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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 단어에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역사가 있는 나라치고 자랑스러운 건국 이야기가 없는 나라가 없다. 대개 먼 옛날 신화의 영역이다.

 

건국이란 단어에 호감을 갖는 것은 미국을 생각해서인 듯하다. 미국의 건국은 신화가 아니라 멀지 않은 역사의 영역이었다. 유럽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유럽과 같은 구체제의 낡은 구속은 없었다. 구체제의 간섭이 외부적으로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 간섭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나라를 건설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서의 일부이다. 이 부분은 호치민이 베트남의 독립선언에 인용하기도 했다. 미국 건국은 선조들의 국가였던 유럽 국가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유와 평등, 행복추구, 민주와 독립은 비단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권리이고 가치이다. 근대의 극복을 말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런 권리와 가치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한다.  

 

미국 건국과 다른 건국들 

 

다른 건국도 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여 여러 신생국이 탄생했다. 식민지가 될 때 단일한 통치권에 의한 국가조차 이루지 못했던 지역은 비로소 국가를 건설하였지만 부족 간의 갈등과 분쟁을 겪기도 했다. 봉건유제와 식민지유제가 얽혀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근대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국가를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했나? 다른 신생국처럼 1945년 느닷없이 강대국의 힘에 의해 식민지배가 종식되었다. 그러나 강대국에 의한 분할이나 신탁통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근대 내셔널리즘과는 다를지라도 전근대시기부터 민족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되어 낡았을지라도 통일적 통치체제로 운영되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부흥운동은 없었다. 미군정 당국이 이를 의아해 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1919년 3월 1일)'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 사람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뒤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정부형태를 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당시의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우리는 자주적인 조선 사람의 민주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군국주의의 오랜 폭압에도 굴하지 않은 여러 갈래의 독립투쟁도 이를 기초로 했다.

 

그래서 '건국 60년' 주장자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1919년이 대한민국 건국의 원년이고 1948년은 정부수립일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의 정부 수립 지도자들도 '대한민국 30년'이라 했는데, 왜 멋대로 30년의 역사를 버리느냐고 비판한다.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파리강화회의의 독립 인정과 1789년 미 연방정부 수립의 과정을 거쳐 건국한 미국이,1776년을 건국 원년으로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성할 역사는 필요 없고, 찬미할 신화만 필요?

 

대한민국으로 한정한다면 1919년을 원년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런데 꼭 근대 내셔널리즘에 의한 나라만 나라인가? 미국이야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건국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정부의 형태가 봉건왕조였을지언정 이미 나라가 있었던 상태가 아니었던가?

 

아무리 미국이 부럽기로서니, 아무리 우리 역사가 부끄럽기로서니, 엄연히 존재한 나라와 오래된 역사를 무시하고 근대에 와서야 나라를 세웠다니? 반성할 역사는 필요 없고, 찬미할 신화만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신화인가? 건국신화는 홍익인간의 단군신화로 충분하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말은 헛말이고 신생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무지와 편견, 내부적 권위의 부재와 외래적 권위에의 추종, 쉽게 베껴오고 금방 바뀌는 제도들, 역동성은 자랑할 만하지만 조급함과 미숙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들. 좋든 나쁘든 이런 현상은 '신생국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건국'이라는 이름이 부러워, 건국시기도 헷갈려 논쟁이 벌어지는 '건국 소동'도 신생국 증후군이다.  

 

최근, 민족의 압제에서 벗어난 날을, 부일 매국노를 빼고는 꿈에도 그렸던 그 날을 모두 함께 기념하지 못하는 분열상을 빚었다. 같은 역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도 이루지 못하다니. 그래, 축적된 역사를 거울삼아 배우려 하지 않고 헌신짝 버리듯 하니 신생국과 다를 바 뭐 있는가? 20년 전, 30년 전의 과거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데, '건국 60년'도 과분하다.


태그:#건국, #신생국증후군, #건국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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