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별종'이다. 그것은 그녀가 '대기업 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작은 PR Agency의 AE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가 '별종'인 이유는 그런 작은 PR Agency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충분히 즐기고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대기업'만이 취직하는 길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이 같은 그녀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네임밸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대기업 만능주의 사회에서 과감히 빠져나와 자신이 꿈꾸는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그녀. 그녀의 용기있는 발걸음을 쫓아보았다.
시청역을 빠져나와 남대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높다란 빌딩들이 도시의 숲을 이루고 있는 그곳에서는,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잰 걸음으로 버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막바지 퇴근 시간 8시. 먼 곳을 향하는 파란 버스들이 줄줄이 떠나가고 난 후에서야 그녀가 나타났다. 홍보 대행사 커렌트 코리아의 2년차 AE 김은솔(26세)씨였다.
깔끔한 세미정장을 입고 있던 그녀는 사진만큼은 찍을 수 없다며 기자의 카메라를 극구 회피했다. 기자가 카메라 든 손을 내려놓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인터뷰 장소로 기자를 안내했다. 회사 근처에 위치한 햄버거 집. 야외에 마련된 테라스에서 햄버거 두 개를 놓고, 드디어 그녀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 현재 어떤 회사의 PR을 맡고 계세요?"지금은 '위니아만도' 홍보를 맡고 있어요. '딤채'생산하는 회사인데, 아시죠? 전반적인 기업 PR의 영역뿐만 아니라 제품홍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반까지는 농수산물 유통공사의 수출무역정보 사이트 KATI의 온라인 홍보도 함께 담당 했었고요."
- PR업계에서 일 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처음부터 PR업계에서 일을 하려고 했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PR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요.(하하) 원래는 한국외대에서 독문과를 전공했었는데, 언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신문 방송학을 복수전공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PR 관련 수업을 듣게 됐고, 어느 순간 '이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늘 AE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그 만큼 잘 해낸다면 PR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이만한 길이 없죠."
- 그런데 광고든 PR이든, Agency(대행사)의 일은 상당히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굳이 대기업 '홍보실' 입사가 아닌 홍보대행사 입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하우스(대기업 홍보실)'에서 첫 출발을 하는 것을 원하죠. 물론 이렇게 첫 출발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기업의 홍보팀에서라면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에서 홍보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반면 대행사는 대행사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가령, 다양한 제품․기업의 홍보를 접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삼성'과 '삼성전자의 제품'만을 홍보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대행사의 AE는 삼성 뿐 아니라 LG, 현대, 아모레 퍼시픽 등 다양한 회사들의 다양한 제품을 다양한 콘셉트에서 홍보할 수 있어요. 때문에 늘 AE로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하는 무거운 부담감은 있지만, 그 만큼 잘 해낸다면 PR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이만한 길이 없죠.
그렇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하던지 자신의 적성에만 잘 맞는다면 업무상의 힘든 점과는 상관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재미'는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점을 명심 해야겠지만요."
- 그래도 일 하시면서 힘든 점이 많으실 텐데요…?"하하. 당연히 힘든 점이 많죠. 광고가 원숙기에 접어든 산업이라면, 지금 PR의 영역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1년 전이 다르고 또 향후 1년이 다르죠. 이렇게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놓이게 되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만능 인재'가 되어야 한 달까요? 그 만큼 여러모로 피곤하기도 해요. 언론사 성향에 맞는 적절한 기사 아이템을 찾는 능력, 온라인 공간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기술적 지식 등등 PR에 요구되는 다양한 능력들을 키워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사실 어떤 일을 하던지 자신의 적성에만 잘 맞는다면 업무상의 힘든 점과는 상관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재미'는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점을 명심 해야겠지만요. 식상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랍니다.(웃음)
저 역시도 업무에 치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재미나 보람 등을 잃어버리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한 번씩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내 일과 일에 대한 내 열정을 체크해 보면서 자기반성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A.E가 되고 싶으세요?"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글쎄요,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늘 좌충우돌 중이예요. 거창한 꿈을 말하고 싶기는 하지만 부끄러워서…. 그냥 지금 최우선 과제는 실수를 줄여 나가는 거예요. 작은 실수를 고쳐 나가면서 먼 미래의 저를 발전시키고 싶네요."
