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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4대강 하천정비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참가자들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 1단계 사업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4대강 하천정비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참가자들은 "4대강 사업은 대운하 1단계 사업이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운하건설 시나리오

지난 7월에 촛불 민심에 밀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운하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약속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오늘 4대강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사실상의 운하건설사업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든다.

어디까지나 혼자 떠올려본 시나리오지만 한번 읊어보자.
아마도 MB정부는 한번도 운하건설을 접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불철주야 어떻게하면 운하건설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꺼내든 카드가 "수도권 규제완화"와 "팔당상수원 규제완화"이다.

그러면 지방에서 크게 반발할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일. 당연히 지방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그때를 이용해서 지방살리기 대책을 내놓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지방육성방안에 사실상의 운하건설사업을 포함시켜 놓으면 지방의 큰 여론을 등에 업고 쉽게 운하건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그래서 오늘 지방육성방안에 운하건설사업을 포함시켜 발표한게 아닌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이자 망국병인 수도권과 지방간의 갈등을 운하추진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몹쓸 행위다. 그리고 정부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운하 추진을 지지하는 환경단체인 부국환경포럼이 10일 오후 서울 공덕동 서울가든호텔에서 부국환경포럼 발기대회를 가졌다. 이 단체 대표를 맡은 박승환 전 의원(가운데), 대운하 전도사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오른쪽 네번째), 서경석 목사(왼쪽 네번째)와 참가자들이 기념케익을 자르고 있다.
대운하 추진을 지지하는 환경단체인 부국환경포럼이 10일 오후 서울 공덕동 서울가든호텔에서 부국환경포럼 발기대회를 가졌다. 이 단체 대표를 맡은 박승환 전 의원(가운데), 대운하 전도사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오른쪽 네번째), 서경석 목사(왼쪽 네번째)와 참가자들이 기념케익을 자르고 있다. ⓒ 유성호

왜 하천정비사업은 사실상 운하건설사업인가?

첫째, 하천정비사업은 수계치수사업, 국가하천정비사업, 하천재해예방사업으로 구분되고, 대부분이 제방을 축조하거나 취약한 제방을 보강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하천정비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죽은 하천을 살린다"고 말하고 있는데, 죽은 하천을 살리는 사업이라면 하천수질개선, 하천생태계 복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하천 살리기 사업은 국토해양부의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강바닥을 굴착하고 제방을 높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하천에 오염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자연형 하천복원을 통해 하천생태계를 살리고, 나아가 하천주변의 유역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잘 관리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늘 발표한 하천정비사업은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하천을 살리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하천을 죽이는 운하건설을 염두에 둔 사업이다.

둘째, 국토해양부 홈페이지(이전, 건교부 홈페이지)를 보면 하천정비 진행정도(하천개수율)이 나와 있는데, 06년 현재 전국하천 개수율은 82%에 달하고, 한반도대운하 예정구간이 포함된 국가하천 개수율은 97.3%가 완료되었고, 그 동안 쏟아 부은 국고가 9조원이 넘는다. 다른 말로 하면, 운하예정구간인 4대강 하천정비사업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 또 하천정비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기존의 하천정비사업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얘기이고, 그것이 바로 운하건설이라는 것이다.

셋째, 새로운 하천사업을 위해서는 새로운 '필요'를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예컨대, 기존의 홍수방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획기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든지 하는 '필요' 말이다. 그런데, 수많은 시간 동안 논의 끝에 최근까지 발전된 결론은 그동안 하천(정확히 얘기하자면 제방중심)중심의 홍수방재는 한계가 분명히 있고, 결국 위험율을 더 높여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즈의 사태처럼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기존의 하천중심의 홍수방재에서 유역중심의 홍수방재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하천법상의 법정계획인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분명히 드러나 있고, 그런 방향성을 담은 구호로는 "홍수와 더불어 사는 사회"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천사업, 더군다나 홍수방재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역전체를 잘 관리하는 방안(예전에 하천구역이었으나 지금은 논으로 쓰고 있는 땅, 택지로 개발된 땅 등을 본래의 하천으로 되돌려 주는)으로서 홍수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하다. 그런데 오늘 발표에서는 그런 내용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고, 하도중심의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울 것 없는 운하사업이다.

