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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분쟁의 한복판으로

 

이-팔 지역은 종교와 민족 분쟁,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빚어낸 저주의 땅이다. 이스라엘의 봉쇄와 팔레스타인 자살폭탄 테러의 순환게임이 무려 50년이 넘게 이어져오고 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남북의 휴전 50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음악가와 작가를 포함한 모든 예술인들 역시 이곳의 분쟁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늘은 그중 비슷한 시기의 자살폭탄테러를 소재로 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 톰 웨이츠의 노래 '평화로 가는 길(Road To Peace)'과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 <가자에 띄운 편지>다.

 

<가자에 띄운 편지>는 폭탄테러와 무차별공습, 피비린내가 씻길 날 없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두 젊은이의 이메일 왕래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소설에서는 이 복잡미묘한 예루살렘의 역사적 상황을, 주인공 아버지의 육성을 통해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그땐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전혀 개의치 않았어. 이곳에서 수천 명의 용맹하고 독실한 사람들이 세 종교의 성지들을 보살폈단다. (. . .) 시대가 바뀌어 근대로 접어들면서 유대인들이 선조들의 땅으로 되돌아오려 하자 이 도시엔 대립이 시작되었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3천 년 전에 그 누구보다도 먼저 여기서 살았으며, 그건 성서에도 씌어 있다고 주장했지. 그러자 무슬림들도 맞서 주장했어. 자신들은 1,300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으며,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않느냐고. 그러자 기독교인들도 놓칠세라 말했지. 예수가 여기서 죽었고, 다시 강림한다면 누군가가 남아서 예수를 맞이해야 한다고.

 

예루살렘이라는 축복의 땅을 사이에 두고 유대인과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이 서로가 자신의 성전임을 주장하며 비극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날을 세우는 동안 이 지역은, 언제나 구급차 소리와 분노로 들끓는 사람들의 함성, 헬리콥터 소리와 폭음이 그칠 날 없는 첨예한 분쟁지역으로 변해간다.

 

 

평화로 가는 길

 

보복과 증오, 공포의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는 예루살렘에서, 2003년 6월과 9월 비슷한 시기에 두 건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한다. 그중 9월 9일 발생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 <가자에 띄운 편지>이며, 같은 해 세 달 앞서 6월 11일 일어난 자살폭탄테러를 소재로 한 노래가 톰 웨이츠의 'Road To Peace'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자살폭탄테러와 이스라엘 보복공격의 대립은 뉴스에서 흔히 보도되는 도식화된 구도지만, <가자에서 띄운 편지>나 'Road To Peace'는 우리가 들여다보기 힘든 그들만의 상처와 역사의 아이러니를 잠시나마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한다.

 

<가자에서 띄운 편지>에서 열일곱 살 이스라엘 소녀 탈과 스무 살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 주고받는 이메일은, 호기심과 경계심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의 연속이다. 그러다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보복공격과 테러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숨죽이듯, 가슴 뜨끈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갈망하는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요원한가를 절감하는 것뿐이다.

 

이 두 젊은이를 공포와 무력감으로 이끈 것 중 하나인 자살폭탄테러가 그들 또래 18세의 한 평범한 팔레스타인 학생에게서 자행됐다면 이 흐트러진 비극의 역사를 어디에서부터 짚어봐야 하는 걸까. 톰 웨이츠는 그의 노래 'Road To Peace'에서 2003년 6월 11일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의 전말을 한 편의 소품처럼 엮어내며 담담하게 노래한다. 팔레스타인 가정의 평범한 소년이 왜 자살폭탄테러를 단행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비통함을 특유의 냉소적인 어법으로 토로하고 있다.

 

신도 길을 잃고, 우리도 길을 잃었네

 

아브델 마디 샤브네흐라는 18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은 유대교도 복장을 하고 예루살렘 시내를 지나는 14A번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고 "신은 위대하고도 위대하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신의 몸에 달린 폭탄을 점화한다. 그날, 그 자리에서 아브델을 포함하여 17명이 사망했다. 그는 9형제 중 막내였고, 밤 늦게는 집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날도 어머니에게는 시험을 치르러 간다며 나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테러공격 다음 날인 6월 12일,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조치에 들어간다. 헬기 4대를 출동시켜 하마스 지도자 야시르 타하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살배기 딸이 타고 있던 승용차를 공격해 전소시킨다. 그 후, 다시 팔레스타인의 반격과 이스라엘의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무려 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다. 물론 사상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톰 웨이츠는 이 노래에서 이례적으로 중동 분쟁에 팔짱 끼고 관전만 하는 당시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한다.

 

우리의 대통령은 영웅이 되기만을 바라지. 재선에 목이 말라 있거든.

부시는 정치적 실패가 두려워 미래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는 그저 책상에서 체스를 두며 언론 앞에서 포즈나 취하지.