- PR쪽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음…. 진부한 이야기지만, 대학생활 중 아니면 그 외의 어떠한 영역에서라도 최대한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경험하기를 바라요. 다양한 배경지식과 경험들은 훗날 PR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자양분이 될 수 있거든요. 가령, 아이디어를 낸다든지 할 때요.
동시에, 경영에 대한 지식과 통계/분석 능력, 컴퓨터 활용능력 등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죠. 예를 들어, 요즘에는 PR영역 자체가 마케팅의 일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마케팅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PR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기업이 원하는 바를 쉽게 캐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컴퓨터 활용 능력의 경우에는 반드시 엑셀이나 PPT 능력을 말하는 건 아니고요, 어떤 메시지를 어떠한 온․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전파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력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포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텐데, 그런 것들을 대학생활 동안에 잘 이끌어 내시면 좋을 거예요.
'내가 그 곳에 취업을 하고자 하는 이유', 분명히 자각할 것.
'두려움 보다는 설레임과 열정으로 꿈과 적성을 실천해나가려는 자세를 가지면 좋을 것'"
- 최근의 대학생들은 자기 적성을 따져보기 보다는 무조건 대기업위주의 취업을 하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PR Agency의 AE로서,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음, 대기업이 아닌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AE로서 취업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취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곳에 취업을 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한 분명한 자각을 하는 것'인 것 같아요. 즉 기업의 크기가 중요한 것인지, 그 일에 대한 내 열정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려야 한다는 거죠. 기업의 크기, 명성, 그로부터 나오는 개인의 자부심을 중요시해서 대기업 위주의 취업을 한다면, 그건 전혀 나쁘지 않아요. 무엇을 선호하는가는 개인차이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뭔가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데, 단순히 '두려워서 혹은 다들 대기업에 가니까'와 같은 이유로 꿈이나 적성을 무시해버린다면 그때는 문제가 되겠죠. 내 적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적성이 과연 무엇을 위한 '적성'인지를 잘 고민해보고, 두려움 보다는 설레임과 열정으로 꿈과 적성을 실천해나가려는 자세를 가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 길이 험난할 수도 있지만요. 그렇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겠어요?(웃음)"
- 네. 말씀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부탁드릴께요. 요즘 여자 대학생들은 경기불황으로 인한 구직의 어려움에 더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직기회에 있어 차별받는 경우가 빈번한데요, 이 같은 상황에서 '진로'와 관련해 많은 갈등을 겪고 있을 여자 대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음…. 굉장히 어려운 부탁이네요. 하하. 여자이기 때문에 취업에 불리하다는 말은 취업전선에 있었던 여성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하셨을 법한 이야기죠. "사실이 아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요. 그에 비해 PR업계는 여성의 취업에 관대한 편이예요. 실제로 대부분 대행사의 70%정도가 여성인력이기도 하고요. 여성이 많다보니 직장에서 겪는 남녀차별의 문제도 적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무조건 PR업계로 오세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하하) 차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제가 이렇다 조언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대신에, 좀 더 일찍 취업한 선배로서,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후배님들께 사회생활을 하는 자세에 대해서 조언을 드릴 수는 있겠죠. 음…. 저는 지금 대부분의 후배님들이 20대 초반일 테니까 적어도 30살까지의 인생 계획을 세우고 취업이든, 대학원 진학이든 결정하는 것을 추천해요. 그게 힘들다면 하다못해 "3년은 일하고 결혼하겠다."도 괜찮아요."
- 어째서죠?"사실 취업은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이예요. '취업만 되면'이 요즘 사람들의 간절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닥쳐올 '진짜 사회생활'이죠. 일단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지금까지 대학생활 동안 겪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책임감과 막중한 업무가 따르거든요. 그리고 그걸 이겨내지 못할 때 주어지는 건, 단순한 벌칙 수준이 아니죠.
이러한 점들 때문에, 실제로 여성들 중에는 일단 취업은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적응을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제 주변도 예외가 아니고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으로는 영영 성장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슬프지 않나요? 오랫동안 힘들게 공부하고 준비해왔는데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만둬버리면요. 그러니까 적어도 30살까지의 인생계획을 명확히 세워놓기를 바래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신을 다잡을 수 있게끔. 그게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대기업 만능주의 사회에서 뚝심있게 자기 자리를 지켜나가는 김은솔 씨. 주변의 말에 흔들리기 쉬운 나이지만, 그녀는 대기업 홍보실이 부럽지 않다. '대행사 AE'라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규모, 명성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선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