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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5월 28일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였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기존의 규정은 그대로 두고, 광장관리의 위탁과 광장사용료에 대한 규정을 변경, 추가하였다. 또, 이와 거의 같은 내용으로 광화문 광장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시청앞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지는 너른 공간에 대한 서울시의 '관리' 규정이다.

그런데 그 동안의 혹독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 조례들은 여전히 시민의 상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광장'에 대한 상식적인 원칙이 부재한 것이 아쉽다. 법을 제정하는 이들이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광장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시민들이 나서서 함께 생각해 볼 때다.

첫째, 광장 사용의 기본 원칙은?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마련된 넓은 공간으로, 특히 여기서 논의하는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공적 공간'이라는 데 주목한다.

공적 공간에 대한 사용은 사적 공간과는 다른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사람을 쫓아낼 권리가 나에게 있어도, 공적 공간에서는 원칙적으로 누구도 쫓아낼 수 없다. 즉, 사적 공간은 "허락없이 사용할 수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공적 공간은 "정당하게 제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적 공간을 사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유자가 아닌 관리자로서 서울시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광장은 공적 공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허용'이 전제가 되어야 하므로 (사실 누구도 '허용'할 수 있는 주체는 없다), 사용을 제한을 할 때에는 "정당성을 입증한 후"에 매우 소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광장 사용 통제의 원칙은?

공적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인이므로, 사용 규칙이 누구에게도 부당하거나 임의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익'의 이유로만 사용이 제한될 수 있고, 그것도 주인인 개인들이 명시적으로 동의한 것이라야 공정하다. 그러므로 서울시가 광장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법'에 근거하여 '공익'을 위한 '정당성'에서 나온다. 시민들로부터 제한적으로 위임된 권한이다.

공적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할 때, 서울시는 그 공간에 대해 개인들이 가진 당연한 권리를 제한하게 된다. 이렇게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 아주 엄격하고 공정하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즉,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공적 공간으로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경우-예를 들어, 광장에서 총기를 휘두르거나, 광장을 사적인 영리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 등-에 한하여 조심스럽게 통제하여야 한다. 서울시장이나 특정 집단의 단순한 선호나 우려, 혹은 그 때 그 때 바뀌는 임의적인 판단으로는 정당성이 입증될 수 없다.

사용료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로 공익을 위한 정당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또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시민의 광장은 영리를 목적으로 사설 놀이공원과는 분명 다른 가치에서 출발한다. 시민의 참여와 동의 없이 관리자가 임의적으로 사용료의 수준을 정하고 부과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영리를 위한 목적으로 광장사용이 변질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어야 한다.

셋째, 광장에서 보호되어야 개인의 권리?

광장은 공공의 공간이므로, 헌법을 비롯하여 법률에 보장된 개인에 대한 모든 보호가 그대로 광장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적 공간에서 경우에 따라 법률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것와 다르다. 사적 공간에서는 소유자의 자율권이 상당히 인정되지만, 공적 공간에서는 그런 예외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집회결사의 자유, 평등권, 행복추구권,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국민으로서의 기본의 권리가 광장이라고 하여 침해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에서 인정되는 이러한 권리들이 서울광장에서 임의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서울광장봉쇄 경험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서울시장 직권에 의해 손쉽게 침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리자를 임명할 때 생길 수 있는 폐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조례에 이와 같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부당하게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

광장 사용에 대한 조례 제정의 원칙

그러므로, 광장 사용에 대한 조례 제정의 원칙은 이렇게 요약된다. 첫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여, 둘째, 공익에 근거한 정당성이 임증된 경우에 한하여 법에 의해 소극적으로 사용을 제한할 수 있으며, 셋째, 모두가 공평, 공정하게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원칙은 광장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수 많은 논의의 출발에 불과하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얼마전 기고한 글에서 서울광장의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제안일 뿐, 우리가 서울광장의 주권을 되찾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줄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구속하는 규칙을 이해하고,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 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우리에게 깨우쳐주려고 했던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의 하나가 아닐까.

상식이 통하는 조례를 만들 책임은 무엇보다 시의원에게 있겠다. 그러나, 그런 조례를 만드는 힘은 또한 모든 시민에게 있기도 하다.


#서울광장#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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