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원·김세형 기자] 과거 '양성평등'이란 단어를 꺼내면 시기상조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요즘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면 '이미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상위 시대인데 무엇을 더 이야기 하는가'란 반응이 절대적이다.
물론 가시적인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유사 이래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고 지난 대선 때는 대통령 후보로 여성 정치인들이 거론됐다. 경영과 마케팅 영역에서도 '여성마케팅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막강한 힘을 지닌 소비자 권력 계급로 부상했다.
그러나 왜 소위 '잘나가는 세력'으로 분류되는 2030 여성들의 75.5%가 여성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여성신문> 1000호 설문조사 결과). 왜 알파걸로 분류되는 여대생들은 여성학 강의를 들으며, 페미니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와 같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강연장은 빈자리 없이 메워지는 것일까. 왜 오늘도 여성들은 여성커뮤니티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토로하는 것일까.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오해는 '여성주의(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 오해를 만든 세력에는 분명 여성들도 가담되어 있다.
페미니스트 소설가 이경자는 여성을 '가부장화된 여성'과 '가부장화되지 않은 여성'으로 분류하고, 이중 가부장화된 여성들이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한다. 과거와 현재 모두 두 영역의 여성들은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그는 가부장화된 여성들의 변화에 주목한다.
과거 가부장화된 여성들이 생존의 전략으로 택한 방법은 '남자에게 사랑받기'였다. 그래서 온갖 자신의 나약함을 다 들어내 남성들로 하여금 보호와 사랑을 받길 바라며 '집안에서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녀들은 교묘하게 변했다. '사회에서의 지위 획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100% 활용해 '가부장 중심의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한 전략을 펼친다.
그 결과로 성공을 위해 '여성다운 태도'를 동원해 경제적으로 우월한 남성을 포섭하라고 장려하는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렸고, 이 같은 논리는 '여성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여성주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여성성을 부정하는 '여성운동가'라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페미니즘으로 통용되는 ‘여성주의’는 저항이론이나 운동이 아니라 타협·생존·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리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늘 무거운 갑옷을 입어야 했던 남성들은 그 갑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유로워지고, 갑옷이 없어 늘 상처를 받아야 했던 여성들에게는 최소한의 옷이 주어지는 일, 그것이 바로 여성주의인 것이다. 남녀 모두가 갖게 된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는 양성평등 시대가 도래했다는 시대적 판단과 달리 여전히 ‘여성’과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시행 4주년을 맞아 성매매특별법이 실효성 논란에 시달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살인죄와 강도죄 등을 처벌하는 ‘형법’이 존재해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형법의 실효성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질이 악화되는 것에 따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 등 여성 관련 법안은 늘 ‘실효성’ 여부를 공격받는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여성학에 대한 공격을 예로 들어 “법학이나 물리학의 어려움은 학문을 비판하는 이유가 되지 않지만 여성학이 어려운 것은 늘 문제가 된다”며 “여성학이 어려운 것은 여성학이 여성현실과 괴리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여성주의가 익숙하지 않은 세계관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일은 이러한 오해를 푸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이란 점이다. 가부장화된 여성들은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무기 삼는 일을 거둬야 할 것이며, 가부장화되지 않은 여성들은 그들이 주창하는 것이 여성우월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양성평등’임을 증명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여성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양성평등으로 가는 길은 시작된다.
‘양성평등=여성평등’ 오해 불러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양성평등 실현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 사회 고위층(오피니언 리더)의 양성평등에 대한 이중성이 심화된 지 오래다.
겉으로는 양성평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차별성을 내세워 ‘잇속’을 채우는 데 급급해 보인다. 게다가 비겁하기까지 하다.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오리발’부터 내민다. 급하면 양성평등,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였다고 발뺌하기 일쑤다. 일반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까지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양성평등의 현실이다.
# 장면1평소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자처했던 김상미(여·29·공무원시험 준비생)씨. 모처럼 대학 동창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동창생 박상욱(남·29·공무원시험 준비생)씨와 큰 싸움을 벌였다. 즐겁게 시작된 동창모임 분위기가 자연스레 취업문제로 이어진 것이 화근이 됐다.공무원 시험을 코앞에 둔 두 동창이 군가산점제도 도입을 놓고 벌인 설전이 확대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김씨가 군가산점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의견을 밝히면서부터. 박씨는 김씨가 군가산점제도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을 때마다 계속 딴죽을 걸었다. 힘들게 군대를 갔다 왔는데 당연한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본인은 양성평등주의자인 만큼 국가시험을 볼 때 가산점을 주는 것보다 합격 후 월급을 올려주거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박씨에게 양성평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 잠자코 있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 장면2양성평등을 내세우며 정치에 뜻을 둔 이상미(가명·여·35)씨. 그는 매번 정치계에 입문할 기회가 생기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진정한 양성평등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 고민에 또 고민을 한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여성단체들과 접촉 횟수를 늘리고, 여성 차별에 따른 해결책 모색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활한다.양성평등을 위해 정치 입문을 결심하게 됐고, 생각대로만 된다면 군가산점 제도 도입 논의 등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맞서 싸워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여성들의 표심이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외쳤다. 국내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시민 중 양성평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양성평등은 여성평등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왕성옥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양성평등은 사회생활에서 비롯된 오해들로 인해 여성 평등과 동일시되고 있다. 왕 선임연구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성평등과 여성평등을 동일하게 보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라고 말했다. 여성평등이 실천에 가까웠다면 양성평등은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성적 소수자 등의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양성평등이란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 나가기 위한 것이지 여성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실제 양성평등주의자들이 군가산점제도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장면1) 흔히들 김씨를 양성평등주의자로 이해하기 쉽지만 진정한 양성평등주의자는 박씨인 것. 또 ‘장면2’의 이씨는 양성평등주의자가 아닌 여성평등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왕 선임연구원은 “양성평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군가산점제에 대해 동의를 하고 있다”며 “‘군가산점제도’ 대신 ‘군가산제도’를 도입해 남성들에게 합격 이후 월급을 더 주거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가산점제도의 추진에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오해들로 인해 논란의 핵심에는 정부가 아닌 남성과 여성의 대립적 구도가 자리 잡고 있으며, 다른 대안을 찾지 않고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정부가 개입을 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양성평등에 대한 오해를 인식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힘든 사회 고위층들. 또 그들이 사용하는 잘못된 양성평등을 진실인 양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민들. 이것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양성평등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