평화로 가는 길에서, 천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Road To Peace' 중에서

 

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역시 서로 예루살렘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동안, "자신들의 아이들을 증오로 가득 채워 늙은이들의 전쟁터로 내몰고 죽게" 한다고 노래한다. 누구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왜 그들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에 폭탄 하나 몸에 걸치고 투항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신이 위대하다면,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양쪽 모두를 죽이는 근본주의자들,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는 냉소한다. "아마 신도 길을 잃고 도움을 기다리는지 몰라 / 아마 신은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 아마 신도 길을 잃고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 그는 평화의 길 바깥에서 헤매는지 몰라"

 

저들의 비극을 눈 뜨고 바라만 봐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최선이라면, '신도 길을 잃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는 그의 냉소는 당분간 유효할 것 같다.

 

::부록::

평화로 가는 길(Road To Peace)*

- Tom Waits/Brennan

 

아브델 마디 샤브네흐는 열여덟 살

아홉 형제 중 가장 어렸지. 그는 집밖을 나와 밤늦게 있어 본 적이 없었어.

그의 사진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네.

강렬한 죽음을 보네, 평화를 향한 그 길에서….

 

키 크고 마른 소년은 한 가닥 콧수염을 붙이고 정통파 유대교도로 변장했지.

예루살렘의 만원 버스 안에 있던 몇몇은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어.

200야드나 떨어진 곳에 유리가 깨질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었네.

17인의 죽음 뒤에 더 큰 보복이 기다리겠지, 평화를 향한 그 길에서….

 

킹 조지 가와 자파 로드에서 승객들이 14A버스를 탔네.

아브델은 버스 기사 바로 옆 통로에 있었어.

지상에서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은 "신은 위대하고도 위대하다!"였지.

그리고 그는 모두를 날려버렸네, 평화를 향한 길 위에서….

 

이에 응답하듯 또 다른 죽음이 입맞춤하네.

이스라엘은 야시르 타하를 하마스의 군사 지도자로 지목했지.

그들은 곧 4대의 헬리콥터를 보내, 그의 하얀색 오펠 자동차를 완전히 파괴했어.

그의 아내와 세 살배기 아이는 검은 뼈만 남긴 채 죽었네.

 

그들은 젖병과 작은 신발 한 켤레를 발견했고,

그것들을 카메라 앞에 흔들어 보였어.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의 아내와 아이가 자동차에 타고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발뺌했지.

사방 어디에도 바리케이트만이 있고, 티브이엔 고통만 있을 뿐이야.

그 누구도 자기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나려 하지 않아, 평화를 향한 그 길에서….

 

이스라엘은 화요일 하마스에 대항하는 최후의 작전을 개시했지.

이틀 후 하마스는 다시 반격했고 다섯 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죽였어.

양쪽 모두 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대부분이 중동의 민간인들이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증오로 가득 채워 늙은이들의 전쟁터로 내몰고 죽게 했네,

평화를 향해 가는 그 길 위에서….

 

"이곳은 우리의 땅,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을 동원해 싸울 것이다."

팔레스타인들과 유대인들 모두 말하네.

그리고 양쪽 모두 저항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의 손을 자르겠지.

만약 올바른 눈이 그대를 성나게 하거든 그땐 그것을 잡아 뽑아야 할지니.

무하마드 아바스와 샤론은 길을 잃었지. 평화를 향해 가는 그 길 위에서….

 

"미국은 친구는 없고,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키신저는 말했어.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은 영웅이 되기만을 바라지. 재선에 목이 말라 있거든.

부시는 정치적 실패가 두려워 미래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그의 책상에서 체스를 두며 언론 앞에서 포즈를 취하네.

평화로 가는 길에서, 천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아브델의 집에서 발견한 비디오 속에서

그는 칼라스니코프 권총을 손에 쥐고 있었고 앳된 목소리를 하고 있었어.

그는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지.

그는 엄마에게 시험을 치르러 간다고 말한 뒤, 그 길로 평화를 향해 나섰지.

 

양쪽 모두를 죽인 근본주의자들은 평화의 길 위에 서 있네.

말해봐, 왜 우리는 총과 탱크와 총알을 가진 이스라엘 군대를 겨누는지.

신이 위대하다면,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왜 그는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없는건지….

아마 신도 길을 잃고 도움을 기다리는지 몰라

아마 신은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아마 신도 길을 잃고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그는 평화의 길 바깥에서 헤매는지 몰라

 

아마 신도 길을 잃어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아마도 신은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지 몰라

신은 평화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 몰라

신은 평화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 몰라

그는 평화의 길 바깥에서 헤매는지 몰라

덧붙이는 글 | *더 좋은 가사가 될 수 있도록, 번역 상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태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톰 웨이츠, #가자에 띄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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