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셨나요? '더불어 입학식' C조의 인솔을 맡았던 최재원입니다.

 

입학식 첫날(19일) 쏟아지는 비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오늘(24일)도 정말 비가 많이 오더군요. 행여 많은 비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학생은 없는지 걱정입니다.

 

3일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겐 그 의미가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한참 뛰어노는 아이들이라 가끔 머리가 멍할 정도로 정신없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난장판의 순간도 그리워지네요.

 

호칭뿐이었지만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이 많이 어색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용돈이나 마련하고자 참여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이라곤 해본 적도 없었고, 누굴 가르칠만한 입장도 아닌데….

 

'선생님'으로 참여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한 남자어린이가 여자어린이와 서로 때리면서 티격대격하기에 한마디 해준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절대 때리면 안돼. 너 그럼 나중에 여자친구 안 생긴다. 여자애들은 자기를 보호해주는 남자를 좋아한다구."

 

농담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요즘은 여자친구 사귀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터라(선물도 사주고, 이벤트도 마련하고 피곤합니다). '어린 니가 뭘 알겠니?'하는 마음에서 놀림반 진담반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들 방을 기웃거리다가 재밌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에게 충고를 들은 남자 아이가 다른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게 장난을 거는 것을 몸으로 막아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제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에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한 친구는 수줍음이 많아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활발하게 뛰어놀던 친구 한 명에게 함께 어울리면서 잘 챙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것을 여러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배려심과 책임감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들이 금세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고, 서로 배려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손 잡기' 입니다. 첫날 화장실에 가느라 행렬에서 떨어진 한 친구와 함께 뒤편에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제 손을 잡고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선생님인지 그 친구가 선생님인지 헷갈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완전히 리드당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좋아져서 먼저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먼저 안겨오는 친구들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습니다. 키가 수뼘이 더 큰 어른임에도 아이들에게서 안도감과 따뜻함을 느꼈나봅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껴안아 주는 '프리허그' 운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예전에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운동의 의미를 깨달은 것도 같네요.

 

친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줄곳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학급마다 5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대학에 와서도 같은 과에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홀로 입학생 친구들보다 친구 사귀기가 더욱 수월한 환경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학에서는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더군요. 매일 수업 때마다 마주치는 친구들인데도 학기가 끝날 때까지도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에게 살갑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보기 힘듭니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저를 비교해보는 버릇입니다. 학교는 어디를 다니고 있고, 사는 곳은 어디인지 물어보고, 옷차림새를 보면서 집안 살림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친구 사귀기에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휴대전화에 저장되는 번호는 늘어만 가는데 맘을 터놓고 전화할 친구들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비좁다는 취업 문을 서로 비집고 들어가려다 보니 모두가 친구이면서 동시에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기 보다는 경계를 하게되고 나와 비교를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친구들의 '정'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이번 '더불어 입학식'은 제게 정을 보충하는 영양제이고 마음을 상쾌하게 만드는 청량제였습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놓치고 지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구요.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제가 더 붙잡고 싶어하는 것 같더군요. 나홀로 입학생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고, 도우미로 참여했는데 제가 오히려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번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우리 친구들이 서로 어울리고 배려하면서 커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나중에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저처럼 이리저리 재는 '서울 깍쟁이'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마련되어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내내 비가 많이 온다는데 피해를 입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더불어 입학식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더불어입학식#오마이스쿨#나홀로입학생#한혜진#오기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