내
총 6채(한채당 방2개와 마루). 이상도 가능
- 10명~20명 정도 : 한채당 150,000원
- 원룸이나 일반실 형태
- 최대 약 100명 정도 수용가능
* 교통안내
[서울]
중앙고속도로 이용 → 서안동 IC, 안동진입 후 35번 국도이용 → 안동시내에서 와룡방면으로 진입
[부산/대구방면]
중앙고속도로 이용 → 남안동 IC, 안동진입 후 35번 국도 이용 → 안동시내에서 와룡방면으로 진입
[현지교통]
안동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시내버스타고 오천군자마을 하차
*기타
- 20명에서 30명 정도의 단체분들에 한해 언제든지 체험프로그램 운영 가능
- 숙박시 원하는 음식점 연결 가능



태그:#오천유적지, #군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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