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낯선 얼굴인데도 서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 위원회' 조철순 위원장과의 만남은 마치 이웃집 아주머니나 먼 친척 어른을 만나뵌 것처럼 친근했다.
"저는 여기 선생님은 아니고요, 제가 취재 차 이곳에 왔는데..." 하고 운을 떼자마자 바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나에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수락하며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마을회관 안쪽에는 대학생 자원교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조철순 위원장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며 종이컵에 따뜻한 차까지 담아서 내민다.
"언제나 더불어 사는 세상 그려."
"하루빨리 포이동 266번지가 주민등록 등재 되어야."
-아까 전에 오면서 아이들을 봤는데 분위기가 생각 외로 밝다.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들도 그렇다. 이곳은 달동네지만 달동네치고 정말 어둡지가 않아. 길거리를 다녀봐도 술 마시고 비틀거리는 어른들은 찾아볼 수도 없고. 주민들이 다들 열심히 살면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밝은 건, 선생님들이 사랑과 관심을 줘서 그렇지. 요즘엔 애들이 밖에서 늦게까지 뛰어노느라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해. 예전에만 해도 이렇진 않았지. (웃음)"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오면서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 같은데...
"아무래도 아이들은 상처가 많았다. 지금도 이곳 아이들은 강남 8학군으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본다. 하지만 예전엔 더 심했지. 내 딸은 한 동네 사는 친구들하고도 아는 척을 안 하고 다녔어. 학교에서는 '거지'라고 놀림받고... '거지들끼리 같이 몰려다닌다'는 소리 듣는 게 싫어서 서로 외면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2-30대가 된 사람들끼리는 아직도 길에서 만나도 인사를 안 하고 다닌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논다. 이게 다 선생님들이 친구 그룹을 만들면서 분위기를 조성해준 덕분이다."
-아이들의 텃세나 배제가 심했나 보다.
"심하지. 강남만큼 빈곤 차이가 극심하고 차별도 심한 동네도 없다. 나는 언제나 아이 옷은 꼭 깨끗이 입혀서 보냈거든. 그런데도 '거지 주제에 넌 왜 이렇게 깔끔하게 입고 다니냐'고 아이들이 딸을 괴롭혔다. 그 당시에는 옷에 흙 같은 걸 묻혀오면 왜 그럴까,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서야 딸이 말을 해 줬다. 엄마가 걱정하고 마음 아파할까봐 얘기도 못했다고 한다."
-포이동에 오는 대학생 자원 교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차마 내보이지 못했던 상처들을 내보일 수 있게 된 데에는 학생들의 힘이 컸다. 빈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게 되었고 이곳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억울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철거민들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제대로 말도 못했겠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대우도 조금씩 달라졌다. 전에는 강남구청에 찾아가면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름대로 대우도 하고 면담도 해 준다."
딸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던 조철순 위원장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어린다. "그래도 점점 나아져가고 있군요."라고 말하자 "맞아요. 그리고 나아져야죠."라고 나의 말을 받아 문장에 당위성을 더한다.
교육에 있어서는 인성 교육을 가장 중요시 한다는 그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포이동 선생님들은 다들 사람이 됐어요. 포이동이 주민등록 등재가 되면 전부 감사패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 라고 말했다.
"학우들이 애써 주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힘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큰 아이들은 줄 줄도 모르게 되지만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돼요.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점차 어른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당당하고 밝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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