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지리산 학교 입학식에 다녀 왔습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 실린 지리산 학교에 관한 기사를 읽고(관련기사, http://blog.ohmynews.com/doomeh/rmfdurrl/241506 ) 아내에게 보여 줬더니, 평소 사진을 배우고 싶어 하던 아내는 망설임 없이사진반 학생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등록한 지 나흘만에 열리는 입학식에 저도 함께 참석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3개월 과정의 학교지만 입학도 하기 전에 아내는 얼마나 설레하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에 이런 학교가 문을여니 고맙기도 하고 기대하는 마음도 큽니다.
따뜻한 얼음, 세상을 데울 학교
토요일 오후, 지리산 학교가 자리잡은 관내 악양면 사무소 2층에서, 입학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지역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한 한 조촐한 입학식이었지만, 의미있고 흥겨운 자리였습니다.
악양골에 사는 박남준 님이 쓴 시 '따뜻한 얼음'을 시인이 낭송하면서 시작한 입학식, 세상 어느 학교 보다 작게 시작하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데울 학교가 되리라 짐작을 합니다.
앞으로 지리산권역에 사는 다문화 가정과 노인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초, 중등 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활동도 할 계획이라는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지리산 학교야말로 입시 위주의 제도권 학교 교육에 큰 울림이 될 대안 문화학교로서 우뚝 자리매김을 하리라는 믿음도 생깁니다.
지리산 학교의 교과서는 자연입니다
1시간여 진행한 입학식을 마치고 당분간 학교로 쓸 교장선생님 댁으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를 했습니다. 처음 문을 여는 학교인데 학생이나 선생님이 모두 비슷한 연배라 졸업도 안 한 판에 동창회를 하는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열 두 분의 선생님이 가르치는 교과목은 사진찍기, 도자기 만들기, 목공예, 숲길 걷기, 시문학반, 바느질, 천연염색, 기타배우기, 옻칠, 그림 등입니다. 모두 자연을 교과서로 삼는
친환경 교과들인 셈이지요.
오로지 높은 곳을 향하여 숨가쁘게 달리기만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느릿한 걸음으로 숲길을 걸으며 숨 고르라고 말하겠지요. 사진을 찍기 위해 산과 들로 다니며 예쁜 꽃과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섬세하면서도 광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겠지요. 천연 그대로의 재료로 옷에 물을 들이며 자연은 쓰레기를 하나도 배출하지 않고 순환을 하는 것을 배우겠지요.
이렇듯 자연은 우리한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놓고 가슴으로 배우라고 하는데 그동안 머리로만 지식을 얻으려고 얼마나 애 썼는지 새삼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이라는 너른 교과서를 무시하고, 사람이 만든 학설과 이론만을 머리에 넣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일은 어쩌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전을 뽑으려 생각지 마시오
막걸리가 몇 잔 돌고 모두 흥이 오르자, 학생과 선생님 모두 지리산을 아끼는 사람들이라 대화는 자연스럽게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로 옮겨 갔습니다. 산악인 남난희씨가 케이블카 설치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온 이야기를 하니 하나같이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웬말이냐는 성토를 했습니다.
지리산 곳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는 즈음에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학교를 연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이 학교를 구심점으로 해서 지리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민족의 영산을 지금 이대로 보존하는 일에 마음을 모우면 참 좋겠습니다. 한 번 파괴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을 고스란히 지키는 일에 작지만 큰 뜻을 품은 지리산 학교가 한 몫을 해 내리라 생각하니 아내가 그 학교 학생이 된 게 자랑스럽습니다.
특히 지리산 학교가 자리잡은 하동군 악양면은 올해 국제 슬로시티에 지정되었으니, 자연 가운데서 느림과 여유를 누리며 삶의 질을 높이자는 슬로시티의 취지에 맞도록 개발 보다는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을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악양면 평사리를 무대로 대하 소설 토지를 집필하신 박경리 선생님은 생전에 본전론을 자주 말씀 하셨습니다. 땅은 본디 조상으로 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땅심을 돋구어 거기서 나는 이자(소출)로 먹고 살고 본전은 우리 후손들한테 그대로 물려 주자는 것이지요.
우리한테 먹을 것을 주는 땅 뿐만 아니라, 좋은 풍광을 선물하는 자연 경관 역시 본전을 뽑으려는 자세로 덤빌게 아니라 그대로 보존하여 본전만이라도 지켜서 우리 후손들한테 물려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연은 사람 손이 가장 덜 갔을 때 가치 있는 법인데 지리산에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쇠말뚝을 박으려는 행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지리산에 편리하게 오르는 것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큰 산을 멀리서 바라 보는 즐거움도 있는 법, 풍광이 주는 가치를 무시한 채,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안달하는 지자체와 입법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로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도시의 경쟁 구도에 숨이 막힌 사람들이 자연 가운데 와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편안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란 인공 구조물이 아닌 자연 본디 모습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 치마폭 같은 너른 지리산에 쇠말뚝을 박고 철탑을 세우려는 시도를 그쳐야 할 것입니다.
환경을 살리고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선생과 제자가 한 마음이 되고, 하나같이 위를 향해 오르는 교육이 아니라 너른 자연을 교과서 삼아 눈을 옆으로 돌려 이웃과 자연을 보듬는 교육이 된다면, 지리산 한 자락을 잠시 빌려 시작하는 '지리산 학교'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가 되겠지요.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서명운동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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