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텔레비전> 1월 27일 5시뉴스 첫 기사는 미에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절도사건에 관한 뉴스였습니다.
기사원문(출처:
http://headlines.yahoo.co.jp/hl?a=20090127-00000124-san-soci )
도난 혐의 학생에게 지문(날인강요) 미에현의 교사 '경찰에...'1월 27일 15시 51분 <산케이신문>
미에현 욧카이치시의 사립 카세이 고등학교에서, 1학년 남학생에게 '휴대전화의 메모리 카드를 도둑맞았다'라는 상담을 받은 담임교사(57, 남)가, 같은반 학생 23명을 의심하고, 학생들에게 지문날인을 받아 '(지문을) 경찰에 보내겠다'라고 했던 것이 27일 밝혀졌다.
니시다 히데키 교장은 "인권, 인도상 있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행위였다"라며 학생들에게 사죄, 담임 교사의 처분을 검토하고 있다. 교장에 의하면, 21일 점심시간, 학생이 학교의 유도장에서 있었던 체육 수업 후 휴대전화의 메모리 카드가 없어졌다고 신고했다. 수업 중에는 모든 학생의 휴대전화 등 귀중품을 봉투에 정리해 유도장에 두고 있었다. 교사는 같은 날의 학급활동 시간에, 학생들에게 나서도록(시인하도록) 호소했지만 아무도 자청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도난과 관계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일부 학생을 제외한 23명에게 엄지손가락의 지문날인을 받았다.교사는 실제로는 도난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지문날인을 받은 종이도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 교사는 "지문날인을 받고, 경찰에 보낸다고 하면, 놀라서 자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사번역: 김유명)그렇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건 누가 훔쳤느냐가 아닌 지문날인의 부당성입니다.
한국선 너무 당연한 열 손가락 지문 날인세계에서 유일하게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만 17세 모든 성인들이 하는 나라, 그리고 지문이 새겨져 있는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소지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그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또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저도 2008년 9월까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설 삼국지엔 "흐름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문날인이 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24년 6개월 동안 모르고 살았습니다.
18살 추운 겨울 언 손으로 동사무소에 들어가, 시퍼런 인주에 열 손가락을 누른 뒤 동사무소 직원의 손에 잡혀 지문을 찍히고 있을 때도 전 그것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24살 그러니까 2008년 9월에 여행이 아닌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이란 나라에 왔습니다. 입국심사대에선 저의 지문과 얼굴사진을 찍더군요!! 그러면서도 이게 뭔가 잘못된 건가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테러 때문에 출입국심사가 강화되었다는 광고지를 영사관에서 봤기 때문인지 그걸 그냥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첨단시스템을 직접 체험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약간 긴장도 했더랬지요. 여담이지만 이 최첨단 출입국시스템은 한국인 여성에 의해 얼마 전에 뚫렸다는군요.)
그런데 저 방송을 보고 불현듯 1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5살 때였는지 16살 때였는지, 여하튼 제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학교 교무실에서 어떤 여선생님이 지갑을 도둑맞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무실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물론 설치되어 있는 학교도 있겠지만 제가 다닌 학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그 여선생님의 지갑엔 100만원 이상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는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학교에 왔느니 어쩌니 하는 소문도 있었고 '범인은 양호실에 누워 있던 누구다, 혹은 1학년 아무개양이다'라는 근거없는 소문들이 퍼졌고 학교는 도둑 색출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각반에 A4용지 몇 장과 도장 찍을 때 쓰는 시퍼런 잉크형 인주(뭔지 다들 알리라 믿습니다)를 들고 오시더니, 1번부터 사십 몇 번까지 우리 반 모든 학생들의 지문을 찍어 "경찰에 조사를 맡기겠다"고 말씀하시곤 우리의 지문 수십 개가 찍힌 종이를 들고 교무실로 사라지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B여자중학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교생의 지문날인을 받았습니다.
며칠 후 '범인은 1학년의 B양이었다, 선생님은 학생을 용서했다', 뭐 이런 소문만이 우리가 지문을 찍은 교실 위에 둥둥 떠다녔지요.
