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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의 혜택을 주는 고운맘 카드와 그를 훨씬 상회하는 병원비 수납 영수증들
 20만원의 혜택을 주는 고운맘 카드와 그를 훨씬 상회하는 병원비 수납 영수증들
ⓒ 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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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 뉴스를 접한 지 얼마나 됐을까요. 최근 각 지자체들이 앞 다퉈 출산장려정책을 내놓았습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곳은 단연 강남구입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낮은 강남구는 그동안 둘째 자녀를 낳을 경우 50만 원을, 셋째는 100만 원, 넷째는 300만 원씩을 지급했었습니다.

그랬던 강남구가 얼마전 기사를 보니 지난달 25일부터 둘째를 낳으면 100만 원, 셋째는 500만 원, 넷째는 1000만 원, 다섯째는 2000만 원, 여섯째를 낳을 경우 30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조례를 제정해 시행중이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허탈한 웃음과 성난 문제의식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마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은 그 숫자에 솔깃했을 것이고 이내 서민가슴에 분탕질하는 정책들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동네'로 일컬어지는 강남구에서 '여섯 번째 자녀를 낳는 가정에 30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으로 출산을 장려하겠다'는 발상은 거의 엽기에 가까워 보입니다. 설령 부자동네가 아니라도 3000만 원 받겠다고 애를 여섯 낳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길가는 사람 붙잡고 설문조사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뭐든 돈이면 된다? 서민 낚으려는 출산장려정책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낚였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합니다. 이 정책은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요? 이것은 아주 단기적이고 지극히 말초적인 시나리오에 불과합니다.

저는 오는 11일경 출산을 앞두고 있는 임산부입니다. 아이 한 명을 출산하는데 드는 비용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 경우를 들어 그 액수를 보면 출산장려금으로 책정한 금액이 얼마나 코딱지만 한 선심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점점 늘어가는 예산에 저도 모르게 점점 한숨소리 길어지더군요. 결과적으로 50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예산이었습니다. 우선 아이가 뱃속에 있는 10개월 동안 병원에서 드는 비용이 있습니다. 매달 하는 초음파 검사 외에도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병원 수납처에 갈 때마다 얼마나 발걸음이 무거운지 모릅니다.

정부에서 출산장려로 지원해주는 고운맘 카드 액수는 고작 20만 원이고 그나마 1회에 4만원으로 제한이 되어 있어 사실 혜택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미미한 금액이죠. 초음파검사 비용, 각종검사비용(임신성 빈혈 당뇨검사, 임신중독증 검사, 여러 종류의 기형아검사 등), 철분제나 비타민 등의 약값을 합하면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처지라 자연분만 비용의 3배가 듭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제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 일인데도 불어난 예산에 제 신랑에게 특히 미안해지더군요.

"오빠 5박 6일 병원에 있어야 한다네. 1인실은 110만 원, 2인실은 90만 원, 다인실은 60만 원 정도래."
"그럼 2인실로 하자"
"아냐, 다인실로 해도 상관없어."
"거긴 너무 북적일 거야."

출산용품 준비에만 수십만 원... 교육비 생각하면 '아찔'

사실 자연분만을 하게 되면 산후도우미를 쓸 생각이었습니다. 산후조리원은 2주에 195만원인데 산후도우미는 2주에 67만 원이라니 거의 1/3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부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술을 해야 해서 비용이 초과되니 저는 무조건 친정엄마 신세를 져야 됩니다.

아버지가 당뇨로 혼자 지내시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께서 워낙 의지가 굳건하시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시는 분이시더라도 1개월은 부모님으로서도 부담스러운 기간인 것을 압니다. 며칠 지나 친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너희 아빠가 산후보양식 50만 원 들여서 해준단다. 피문어, 호박, 딱주, 대추, 감초 이렇게 넣어서 건강원에 맡겼어. 그리고 너 수술 전에 미리 가서 봐주라고 하더라. 1개월 있어도 괜찮단다."

저는 일단 감사와 죄송함의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불효스럽게도 특히 산후조리 비용이 대폭 절감된 것에 안도했습니다.

"오빠, 엄마가 1달 봐주시겠다네."
"그래? 그럼 얼마라도 산후조리 비용 드려야 되겠네."

그런데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란 것을 출산하신 모든 분들은 알고계실 겁니다. 정작 출산용품들을 하나도 준비 못한 저는 기저귀, 속싸개, 겉싸개, 배냇저고리, 아기베개, 아기내복, 손싸개, 발싸개, 젖병, 유축기, 수유패드, 기저귀 가방, 유모차, 모빌, 딸랑이 등등 출산용품을 사는 데 만해도 수십 만원이 넘어간다는 것에 아찔했습니다. 또 아이가 커감에 따라 들여야 하는 비용들은 손으로 꼽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더해 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각종 사교육 및 공교육비용이 가정을 옥죄겠지요.