넷째, 지난 2년 동안 한반도대운하 관련 논란의 핵심은 경제성이 없다는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상 운하사업인데 국고를 들여 하천바닥 굴착을 해놓으면, 막상 운하사업을 추진할 때는 그 비용을 들여 이미 공사를 다 해놓았기 때문에 비용항목(sunken cost, 매몰비용이라 부른다)에서 빠지게 된다.

따라서 사실상의 운하사업을 하천정비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국고를 들여 공사를 해놓고 나서 경제성 평가를 해보면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성(비용편익분석에서 편익/비용 중 분모인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은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 되고 큰 논란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 오늘 발표된 하천정비사업은 이것을 노린 사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6월 22일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6월 22일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경인운하사업 추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원죄

민주당은 최근까지 이런저런 선거가 있을 때마다 경인운하사업 추진을 지역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경인운하사업은 되고, 경부운하사업은 안된다는 논리는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경인운하사업은 사실상 경부운하사업에 포함된 사업이고, 추진측에서도 그렇게 활용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또, 영산강 유역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영산강 정비사업을 해달라고 이리저리 뛰고 있다. 어쨌거나 막대한 예산의 지역개발사업을 따오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왜 망국적인 투기붐과 끊이질 않고, 토목 건축의존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OECD국가중 최고수준) 기형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으로 국가를 10년전, 20년전으로 후퇴시키는 현정부에 대항하는 수권정당이 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경인운하, 영산강 정비사업은 민주당에게 '선악과'와도 같은 원죄를 씌우는 사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당론을 시급히 결정하는 진정성을 국민들 앞에 보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토마스 쿤에 의해 제시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된다. 단순화 시키면 시대를 대표하는 뼈대이자 표준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미래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성장래더다임으로 전환을 역설했다.

그런데, 최소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 패러다임의 어떤 문제를 극복할 것인가가 분명해야 하고, 전환을 위한 전략이 나와야 한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우리는 에너지와 자원을 과도하게 투입해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요소투입위주의 경제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토목, 건축에 과도하게 의존한 전근대적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구동성으로 토건국가, 굴뚝경제,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극복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정책은 "저탄소 녹색성장"은 빛깔 좋은 레토릭에 불과하고, 실은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할 것 없이 전부 개발하자고 하고, 그린벨트, 팔당상수원주변 자연환경보전권역 등 환경을 지켜야 할 곳도 대규모로 개발하자 덤비는 형국을 만들고 있다. "뉴딜"이 아니라 과거 회귀적인 "올드딜"이다. 수도권 1%의 기득권층을 배불리고, 대기업을 배불리는 방향으로 국가체제를 바꿔놓고 있다.

 한반도대운하 조감도
한반도대운하 조감도 ⓒ 자료사진

폴 크루그만의 말대로 미국은 세계대공황을 계기로 그전까지 빈익빈부익부의 심화, 사회 안정망이 취약하던 기나긴 도금시대를 극복하고 사회적 서비스, 사회적 자본,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는 "뉴딜"정책을 통해 대압축시대(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편차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시대)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이고, 국민들이 반겨맞을 방책이다. 그것은 분명 개념없는 운하건설, 도로건설, 항만건설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진정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쪽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고 그것이 국가의 미래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시장(기업)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으로 생각을 바꾸고, 생태적 상상력을 풍부화시켜야 한다. 그런 후에 나오는 내용이어야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환경을 살리는 일자리를 100만개 이상 창출하겠다는 선언을 먼저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의 전반을 친환경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필요를 제시해서 설득하고, 기업들의 거부감을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조정해야 한다.

문용린 교수는 최근에 "정직", "약속", "배려" 등의 덕목을 자주 말씀하신다고 들었다. 정치인, 기업인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회 최고지도층은 국민들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우리가 낸 세금이 우리의 동의 없이 운하건설사업으로 쓰이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건 굴삭기가 제방으로 가는지 하천 둔치로 가는지를 보면 알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오성규 기자는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입니다.



#하천정비#한반도대운하#녹색성장#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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