똑같은 상황, 한국과 일본의 정반대 대처똑같습니다. 27일 일본 미에현의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10년 전 제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은 너무도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차이인지, 1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인지 학교의 대처방법엔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 제가 지문 날인을 하면서도 "뭐야 이런 걸 귀찮게 왜하는 거야"라는 생각뿐이었지, 내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이라는 데는 관심도 자각도 없었습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엄마 오늘 도둑 잡으려고 학교에서 전교생 지문 찍었어~"라는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화를 내는 부모님의 기억도 전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내 자식이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1968년 도입된 열 손가락 지문 날인, 애당초 이 법의 목적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국민 감시와 통제를 원활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주민등록제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더 재미있지만 불쾌한 사실은 이 제도가 20세기 초 일본이 '괴뢰' 만주국의 지배를 원활히 하려고 도입한 제도이며 만주군관 출신인 박정희가 배워온 식민통치기술을 우리에게 사용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정부와 경찰에선 지문날인 제도의 목적이 신분확인과 범죄자 색출에 있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그게 왜 인권침해인지, 왜 부당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휴대폰 메모리카드를 훔쳐간 학생을 잡아내기 위해 지문날인을 받아 가져간 교사를 학생 앞에서 사과시키고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란 분도 함께 사과하는 그 뉴스를 보면서 '어라? 저게 맞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같은 큰 나라에선 지문날인도 하지 않는데 범죄자를 어떻게 잡아내는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나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없는데 왜 내 지문을 저장해 두려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주로 사회 부조리 고발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의 9.11 관련 영화를 정리한 책을 경성대 앞 어느 서점에서 펴들었을 때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지금 당신의 지문이 채취되어 위성을 통해 미국 정부기관이 관리합니다. 앞으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할 것입니다.'(확실하진 않습니다)라는 머릿말 내용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입니다.
이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도,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지문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한다면 전혀 이득될 것이 없는 일입니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문으로 관리를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권침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강제적으로 내 신체 어느 부분의 고유성을 나라에서 관리한다는 것 자체에 소름이 돋습니다. 저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주민등록증을 전자화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의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번호 유출이 쉽고(앞에 너무도 크게 써있으니까요!) 위·변조 가능성도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조그만 IC칩에 우리의 정보를 넣는다고 합니다.
근데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배경으로 한 시절만 해도 한국의 주민등록증은 종이였습니다. 거기에 코팅을 한, 말 그대로 옛날 태권도 품증 같은(지금은 카드로 바뀌었더군요) 카드라고 하기에도 뭣한 말 그대로 '증'이었습니다. 그 주민등록증의 위변조 가능성이 높아 수년전 대대적인 예산을 들여 플라스틱 카드화했습니다. 그걸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바꾼다니요!
사실 그 주민등록번호 유출도 그렇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사이트에 뿌려진 우리 주민등록번호는 데이터베이스(DB)화되어 CD 몇 장당 얼마에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미 유출될 만큼 유출되었고 저 역시 아무것도 한적이 없는데 옥션에선 계좌번호, 주민등록번호, 주소지까지 해킹되었습니다. 이미 제 주민등록번호는 나만 알고 있는 주민등록 번호가 아닙니다. 제가 가입한 수백개의 사이트에서 이미 제 주민등록번호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범죄자의 인권 침해 문제는 끔찍히도 생각하는 대한민국입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아키하바라에서 있었던 칼부림 사건 범인의 얼굴도, 자기 아들을 목졸라 죽인 엄마의 얼굴도 그대로 뉴스에 나오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물론 선진국이 무조건 좋다, 선진국만을 따라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여성을 죽인 유영철, 초등학생들을 끔찍하게 살해한 정모씨, 군포에서 여대생을 아무 죄책감 없이 죽인 끔찍한 범인이 대한민국에서 끔찍히도 인권보호를 받고 있는 점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영철과 정모씨의 경우는 물론 이번에도 범인을 잡은 것은 CCTV, 경찰의 수사, 시민의 제보였지 지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범죄자는 지문을 남기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자기 지문을 덕지덕지 남기는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만에 하나를 위해 범죄 현장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지문 하나만을 남기는 바보가 있겠습니까? 그런 범죄자 몇 명을 색출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의 지문을 채취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닌가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발전이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창대인 20대 성인남자들이 매년 군대로 징집되어 갑니다. 안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사실 전쟁 직후 한국에 가장 중요한 건 민주주의도 사회보장도 아닌 안보였습니다. 안보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도 없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런 대한민국이 짧은 기간 내에 발전했고, 당연히 시민의식도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 있습니다. 이 사안은 안보가 가장 중요시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인권을 생각하며 이쪽도 저쪽도 버릴 수 없어 생긴 기형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안보 때문에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으로 국민을 관리하고 있지만, 인권 때문에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를 해야 하는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옛날이야 간첩들이 대한민국 사정도 모르고 주민등록증도 몰랐겠지만 '여간첩' 원정화를 보십시오. 대한민국에서 결혼도 하고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까지 출연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젠 인권이라는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유출될대로 유출된 13자리의 주민등록번호, 성인식보다 먼저 치러야 하는 열 손가락 지문날인 의식,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인권보호를 위한 마스크와 모자, 집회 현장에서는 가려서는 안 되는 얼굴….
과연 무엇이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인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