비판 없이 선정적 보도만 일삼는 언론들, 반성하길

첫째아이의 출산 자체만을 놓고도 이렇게 들어가는 액수가 수백 만원인데 둘째도 아니고 셋째도 아니고 여섯째를 낳으면 3000만 원을 주겠다굽쇼? 단기적으로 봤을 때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통해 쓰이는 돈과 노력을 산출했을 때 3000만 원 얻자고 그의 몇 십 곱절의 돈과 죽을 고생을 감당해야 할까요? 그것이 얼마나 희화화되는 구경거리 같은 일인지 알고나 만든 정책인지 모르겠네요.

출산장려정책에도 극명한 빈부차이가 적용되는 걸까요. 강남구청의 경우 둘째자녀를 낳으면 100만 원을 주는 데 반해 강북 성북구청은 둘째를 낳으면 30만 원을 지급한다는 사실에 슬쩍 비위가 상합니다. 비록 금액차이가 있어도 실효를 못 거두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지만 현실적 양극화가 완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합니다.

그간의 출산장려정책에 비해 다소 액수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보지 않는 선정적인 이벤트와 같은 이런 정책은 국민의 목소리와 언론의 목소리로 신랄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판을 해줘야할 언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선정적으로 '액수'만을 강조하는 기사들 때문에 예비맘의 눈살은 더욱 찌푸려집니다. 국민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지 못하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지 않는 것은 언론으로서 책임을 명백히 유기하는 행위에 다름없습니다.

언론은 정부가 주목할 수 있는 냉정한 분석과 판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정부나 자치단체들이 이런 실효성 없는 정책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하고, 적절한 대안과 진지한 정책을 내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맞벌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엄마들에게 일자리를

공원을 향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느 단란한 가족의 모습
 공원을 향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느 단란한 가족의 모습
ⓒ 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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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회성 보여주기 정책 보다는 근본적으로 육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아이 한 명 기르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처럼 평범한 서민은 반드시 맞벌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를 가진 3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직업을 찾는 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것은 개인 능력 문제라기보다 사회구조적 문제의 결과로서 저와 처지를 함께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잠정적 백수를 오랫동안 지속하거나 영영 못 벗어날지도 모릅니다. 또 이 사회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수많은 불임부부들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병원의 산모대학에서 무료강의를 들을 때 알게 된 몇몇 분들도 10년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억대에 가까운 돈을 들여 불임치료를 해왔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이를 낳고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출 청소년, 미혼모, 이혼부부 등에 의해서 버려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권과 사랑을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이제 결코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사회문제임에도 보여주기식 출산장려정책만 있을 뿐 이 모든 문제를 포용하는 정책을 눈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극도로 과도한 교육비를 투자해야만 박제된 빈곤의 삶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 시스템은 치열하게 경쟁을 부추기고 지나치게 우위를 점유케 해야 하는 학벌을 위해 부모가 전 인생을 바쳐야하는 지경에 치달아있습니다.

결국 학벌에 목숨을 걸고 영어에 올인 하는 현 대한민국이 만들어놓은 교육제도에서 양산되는 갈등과 모순은 지속적으로 출산을 가로막고 계층 간의 화해를 막고 국가의 진보적 자아실현을 막습니다. 또 평생 숙명이 돼 버린 '내 집 마련'을 위해 저당 잡혀야 하는 피폐한 서민의 삶을 보지 않고 아이 하나 더 낳으면 몇 십 만원 준다는 정책에 반색할 서민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돈만 주려하지 말고 일그러진 사회를 치료해달라

'출산장려정책'이란 이런 사회 전반적 문제로 아이를 안 낳거나 한두 명 낳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씩 발전하여 가능한 출산 범위 안에서 널리 복지를 확장시켜 나가야 할 일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이 양육을 준비하는 사람인 저에겐 지자체의 출산장려정책이 상식적이지 못한 선정적 희망으로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제 단순히 지자체의 영역에서 얄팍한 이벤트 정책으로 진실을 가리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정책에도 철학을 담아 국가적으로 대처해야하지 않을까요?

자본주의 현실의 체제와 무관하게 이상주의를 꿈꾸며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는 아이를 직접 돌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 그러면서 자아성취가 가능한 일을 찾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마당에서 뛰어놀고 그 터 위에서 함께 호흡하는 나무 몇 그루와 상추, 고추와 같은 채소를 기를 수 있는 텃밭을 갖는 상상은 혁명을 일으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정책적 동기를 불어 넣어야 만이 허락되는 것인지, 일그러진 사회를 치료할 해법을 내놓을 지성의 정책을 만나고 싶을 따름입니다.


태그:#출산장려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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